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춘 사건에 이어서 박춘봉 사건 등 중국동포 등 외국인과 관련한 강력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제노포비아’가 생겨나오고 있다. ‘제노포비아’는 낯선 것, 이방인이라는 ‘제노(xeno)’와 싫어한다, 기피한다는 뜻의 ‘포비아(phobia)’가 합쳐진 말이다. 즉, 이는 외국인 혐오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제노포비아’ 현상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그 수준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지역사회 차원에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중국동포들은 서울시 독산동, 가산동, 대림동, 안산, 수원 등 전국에 걸쳐 집단으로 모여 살고 있다. 이들과 우리 주민들은 중국동포와 생활 속에서 마주치고 함께 일도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 우리 주민들은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지나다니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며 중국동포들 또한 여론악화가 우려돼 잔뜩 움츠린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에 중국 국적의 동포인 박춘봉(55)씨가 용의자로 지목된 가운데 중국동포 사회는 또 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그 이유는 2년 전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던 오원춘 사건의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번 팔달산 토막살인은 2년 전 오원춘 사건과 비슷한 점이 있어 자연스럽게 오버랩(overlap)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은 오원춘 사건 현장과 불과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수원시 팔달산 근처이며 두 사건 모두 용의자가 중국동포다. 또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해 비닐봉지에 담아 유기했다는 것이다.
◆잇따른 흉악범죄 ‘오원춘’, ‘박춘봉’
오원춘씨는 지난 2007년 9월23일 조선족에게 부여되는 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범행 당일, 전봇대 뒤에 숨어 피해 여성과 일부러 몸을 부딪힌 후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갔다. 오씨는 피해 여성의 옷을 모두 벗긴 후 성폭행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손과 발, 입을 청테이프로 묶고 피해 여성을 성추행했다.
다음날 다시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피해 여성이 완강히 저항하자 화가 난 오씨는 피해 여성을 둔기로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오씨는 사람의 형체라고는 알아보기 어려울정도로 시신을 356토막을 내고 뼈와 살을 구분해 봉투에 담았다. 오씨는 시신 훼손에 대해 “시신 유기에 용이하게 하려고 미국 갱 영화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며 “성욕을 느껴 강간하려고 납치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오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기징역과 신상정보 공개 10년, 전자발찌 부착명령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항소심의 양형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고, 상고이유가 부적법하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최근 팔달산 근처에 토막시신을 유기한 박춘봉(55·중국동포)씨는 ‘제2의 오원춘’ 사건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만큼 중국동포의 신분, 범행 수법 등 비슷한 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일 등산객 임모(46)씨는 수원시 고등동 팔달산 등산로에서 토막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당시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긴 토막시신을 인체의 일부로 추정하고 시신 발견 지점 인근을 수색했다.
이후 팔달산 토막시신 발견 지점에서 1.2㎞ 떨어진 팔달구 매교동 매세교 인근 수원천 산책로에서 살점 등이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 4개를 발견됐고 추가 수색에서 2개가 더 나왔다. 비닐봉지에 담긴 살점의 DNA는 앞서 발견한 토막시신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감식됐다.
이어 경찰은 시민의 제보를 받고 팔달구 박씨의 월세방에서 감식을 통해 사람의 혈흔, 토막시신이 담겼던 비닐봉지와 동일한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경찰은 수집한 증거물을 박씨로부터 범행을 자백받았다.
