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종 충북도지사, “능력도 조금 남기고 떠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선거 판에 뛰어드는 요즘의 정치인들. 그들이 배워야 할 한 편의 시가 있고, 그들이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한 명의 인물이 있다. 전자는 이형기 시인의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하는 ‘낙화’라는 시이며, 후자는 현재 최고의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지만, 정계를 은퇴하기로 발표한 이원종 충북도지사이다.
그 둘을 비교해본다면, 화려함을 남겨두고 절정의 시기에 자기희생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닮아 있다. 한 편의 시가 그를 닮아 있고, 또 그가 한 편의 시를 닮아 있는 것이다.
“40여 년 동안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긴장을 풀고 생활해보지 못했으며, 휴일과 명절도 없었다”고 “늦잠도 자고 싶고, 실종됐던 자신을 찾고 싶다”는 이원종 충북도지사. 그를 찾아 아름다운 용퇴의 배경과 향후 계획을 들어보았다.
◈지방행정이 서울시 행정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처음 충북도지사로 왔을 때, 사람들이 서울시장직을 할 때보다 업무가 쉽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했었다. 서울시에 비해 충북도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큰 병원에 다니는 의사들은 힘들고, 작은 병원에 다니는 의사들은 힘들지 않을 것 같으냐고 되묻곤 했다. 같은 이치다. 작은 병원이 큰 병원보다 더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나름대로는 모두 똑같이 힘든 것이다.
서울시 같은 대도시는 원론에 맞고 합목적적이면 원리원칙에 따라서 업무를 추진하면 된다. 비합리적인 요소들에 의해 추진하는 업무가 방해를 받는다든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지방행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동향, 동창, 직업, 친족 등 전통적인 요소들이 행정업무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쉽다. 그러다보면 때로는 직선으로 가야할 것들도 한참 가다보면 옆으로 벗어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서울이라서 어렵고, 지방이라고 쉬운 것이 아니다. 작은 살림도 나름대로 어려운 면이 있다.
◈역대 도지사들보다 월등히 탁월하다는 평이 있다. 정치권에 진출하지 않고 은퇴하는 이유는?
나는 정치력이 없는 사람이다. 행정밖에 모른다. 평소 인생살이의 모습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어떤 과정에는 어두운 면도 있을 수 있고, 밝은 면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 때의 모습이다. 마지막에 아름다운 것.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나에게 있어서 직업은 제 2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평소 직업을 마칠 때와 이 세상을 마칠 때, 그 때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막연한 가치관이라고나 할까? 현재 상황을 보면, 내가 마무리 할 수 있는 조건을 100%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그 동안 충북이라는 곳이 중앙으로부터 소외되고, 발전에도 소외되어 주민들 스스로도 ‘우리는 뒤쳐져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달라졌다. 내가 도지사를 하는 동안 충북에 쌓여 있던 십여 개의 숙원이나, 난제들을 모두 해결했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모두 풀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제는 내가 꿈꾸던 시책들을 다 써버렸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내 고향 충북이 뒤쳐져있고, 도민들이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는데, 충북도민들에게 ‘나도 앞서갈 수 있다’는 자긍심과 앞서가는 모습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에 따른 어느 정도의 성과도 이룩했다.
더불어 그동안 충북이 가지고 있던 전통 산업으로는 어디에서도 앞서갈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바이오산업을 안착시켰다. 바이오산업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청원, 청주, 충주, 제천, 단양에 이르는 첨단 산업 벨트를 만든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충북을 위해 이런 노력들을 해왔다. 그렇지만, 여기까지이다. 이제 내게는 바이오산업을 끝으로 더 이상 다른 아이디어가 없다. 바이오를 능가하는 새로운 비전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은퇴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그에 더해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선거에서 지지도가 적거나 비슷비슷한 인물이 은퇴를 하면, 패배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사람들은 패배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명예롭게 물러갈 수 있는 조건이 100% 만들어져 있는 상황인 것이다.
◈행정업무에 대한 추진력 등의 이유로 충북 도민들은 이 지사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있다.
도민들에게는 고맙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충북도민들은 참 위대한 도민들이다. 8년 전 처음 충북도지사로 부임했을 때, 충북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이었다. 도민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려면 무척이나 낯설어했다.
