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바스케스 당선… 기로에 선 좌파실용주의
우루과이 바스케스 당선… 기로에 선 좌파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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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 합법화 법 등 수정 가능성 시사”
▲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우루과이에서 치른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집권당인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의 타바레 바스케스(74) 후보가 승리했다. 사진은 이날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던 모습 ⓒ 뉴시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우루과이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집권당인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의 타바레 바스케스(74) 후보가 승리했다.

바스케스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최근 실시한 브라질·볼리비아에 이어 남미 3개국 모두 집권 좌파들이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번 바스케스의 승리로 우루과이는 세 번 연속해서 좌파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사건’을 만들었다.

우루과이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 5년 단임제다. 당선자는 내년 3월 1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전세계의 눈은 전 정권의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 수정 가능성 및 그의 좌파 실용주의 노선의 전개 양상에 주목하고 있다.

의사 출신인 바스케스 당선자는 이미 2004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해 우루과이 역사상 첫 중도좌파 정권을 출범시켰다. 당시 바스케스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바스케스 전 대통령은 2005~2010년 집권하면서 강력한 친서민 정책을 펼쳐 우루과이 국민에게는 희망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5년 집권 시기 동안 바스케스 전 대통령은 복지예산을 증액하고 노동자의 근로 및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가 친서민 복지 정책에만 올인한 것은 아니었다. 기업프렌들리 정책을 병행한 결과 우루과이의 빈곤율을 5년을 거치면서 32%에서 20%로 낮아졌다. 이런 공로를 인정한 우루과이 국민들은 그가 대통령을 물러날 때 70%의 지지율로 화답해주었다.

퇴임 당시 바스케스는 기적의 지지율 속에서 좌파 게릴라 출신 호세 무히카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겼다.

바스케스 정권을 이어받은 현 무히카 대통령의 지도 아래 좌파연합은 낙태, 동성 결혼과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보수적인 정책 일색이던 우루과이가 정책 기조를 급선회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던졌다.

이러한 급격한 정책 변조로 우루과이는 군부 독재의 나라라는 이미지에서 탈피, 라틴아메리카에서 진보적 사회 정책들에 앞장선 나라라는 평판을 받게 됐다.

바스케스는 이번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하나 건너 뛴 징검다리 연임에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좌파의 합법적인 장기 집권이다.

바스케스는 지난달 30일 TV 당선 확정 연설에서 “우루과이 국민들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권리, 더 좋은 민주주의와 더 좋은 시민권에 대해 ‘예’라고 말했다”고 평가했다. 바스케스의 “우루과이는 멈추지 않는다”는 선거공약에서 나타났듯 정부 여당의 정책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마리화나 합법화 법의 수정 가능성을 암시했다.

핑크 타이드…마약 합법화 도미노처럼 번질까

10월 12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대선 1차 투표에서 압승을 거두며 3선에 성공했고, 같은 달 26일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극적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좌파정권의 실험장이라고 간주된 남미 3개국 대선이 모두 좌파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좌파)’의 살아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1999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당선을 시작으로 남미에서는 좌파 정권이 잇따라 창출됐다. 현재 남미 12개국 중 콜롬비아와 파라과이를 뺀 10개국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고 있다. 그런데 이들 좌파 정권 모두 ‘마약’ 문제 해결을 놓고 홍역을 앓고 있다.

브라질은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마약조직 소탕작전이 한창이다. 브라질에게 마약조직과 슬럼가의 빈곤 문제, 높은 범죄율은 대규모 국제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루이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퇴임 전에 “마약조직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모든 지원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루이스 바헤토 브라질 법무장관은 페루와 볼리비아 외에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과도 마약조직 퇴치를 위해 공동 협력할 뜻을 밝혀 사실상 남미 제국(諸國)들과 대응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콜롬비아는 남미 최대의 마약공급지로 세계 코카인 생산의 70%를 도맡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말부터 ‘플랜 콜롬비아’라는 이름으로 콜롬비아 정부의 마약 거래조직 축출 노력을 지원하고 있지만 1999년 1,657㎢이던 콜롬비아의 코카 재배 면적은 2004년 2,505㎢로 오히려 늘었다.

