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 곳곳에 균열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균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오로지 면피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러니 어떤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리가 없다. 해결하는 척은 열심히 한다. 줄기차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미안해 한다. 아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오히려 피해자를 타박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적극적으로 책임을 도맡겠다고 하는 사람들보다 자기 몸이나 가족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많다. 혼탁한 세상에서는 이런 생활 자세가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제 그런 식으로 버티기에는 한계 상황에 봉착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회 모든 부문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취생몽사의 사회다.
세월호 이후에도 정신 못차리는 한국인들
올 한해도 이제 몇 주 남지 않았다. 아직도 진행 중인 416 세월호 참사는 사실상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 실종자 유족들이 납득할 만한 사고원인이나 대처방안은 생각조차 못하고, 여야의 줄다리기 속에서 무슨 ‘특별법’ 만들다가 시간만 다 보낸 한 해였다.
그러나 세월호보다는 그 규모가 작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끝없이 이름만 바꿔 터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불가항력적인 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 면피의 시스템 속에서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본질적인 문제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권력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지적하면 그것이 해결을 하기 위한 하나의 의견 제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이득 보호 차원으로 바로 연결시켜버리기 때문에,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에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재난이 속출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11일 ‘서울경제’ 언론 보도를 보면 최근 수족관 누수로 논란을 야기한 제2롯데월드가 식당가의 바닥 균열을 시멘트로 덮어 은폐하는 공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밌는 것은 제2롯데월드는 지난 10월 식당가 바닥 균열이 논란이 되자 이를 “디자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디자이너가 힘들게 만든 디자인을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제2롯데월드 식당가 바닥 균열은 지난 10월 시민단체에 의해 안전성 문제가 지적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MTN은 지난 10일 제2롯데월드에서 논란이 됐던 5층 식당가의 바닥 균열을 시멘트로 덮는 보수공사를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보수 작업을 하게 됐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디자인이라고 했으면 그 디자인의 의미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이해시키는 게 도리다. 그런데 불리해지자 신속하게 사태의 본질을 말로 때우려 면피하려는 태도가 나타난다.
무슨 일이 터져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누군가는 피해나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덕을 본다. 사회가 이렇게 합리라는 자기 만족 속에서 비합리적으로 굴러가다 보니까 사회 관련해서는 거의 나쁜 뉴스들만 양산되고 있다.
대통령,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대통령이 한국의 재난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선언하고 눈물까지 흘렸음에도 도심 한복판인 지하철 환기통에서 또 사고가 터졌을 때 황근 선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중부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앞으로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장담했던 것을 생각하면 씁쓸한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적었다.
정치인들의 허언벽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논외다. 거짓말하는 버릇은 그러나 교육적으로 상당히 안 좋다. 교육에 육체가 있다면 숨 쉬듯이 거짓말 하는 버릇은 신경계에 생긴 암 같은 것이다. 이 암을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건강을 얘기하고 복지를 얘기하고 하는 자체가 사리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일이다. 헛일이다.
왜 이와 같은 사고, 반성, 대책 마련, 다시 사고, 반성, 대책 마련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사건들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각 문제마다 접근방식이 다르다. 구조적인 문제는 책임자들이 스스로 정비할 시한을 준 다음에 그래도 안 될 때는 외과의가 메스를 들고 환부를 도려내듯 적출해 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오룡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되풀이 발생하는 사회
“큰 심려를 끼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내가 지겠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이 지난 1일 베링해에서 오룡호 침몰 이틀 후인 3일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한 사과의 말이다. 실종자들은 이 말을 고마워했을까?
11일 ‘부산 해양안전 경비서’에 따르면 사조산업의 승선공인 담당은 필수선원인 2, 3기사 없이 오룡호가 출항했고 선장과 2항사, 기관장, 1기사가 부적격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또 한국인 선원 11명 중 선장을 비롯, 핵심 선원 4명의 자격증이 선박직원법에서 정한 기준에 미흡한 것으로 나왔다. 선박직원법은 안전운항을 위해 선박의 크기, 용도, 추진기관의 출력에 따라 ‘필수 승무 선원’을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기상악화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 선사가 기준을 초과한 과도한 할당량을 갖고서 출항한 점도 문제시됐다. 이쯤 되면 세월호 얘기인지 오룡호 얘기인지 헷갈리게 된다.
사조 회장은 사과했지만 실종자 가족들도 “선사에서는 퇴선 명령을 선장 몫으로만 돌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불거진 의혹들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유령 선장을 태운 오룡호나 비정규직 선장을 태운 세월호.
