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가 그동안 국민을 실망시키고 국민으로부터 멀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이유들 중에서도 국회의원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매몰돼 있고, 그를 위해 여야가 피 말리는 싸움을 벌여왔다는 것이 가장 핵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정치가 다 그렇지만은 않다는 상황이 연출돼 작은 희망이 생긴다. 진정성을 가지고 호소하고, 그 호소에 여야 의원들이 당리당략을 떠나 손을 들어준 훈훈한 일이었다.
지난 2일은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새해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마지막 날이었고, 여야는 이날 12년 만에 처음으로 ‘지각 처리’ 오명에서 벗어나 제 날짜를 지켜 예산안을 합의 통과시켰다. 그런데 특히 올해부터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은 이날 자동부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당 입장에서는 시간이 무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매출액 중소-중견기업 가업 상속 시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표결에서 부결된 것이었다. 당초 여당은 고민 없이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반대표가 무더기로 나온 이변이었다. 이런 이변에는 한 사람의 역할이 있었다. 바로 새정치민주연합 초선의 김관영 의원이 주인공이다. 김 의원은 개정안 표결 직전 반대토론자로 나서 차분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이 개정안이 가진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 의원의 반대토론에 새누리당 의원들마저 감동해 무더기 반대표를 던지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개정안에 대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 당 차원에서도 ‘부자감세’라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막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반대하면서도 합의처리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회 선진화법 때문이었다. 자동부의될 경우 그 어떤 물리력을 동원하더라도 국회의장이 일방 처리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게 돼 부득이 합의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김관영 의원이 반대토론으로 여당 의원들을 설득시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김 의원은 반대토론에서 꼼꼼하게 준비해온 비교 분석자료까지 제시하며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전체 법인 51만여 개중 714개만이 이 제도의 제외대상이 된다”며 “그 방법이 부자들에게 수백억 원 세금을 면제하는 방식은 안 된다”고 호소했다. 김 의원은 “현명하신 의원님들께서 국회의 권위를 세워달라”고 거듭 호소하며 반대주장을 펼쳤다.
김 의원의 논리정연한 주장과 호소는 의원들에게 통했다. 이어진 표결에서 의원들은 여야가 합의한 수정동의안에 262명이 투표해 찬성 114명, 반대 108명, 기권 40명으로 부결시켰고, 뒤이은 정부 원안에 대해서도 찬성 94표, 반대 123표로 부결시켰다. 여당 의원들도 무더기 반대표를 던졌다는 의미였다. 특히, 새누리당 내 대표적 경제통으로 불리는 이한구 의원은 물론이고 의원 자격으로 표결에 참여했던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반대표를 행사했다.
표결 결과에 여당도 야당도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김관영 의원을 주목했다. ‘김관영’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것은 물론이고, 여야가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하고 소통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했다. 정치가 이래야 한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어떤 내용의 법안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만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지금까지의 정치 문화를 청산해야 할 것이다. 소신껏 법안을 발의하고 소신껏 투표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부결과 같은 일들이 우리 정치에서 더 많이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그것이 곧 국회의원들이 진짜 해야 할 일, 국민을 위한 진짜 정치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