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43명의 대학생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멕시코 시민 수만명이 멕시코시티 광장을 메웠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21일 전했다.
멕시코인들은 보통 11월 20일은 멕시코 혁명(1910~17)을 기념하며 지냈지만 43명의 지방 교육대 대학생들의 실종에 분노한 멕시코인들은 애도의 깃발과 국기를 들고 평화시위에 참여했다.
대학생들의 실종에 화가 난 평범한 시민들은 날씨가 차고 비가 흩뿌려지는 중에도 평화시위에 동참했다.
노라 하이메(주부) 씨는 “전 나라가 분노가 하고 있다”며 지난 9월 26일 사라진 43명의 젊은이를 가리키며 “단지 그들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이메 씨는 “수천명이 사라졌고, 수천개의 숨겨진 무덤이 있으며, 수천의 어머니들이 자식들 생사를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 시위대에 동참한 마리아 안토니에타 루고 씨는 실종된 대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자녀들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집회에 참여했다며 “이 실종은 우리 자식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날의 시위는 대학생들이 사라진 게레로주(州)의 정부청사에 불을 지르는 등 이전의 과격시위와 달리 차분하게 진행되는 중에 복면을 쓴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평화시위자들은 이들에게 ‘폭력 금지’나 “복면을 벗어라”라고 외쳤다.
시위 군중들은 가족들이 실종 학생들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들고 궁전 앞 연단에 서 있던 광장에 집결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구호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들은 자신들은 학생들이 마약 카르텔에 의해 죽었다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 남자는 연단에 올라 “우리는 지치지 않았다”며 “반대로 우리는 멕시코 정부와 그 전체 조직에 화가 나 있다. 정부가 한 일은 가족들을 속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리아 떼레사 페레스는 아들(헤수스 호르타 페레스, 45) 사진을 들고 있었다. 페레스 씨는 아들이 2009년 멕시코 시티의 교외의 한 가게 앞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당한 뒤로 감감무소식이라고 말했다. 페레스 씨는 “43명 외에도 33,000명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대다수 평화시위자들이 현장을 떠난 후에 복면을 쓴 젊은이들은 돌과 막대기로 경찰과 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소화기로 불을 끄고 과격시위대를 광장에서 쫓아냈다.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연합통신(AP) 소속의 사진 기자가 경찰에게 부상을 당하고 카메라 두 대와 렌즈들을 빼앗겼다.
앞서 이날 새벽에는 얼굴에 복면이나 반다나(일종의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200여 명의 젊은이가 국제공항으로 가는 주요 도로를 막아서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이들 젊은이들은 경찰에게 돌과 폭죽, 화염병들을 던져 경찰 한 명이 다쳤고 도로는 다시 개방됐다.
멕시코 정부의 공식통계를 보면 2006년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22,322명이 실종됐으며 이들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공동묘지들이 발견됐다.
멕시코 파추카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씨는 “사람들이 오늘 모인 이유는 단지 실종된 대학생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이 나라의 정치조직이 썩었고 쓸모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 시민들 대다수는 43명의 대학생들이 시장의 명령을 받은 경찰에게 공격을 당한 뒤, 마약 카르텔인 게레로스 우니도스의 조직원들에게 넘어가 살해당하고 불태워졌다는 증거가 있다는 정부 발표조차 불신하고 있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정권 퇴진 운동의 불길이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