충북을 IT산업,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서는 도민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 한 순간 IT, 바이오 등의 거대한 요구를 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컴퓨터를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2001년 4월 정보화 선포식을 하고, 그 후 몇 년 안에 충북을 전국에서 인터넷을 가장 잘 쓰는 도로 만들자고 했다.
얼마 후 중앙 정부에서 정보화 발전 수준을 평가했는데, 우리가 전국 최우수 도의 영광을 안았다. 그것을 보며 우리 충북도민들은 올바른 동기만 가지고 있다면, 대단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북도민들의 근성이 그렇다. 위대한 도민들이다. 그 근거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인들만 6인이나 된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충북인들이 조용한 것 같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 한번 불이 붙으면 무섭다.
그런 충북인들의 기질에 바이오산업이라는 불을 붙였다. 그러나 도지사 혼자 끌고 간다고 될 수는 없는 것. 모두 같이 해야 했다. 어떻게 해서 도민들의 생각을 바꿀까 하는 고민 끝에 바이오 엑스포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바이오 엑스포가 열릴 때까지도 모두 냉소적이었다. 도민들을 대상으로 바이오산업의 중요성과 그 특성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과 교육을 시켰다. 수많은 국내외 저명인사들은 물론, 유수의 기업들을 엑스포로 불러들였다. 그 결과 한 달 동안 전국에서 80만 명이나 다녀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 충북도민들만 40만 명이 다녀갔다는 것이다. 충북도민이 모두 150만 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쉽게 말해, 노약자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고려했을 때 도민 절반에 가까운 수가 다녀간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만큼 충북도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충북도민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업에 컴퓨터 등을 이용한 바이오산업을 접목시키기 시작했고, 포도나 복숭아 등의 상품을 전자상거래를 통하여 판매하기도 했다. 바이오 엑스포가 끝나고 그해 가을, 겨울이 되니 농민들이 먼저 충북농업을 바이오농업으로 하자고 했다. 이것이 바로 충북도민들이 위대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지금 은퇴를 하는 이유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정말 더 이상은 욕심이 없다. 서울시장을 했고, 충북도지사도 했다. 더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다. 금년으로 공직생활을 44년째 맞이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을 경험했다. 젊었을 때는 휴일조차 반납하며 일에 전념했었다. 심지어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때도 한번쯤 사무실을 나갔다와야 마음이 편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인생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44년간 실종됐던 나를 찾아보고 싶다. 공직생활을 하며 매 순간순간에 긴장을 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긴장도 풀고 싶고, 늦잠도 자보고 싶다. 얼마 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정말 그것이 이유다. 그것 이상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은 삶을 놀며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살아가면서 기쁨도 느낄 수 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일은 계속하고 살 것이다. 우리 같은 나이에 돈이나 명예를 찾아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충북도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은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의 노력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런 일을 찾아서 하겠다.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다.
◈후임 도지사는 어떤 인물이 되었으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 몇 가지 조건을 갖춘 인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첫째는 도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꿈의 지도자여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배에 사람들을 태우고 떠날 수는 없다. 목적지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꿈이 있는 배를 이끄는 지도자여야 한다. 다만, 그 꿈은 반드시 옳은 꿈이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스스로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여야 한다. 누구나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바꿔 표현하면, 진실을 말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셋째,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 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으로 인해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이 발전할 수 있는 희생과 헌신을 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자기의 필요에 의해 자리에 오르려 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건강관리 등, 젊게 사는 비결이 있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몰두를 잘하는 편이다. 일을 할 때, 연애하듯이 한다. 일과 연애를 하는 것이다. 자다가도 생각나면 일어나서 연애하고, 누구와 대화를 하다가도 생각나면 메모하고, 또 몰두한다. 그렇게 몰두하다보면 보람을 느끼게 된다. 비록 일과의 연애 때문에 몸은 고달파도 엔돌핀이 생겨난다. 내 젊음의 비결은 바로 그것인 것 같다.
사실, 어릴 때는 몸이 무척 허약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며, 많이 건강해졌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건강해졌다는 것이 아니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습관이 오래되면서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또 아침마다 조깅을 한다.
비가 오더라도 우산을 받고 조깅을 한다.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만을 위해 조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태해지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조절하는 정신적 건강 또한 조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일에 대한, 또 무엇에 대한 열정과 설렘. 그것이 바로 젊게 사는 비결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또 다른 보람과 열정과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연애 대상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공직 생활은 여기서 마감을 하지만, 내 개인의 삶은 이제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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