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출렁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 정확한 진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하나의 문건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언론들은 매일 같이 너도나도 앞 다퉈가며 단독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 야당은 또 이를 빌미로 대여 공세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정치권은 지금 점입가경인 상황이다.
그런데 정치권과 언론은 이렇게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조금만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면 상황은 또 다르다. 연말연시 꽁꽁 언 몸을 가느다란 불씨에 녹여가며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란 무릇, 국민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해주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권은 싸울 때 싸우더라도 민생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민생을 멀리하는 순간 그 어떤 정당한 명분을 갖춘 싸움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은 정치권에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다. 내 삶과 상관없는 그들만의 싸움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물론, 문건에 적혀 있는 대로 십상시 의혹 등이 모두 사실이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반드시 관련자들을 엄히 처벌해야 할 것이며, 다시는 이런 비선실세 논란이나 청와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정권 차원에서 더 단단히 권력의 주변을 관리하고 더 탄탄한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정치권과 언론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다. 언론의 의혹 제기에 청와대는 고소-고발로 맞서고 있고, 대통령은 또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사실 무근’이라는 답답한 속을 표현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는 오해를 사고 있다. 이에 야당은 또, 대통령을 비난하고 검찰에 대해서도 정치검찰이라며 무한정 국민적 불신을 키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언론들은 또 언론들대로 서로 정보력 경쟁을 펼치면서 사태를 점입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문제가 어떻게 풀릴 수 있을 것인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검찰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통령은 사실 무근이라고 해놨는데, 여기서 사실이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것도 부담일 테고. 그렇다고 또 아무런 혐의점도 찾지 못하고 소위 찌라시로, 문건을 유출한 일부 세력의 조작극으로 마무리 한다면 이 역시 편파 수사 논란에 휩싸이며 또 다시 검찰의 중립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진실을 밝혀내면 그만이겠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이미 너무 깊숙이 개입해 버린 탓에 검찰도 속이 타들어 가는 듯 보인다. 시중에서는 결국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밝혀내는 힘보다 솔로몬의 지혜라는 조소 섞인 말들까지 나오고 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자원외교에 대해 여야가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해 친이계 쪽에서 말들이 많은 것 같다. 당내 주류세력인 친박계가 야당과 손잡고 자신들을 겨냥할 목적으로 국정조사를 수용한 모양새니, 서운함과 배신감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더 논란이 없으려면,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의 주장처럼 국정조사가 자원외교를 왜 했느냐 차원에서, 또는 전 정권에 대한 모욕주기 차원에서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다. 말 그대로 그 과정에서 타당한 비리 의혹이 있다면, 그 부분만을 놓고 조사가 이뤄져야지 정치적으로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몰아가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친이계는 당 지도부가 이런 국정조사를 수용한 게 최근의 ‘십상시 파문’을 덮어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야당에 자신들을 재물로 받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어떤 이유에서라도 십상시 논란의 물타기용으로 이용되는데 대해서는 결코 국민이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지금 십상시 비선실세 의혹 문제를 두고는 친이계와 손을 잡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원외교 국정조사 문제에서는 또 친박계와 손을 잡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야당의 이런 양다리 전략은 지금 당장에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듯 하나, 얼마 가지 못해 역풍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야당도 정국 주도권을 잡아보고자 감당도 못하는 이슈들을 무조건 펼쳐놓기 보다는,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민생도 챙기는 대안자적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야당 자신들을 위한 길이자, 정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이고, 국민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지금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연말정국에서 모두가 따뜻해질 수 있는 길을 우리 정치권이 찾아줄 수 있길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