과도한 할당량을 갖고 출항한 오룡호나 화물 과적으로 기울어진 세월호.
세월호 참극이 오룡호로 이름만 갈아타고 다시 발생한 것이다.
취재 뒷 이야기
얼마 전 제보를 받았다. 미국에서 살다가 온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한국에 와서 주한 미군들에게 살 집을 알선해주는 부동산업체에 들어갔다고 유부녀인 사장과 관계가 깊어졌다. 그래서 올해 초 사장의 딸도 함께 만나는 등 관계가 깊어졌으나 지난 8월에 결별하자고 하길래 그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이미 그만 둔 그 부동산 회사를 몇 번 찾아갔다. 그러다 얼마 후 이 여사장이 지방의 유명한 조폭 한 명을 데리고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찾아와 심한 욕설과 함께 공갈 협박을 했다고 한다. 한국 물정에 어두운 순진한 사내는 몹시 놀라 직후 정신과에 가서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순진한 남자는 경찰서에 그 협박 건에 대한 고소장을 작성해서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 협박 용의자의 모습까지 찍고 사건 개요까지 제대로 작성한 고소장을 가지고 가면서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돼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당시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지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몹시 거칠게,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마치 무슨 범죄의 용의자인 양 자신을 대했다고 한다. 이 표현은 제보자가 예민한 때였기에 과장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 고소장 접수 거부하다 감찰
수사 미적대다 주요 용의자 도망
요양병원 주무기관, ‘경찰 수사 결과 기다려’
경찰 주장은 여기서 고소장을 접수하더라도 어차피 이 서류가 사건 발생지로 가고 그러면 시간 낭비만 할 뿐이니 그렇게 얘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의 일은 이런 사건에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경찰의 업무 아닌가? 이 제보자는 경찰의 이런 태도에 승복하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결국은 상급 경찰청까지 가서 해당 경찰들은 현재 감찰을 받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치정에 얽혔던 한 남자의 철부지 고소장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단순 민원 정도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경찰이 신속하게 고소장을 받아서 수사를 진행했더라면 이 남자의 고통은 완화되면서 한국 경찰에 대한 신뢰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건 발생지나 피고소인의 주소와 상관없이 모든 경찰서는 고소장을 접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 경찰은 고소인에게 그런 일로 왜 국가인권위까지 가는 등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시사포커스’에서 보도했고 MBC 2580에서도 문제 삼은 S요양 병원 사건이란 것이 있다. 요양병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이사장을 사칭한 김아무개 씨는 법이 금지하는 부정, 잘못된 방법으로 설립 조건을 소위 ‘가라’로 만들어 환자 매매, 돈 빌려 오라 해놓고 직원 고용, 내일 고희를 바라보는 여직원을 ‘제2진료실’에서 강간했다는 등 온갖 추문에 휩싸인 인물이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요양 병원 불법 설립 건과 성추행 및 강간 건 등을 고소장을 접수한 것이 지난 8월이었다. 지금까지 고소인들이 왜 수사를 하지 않느냐 그러다가 도망가면 어떡하느냐 하고 항의를 해도 경찰은 ‘2개월 동안 수사를 할 기간이 보장돼 있다, 수사할 수 있는 서류 일체가 없다’ 등 자신들은 늑장 미적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던 중에 용의자는 외국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얘기도 경찰 쪽에서 나왔기 때문에 실제로 도망갔는지 어쨌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런데 경찰은 뚜렷한 혐의점이 있는 경우에도 증거가 안성맞춤으로 마련돼 있지 않으면 수사를 안 해도 되는 건가?
이사장을 사칭한 자는 그동안 병원을 전횡으로 운영하면서 각종 빚 등을 병원 담보로 끌어 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금 현재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직원들과 환자들이 받고 있다. 2주 전 직접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직원 월급 주기에도 빠듯하다고 한다.
요양 병원의 임원진과 직원 및 환자들이 받는 이러한 피해들이 왜 여전히 지속될 수밖에 없는지 궁금해 주무기관에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
첫째, 요양 병원을 설립 시부터 지금까지 ‘분탕질’ 치고 도망간 피고소인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둘째, 현재 병원 관련 서류가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 이것들을 회수할 방법은 없나?
이 두 질문에 대해 돌아온 답은 한결 같았다. “이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해서 “그러면 지금 그 요양병원 피해는 진행 상태 그래도 놔두어야 하느냐”고 되묻자 “경찰 수사 결과를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지금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고소인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다고 하자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