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기지촌에는 한국여성이 없다
더이상 기지촌에는 한국여성이 없다
  • 황선아
  • 승인 2006.04.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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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스로 가장한 성매매와 인신매매 활개치는 기지촌
주한미군 주둔지 인근 유흥주택가를 일컫는 기지촌. 언제부터인가 미국인을 상대로 하는 기지촌 클럽에서는 한국여성을 찾아볼 수 없다. 80년대 후반부터 경제가 발달하고 한국여성들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양공주는 러시아와 필리핀 여성들로 교체되었다. 후에 미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윤금이 사건과 미순이 효순이 미군장갑차 사건 등 미군에 의한 참혹했던 사건들이 뇌리에 뚜렷이 박히면서 기지촌에 남아있는 한국 여성이라고는 대체된 필리핀 여성들을 업주를 대신해 관리하는 ‘마마’가 전부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암묵적으로 기지촌에 팔려갔던 한국여성들의 설움이 고스란히 동두천 거리를 가득 채우는 러시아와 필리핀 여성들에게 짊어져 가고 있다. ▶기지촌의 꿈꾸는 ‘필리피노들’ 동두천시의 보산동 클럽 골목에는 영업시간 이전에도 주변의 상점을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는 러시아와 필리핀 여성들을 볼 수 있다. 클럽에서 일한지 올해로 4년째 된다는 러시아 여성 쏘냐(32)는 러시아에서 결혼까지 했었던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나 결혼생활 5년 뒤에 생겼던 아이가 잘못되어 유산되고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자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시험관 아이 시술을 위해 돈을 벌 생각으로 한국에 와 일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고 있었다. 이제 19살로 평범한 학생이었을 필리피노 제이미는 고국에 세 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이다. 필리핀의 조혼풍습 때문에 일찍 아이를 낳은 그녀는 “2만 달러를 벌어 고국에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에 이제 2년만 더 고생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녀의 철칙은 “절대 임신하지 않고, 미국병사들에게 사사로운 정을 주지 않는 것”이다. 과거 미군들과 결혼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한국여성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부분 기지촌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들은 돈이 필요해서 한국에 들어왔다. 가난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을 하고, 동거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져 남겨진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평범했던 삶은 끝나고 낮밤의 일상이 뒤바뀌어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미군들의 시중을 든다. 화려한 불빛이 비추는 클럽 거리는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삶의 터전으로 어떡해서든 한 명의 손님이라도 끌기 위해 그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주스 시스템’, 2차는 선택이 아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클럽에는 삼삼오오 짝지은 미군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클럽에서 파는 것은 엉뚱하게도 ‘주스’이다. 미군이 주스를 주문하면 ‘마마상’이라고 불리우는 업주 밑의 관리인이 파란색 컵에 담긴 주스를 여성들의 앞에, 맥주는 미군 앞에 대접한다. 주스를 마시면서 여성들은 미군의 얘기를 들어준다. 얘기하는 과정에서 키스나 애무정도는 기본 주스값에 포함되어 있다. 클럽의 중앙에서는 번쩍이는 조명 아래서 비키니 입은 필리핀 여성이 몸을 요염하게 흔들고 있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미군이 시중드는 여성을 맘에 들어 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뒷거래’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른바 ‘주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지촌에서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는 싸구려 ‘주스’를 한잔 당 만원에 팔면서 실제로는 주스가 아닌 미군 옆에 앉게 되는 여성들을 팔고 있다. 교묘하게 ‘주스를 팔고 사주는 행위’로 성매매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2차’는 주스 쿼터제를 통해 여성들에게 강제되고 있다. 클럽 업주는 매달마다 필리핀 여성들을 데리고 있기 위해 연예기획사에게 지불하는 약 120만원과 집세와 식비, 클럽의 기본적 운영비를 모두 여성들에게 요구한다. 이 운영비를 지불하기 위해 여성들은 한 명당 한 달에 주스 2백~3백 잔의 쿼터를 채워야 한다. 만약 쿼터를 채우지 못할 경우 업주와 마마상은 끊임없이 그 여성에게 압력을 가하며 본국으로 보내버린다는 협박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곳에 오기 위해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자했던 여성들은 돈도 벌지 못하고 쫓겨날까봐 쿼터를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쿼터를 채우기 위해선 일주일에 60~70잔, 하루 평균 8~10잔을 마셔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한번 나가는 것으로 주스 20~30잔으로 채워지는 2차는 클럽 여성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인신매매적’ 연결고리로 인권침해는 심각 비참한 현실을 모르고 단지 ‘황금빛 미래’를 꿈꾸며 입국했던 여성들은 ‘외국인 연예인기획사’라는 그럴 듯한 명칭의 중개를 통해 기지촌 클럽으로 들어오게 된다. 2003년 관광업소 내 외국인 공연을 위해 ‘댄서’비자를 받은 외주여성들이 성매매 업소로 연결된다는 지적에 법무부는 그 비자발급을 중단했었다. 이러한 조치는 연예인기획사를 통한 일반적인 기지촌 여성들의 입국 방법이 되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입국 시에 서류를 위조하고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지불하며 그것이 일종의 ‘선불금’이 되어 매니저에게 묶인 ‘인신매매적’ 형태의 관계로 얽매이게 되었다. 이러한 은밀한 주종관계에서 인권유린이나 착취가 없을 리가 없다. 월급을 떼이거나 2차 성매매를 강요한다 해도 불법체류자로서 사법 당국에 신고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는 심각해지고 있다. 기지촌여성 자활단체 ‘두레방’의 유영임 원장은 “무엇보다 기지촌 여성들의 계약이 인신매매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을 공론화시키고 이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반인신매매 법안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체계적인 구제책 마련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클럽 여성의 인권침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인식 변화가 가장 필요한 것으로 주둔군을 위해 사실상 미군 전용의 클럽 문화를 인정하고 유지시키는 것부터가 잘못된 관행이다. 인신매매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가속화되어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양공주들의 설움을 달래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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