
오는 29일 시행을 앞둔 일명 ‘차명거래금지법’의 영향으로 은행권에서 1억원 이상의 거액 인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0일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국내 10개 은행에서 일어난 1억원 이상의 거액 인출 금액(개인 기준)은 모두 484조546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8조8888억원(22.4%) 증가한 수치다.
지속되는 금리 인하 여파로 보다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상품에 투자하려는 수요도 있는 것으로 보이나 자산가들이 차명거래금지법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정리하고 있는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은행권의 거액 인출은 지난해부터 계속 감소하다가 올 하반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거액 인출은 지난 6월 전년동기보다 7.3% 증가한 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지난 5월 일명 ‘차명거래금지법’로 불리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 개정안이 통과돼 오는 29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세(稅)테크’를 위해 자금을 쪼개놓았던 자산가들이 차명 계좌를 정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자산가들은 연간 2000만원 이상의 이자나 배당소득을 올렸을 때 부담해야 할 금융소득종합과세나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가족 및 친지 명의의 통장에 돈을 분산 예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는 29일부터 시행되는 차명거래금지법에 따르면 탈세 등 불법을 저지를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최근 은행권에는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차명거래금지법에 대한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 은행의 한 PB 담당자는 “차명거래 금지와 관련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PB 담당자는 “차명계좌에 넣어 둔 예금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 놓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차명계좌를 이용했던 자산가들이 최근 들어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금괴를 사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거액 인출의 급증은 세금 회피 등을 위해 이용되는 차명계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며 “차명거래금지법의 시행으로 비자금 축적이 더 어려워지고, 조세정의와 지하경제양성화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이 같은 거액인출 급증 추세는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미국 정부의 해외계좌납세순응법(FATCA)나 저금리 기조도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FATCA 시행이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자산가들의 예금 해지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FATCA는 미국 국세청이 세원 확보를 위해 해외에 5만달러 이상 자산을 보유한 미국 납세자에 대해 자진 신고 납세를 의무화한 제도다.
저금리 때문에 보다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거액 인출 증가 요인으로 지적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차명거래금지법에다 저금리 기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거액 인출을 부추기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