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전집 5 - 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의 단편은 지난 십수년 간 수많은 해적판 모음집을 통해 질릴 정도로 반복 소개되어 왔기에 일정부분 신선감과 관심도가 떨어졌을 법도 하다. 거기에, 해적판 특유의 열악한 번역 상태는 물론이고, 씌어진 시대 순서도 엉망으로 짜깁기 되어있어 작가의 시대별 세계관과 저작성향의 추이를 짐작하기 어려웠으며, 작품들의 성격도 제각각이어서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실망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 바로 스티븐 킹의 단편들인데, 이번에 '제대로 된' 라이센스 절차를 거친 "스티븐 킹 전집" 시리즈의 다섯번째 순서로 등장한 "스티븐 킹 전집 5 - 스티븐 킹 단편집"은 그간 스티븐 킹 단편에 대해 가져왔던 독자들의 불신감을 말끔히 씻어줄 수 있는 '고품질'의 번역서적으로서 팬들과 여러 독자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스티븐 킹 전집 5 - 스티븐 킹 단편집"은 스티븐 킹의 초기 단편 모음집인 "Night Shift"를 옮긴 것으로서, 순문학적 색채가 진하게 드러나는 중·후기의 단편들에 비해 '공포 문학'으로서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는 컬렉션에 속하며, 중·후기의 장편들에서 엿볼 수 있는, 바로크적 중후함과 도회적 날카로움이 서로 만나 이루어진 독특한 무드가 단편들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기기묘묘한 아이디어들을 흩날리고, 아이디어 자체의 효용시점이 끝날 즈음에 바로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구조인 그의 초기 단편들은 육중한 느낌의 장편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흥을 전해주고, 오히려 의식에 각인되는 인상의 측면에선 더 강렬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해, 스티븐 킹이야말로 단편과 장편 각각의 성격을 명확히 알며, 양면에서 모두 괄목할 만한 성취를 거둔 흔치 않은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에 대해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이 "스티븐 킹 전집 5 - 스티븐 킹 단편집"에는 유난히 영화화된 단편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자신의 작품이 가장 빈번하게 영화화되는 작가로서 잘 알려진 것이 스티븐 킹이지만,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경우 장편영화화되기 다소 버거운 단발성 아이디어들이 대부분이어서 의아함을 자아내는데, 특히 수록된 단편 중 "트럭"은 스티븐 킹 본인의 연출에 의해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라는 영화로, 다른 연출가에 의해 "트럭"이라는 제목 그대로 두차례 영화화되기도 해 영화작가들이 이 단편집에서 얻은 감흥과 영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에, 한가로운 교외주택지의 중산층 가정 묘사에서 몽환적인 호러무드로 변환해내는 "잔디깎는 사람", 미국이라는 신천지에 클라이브 바커적인 신화성을 입힌 "옥수수밭의 아이들" 등이 주목할 만한 작품이며, 스티븐 킹이 종종 내보이는 '순문학적 성향'의 초기형태인 성장 스릴러 "사다리의 마지막 단"도 정확한 밸런스와 잡종교배적이면서도 간명하게 주제를 일축하는 통쾌감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면, 역시 이미 많은 팬층을 지니고 있는 "금연주식회사"를 들 수 있다. 잔혹한 유머센스와 진한 사회풍자적 요소, 그리고 심리적 요소를 실체화시켜 현실과 대립시키는 스티븐 킹 특유의 전개방식이 한 데 녹아있는 작품으로서, "스티븐 킹 전집 5 - 스티븐 킹 단편집"의 백미이자, 스티븐 킹 단편 세계를 통털어서도 손에 꼽힐 법한 걸작 단편이다.
스티븐 킹의 장편을 주로 접해 온 독자들이라면 이 단편집에 대해 어딘지 심심하고, 중심이 빠져있다는 견해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스티븐 킹은 호러문학의 형식 내에서 분명한 주제의식을 심어놓고, 이를 둘러싼 정황묘사를 통해 주제의 겹을 쌓아가는, 복합적인 화법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들 장편들의 무거운 주제의식과 굳이 비교해보지 않아도, 스티븐 킹 단편들은 주제 자체가 희박하거나 아예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단발적인 아이디어들을 그저 적어내리기만 한 '아이디어 북'이라는 생각까지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단편에는 장편에서 맛볼 수 없었던 특유의 '선명함'이 배어있으며, 다중적 구조를 지니지 않은 데서 비롯된 날렵함, 발작적 전개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광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모더니즘의 시작이 그러했듯, 스티븐 킹은 단편소설을 통해 주제를 제어시킨 채 자신의 '정서'만을 직접 이입시키고자 하는 독특한 비젼의 야심가일 수 있으며, 이 초기 단편집은 이런 '정서'를 독자에게 액면 그대로 '주사'하는 '주사기'의 역할로서 독자들에게 작용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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