유엔에 따르면 2010년 전 세계 코카인 이용자 수는 1,300만 명이다. 마약 조직의 거래 수입은  연간 4,000억∼5,000억 달러(약 460조~570조원)로 추산된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코카인이 콜롬비아인들에게 문화 전통의 일부라며 합법화를 추진 중이다.

우루과이의 세계 최초의 마리화나 합법화는 마약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미 여러 나라는 마약에 대한 근본적인 수요를 줄이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력 아래 마약 조직을 상대로 끝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미국은 자국 내의 마약 소비자들의 수를 감소시키는 데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은 마리화나를 ‘진정한 마약’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2013년 갤럽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합법화를 지지했다. 11월 4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오리건과 알래스카주는 마리화나 소유와 판매를, 워싱턴DC는 사적 사용과 재배를 허용하기로 했다.

콜로라도와 워싱턴주는 2012년 마리화나를 기호품으로 인정했다. 9월에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지도자급 인사 21인이 마리화나 합법화를 촉구했다.

지난 5월 우루과이의 무히카 대통령은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법을 세계 최초로 공포했다. 이 법에 따라 18세 이상의 국민은 일반 약국에서 마리화나를 1인당 월 40g까지 구매는 물론 판매와 생산도 가능해졌다.

이런 추세에서 같은 좌파 진영인 바스케스 당선자가 마리화나 합법화 법을 보는 시각은 좀 다르다. 바스케스는 대통령 첫 임기 동안 금연 운동을 펼친 전력대로 마리화나 법에 우려를 표명하며 이 법의 요건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루과이의 엘 파이스 신문은 최근 그가 이 법안을 수정하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고 보도했다고 CNN이 1일 전했다.

바스케스 당선자는 “마리화나 법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엄격하고 매우 면밀하게 조사하고 이 법안을 매우 신중하게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라도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체 없이 수정하겠다”고 말했다고 엘 파이스가 전했다.

마약 합법화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핑크 타이드’ 속에서 이 같은 좌파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마약 합법화 논쟁 찬반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우루과이 공직사회 부패 적어
친서민이냐 친기업이냐 갈림길

우루과이는 지난 5년간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9%의 부진한 성장률을 보인 2009년을 제외하고 연 평균 8.0%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친시장 정책, 깨끗한 정치 환경과 치안 불안 요소 해소 등이 우루과이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스케스가 우루과이 현대사에서 최초로 출범시킨 좌파정권이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을 거치면서 경제개혁 정책들이 연속성을 갖고 추진되고 있는 것도 우루과이의 밝은 미래를 점치게 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지난 5년간 경제성장률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파로 2.9%의 낮은 성장률을 보인 것을 제외하면 연 평균 8.0%를 유지해왔다.

인구 334만 명의 우루과이는 올해 세계 경제자유지수 조사에서 중남미 국가 중 칠레와 세인트루시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특히나 우루과이는 다른 ‘핑크 타이드’에 비해 공무원이나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가 만연돼 있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는 최근 보고서에서 우루과이는 중남미에서 빈곤층 비율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우루과이는 농업이 발전해 쌀 수출 규모가 세계 7위다. 지난해 쌀 생산은 160만t에 달하고 수년 안에 200만t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우루과이 역시 글로벌 경제 위기로 저성장 기조가 강제되고 물가와 범죄가 증가하면서 좌파의 지지층인 빈민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바스케스 대통령이 퇴임 때의 70%의 지지를 받았던 반면 이번 선거에서 50%를 겨우 넘는 득표를 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바스케스는 이런 위기에 더 적극적인 실용주의 정책 추진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상승을 위해서 친서민 정책을 포기할 수 없는 여건이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친기업정책을 한층 더 강화하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빈곤층 및 서민의 민심 이반이 가속화될지도 모른다. 올해 그의 마리화나 합법화 수정 가능성 시사는 그래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2005년에는 민중의 뜨거운 바람이 넘치는 낭만적 시기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며 “더 많은 실용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교육과 과학 기술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 기업 환경 개선 등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온 바스케스의 실용주의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취할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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