박씨는 피해여성의 시신 훼손 등 증거인멸을 위해 집 근처에 새 원룸을 얻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지난 4월부터 동거했던 김씨가 지난달 초 언니집으로 들어간 뒤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앙심을 품어 왔다’는 김씨의 진술을 확보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피해자 김모(48·여)씨의 목 부위를 부검한 결과 목 졸림사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 보인다는 구두 소견을 밝혔다. 이밖에도 경찰은 박씨가 2008년 12월2일 ‘박○’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위조해 입국한 불법체류자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와 같은 흉악 범죄에 대해 해당 지역 시민은 물론 전국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또 중국동포가...”, “이제는 동포가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나가라” 등 대체적으로 중국동포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민 유입 급증…범죄율 ‘과장’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현재 장기 체류 외국인은 136만 7천135명으로 외국인 등록자는 108만 7천512명이고 국내 거소를 신고한 외국 국적 동포는 27만 9천623명이었다. 이 가운데 중국 국적은 74만 5천640명으로 집계됐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동포들의 입국이 크게 늘어 우리 근로자가 기피하고 있는 3D 업종을 종사했다. 이에 따라 중소업계에서는 중국동포를 포함한 이주민 없이는 운영이 되지 않다며 꼭 필요한 인력자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가 재외동포법 제정으로 초청 연령을 지속적으로 낮춤으로써 중국동포가 급증해 부작용도 잇따랐다. 국내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은 그 수가 많아지고 불법체류자도 증가하는 한편, 이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중국과 다른 체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범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중국동포 등 이주민들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사법적인 처벌 이외에도 강제 출국되는 등 엄격한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강제 출국은 현재 중국동포가 2년에 벌금 30만원 이상의 범죄를 2차례 이상, 3년에 벌금 30만원 이상의 범죄를 5차례 이상 저지르면 조치된다. 또 300만원 이상의 범죄를 한 차례 저지르게 되면 바로 출국 조치된다.
오원춘과 박춘봉 역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만큼 더욱 철저한 사법당국의 불법체류자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중국동포가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반면에 실제로 외국인 범죄의 심각성은 다소 과장돼있는 부분이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내국인의 범죄율(전체 인구 대비 범죄건수)은 약 1.97%인 데 비해 외국인은 그보다 절반도 안 되는 약 0.8%에 그친다.
같은 해 경찰청 통계에서도 외국인의 범죄율은 1.7%로 내국인 범죄율 3.95%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특히 “불법체류자가 범죄를 일으킨다”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합법체류자(1.88%)보다 불법체류자(1.13%)의 범죄율이 오히려 더 낮았다(2010년 통계청).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범죄 대비 기소율도 외국인과 내국인 간에 별 차이가 없다. 체류외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인 범죄 건수는 늘었지만 범죄율은 지난해에 전년보다 0.2%포인트 낮아졌다.
이같은 현상은 범죄가 발생하면서 언론 보도에 따라 굳어진 선입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영화 ‘황해’나 ‘신세계’등에서 나오듯이 중국동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면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중국동포들은 무섭고 잔인한 존재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이 모여서 사는 지역에 가거나 중국동포들을 만나보면 순박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가뜩이나 안좋은 여론이 더 악화된다”,“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했다.
◆‘범죄자 집단’ 일반화…“안타까워” 한 목소리
이주민 관련 종사자들은 이주민에 대해 ‘차별’ 은 나아지기 보다는 더 심화되고 있다며 정부와 지역사회의 정책 마련은 물론, 시민들도 인식개선이 필요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수원이주민센터 정지윤 대표는 “워낙에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체감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간혹 이주민들이 식사를 하러 갔을 경우, ‘남의 나라 와서 조용히 밥 먹고 가라’ 등 시비를 거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특히 이번 사태로 후원금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후원을 하시는 분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이같은 사태에 흔들리는 분들이 후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활동에 있어서 후원금이 줄어드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지켜봐야 되는 입장”이라고 말을 아꼈다.
중국동포들이 모여 우범지역화 됐다’는 부정적인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이미 낙후된 지역에 중국동포들이 와서 살게 된 것으로 이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경찰력을 강화한다거나 순찰을 많이 돈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낙후된 부분을 개선하고 생활환경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 곽재석 소장은 “일부 시민들이 중국동포들을 추방하라는 등 강경한 목소리는 비현실적인 것”이라며 “중국동포들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식당, 가사도우미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어 어느 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중국동포들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동포들이 실제로 저지르는 범죄는 생계형 범죄가 많이 연계되어 있다”며 “주민등록증 공문서 위조, 금융거래법을 위반해 보이스 피싱이나 대포통장을 통해 범행을 저지른다. 또 한국에서 번 돈을 환전소를 통해 달러 등을 보내고 받는 불법 거래를 하는 등의 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흉악범죄는 극히 일부 중국동포가 저지르는 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곽 소장은 우리 사회의 다문화 정책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다문화 정책들을 보면 중국동포를 포함한 이주민들의 사회통합프로그램 등 예산 전무한 상태”라면서 “특히 중국동포에 대한 노력이 사실상 없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배척하거나 비난하기만 할뿐 이해하거나 포용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실질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서울시가 지난 16일 외국인주민들을 대변하는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를 내년 하반기에 신설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실효성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협의한 내용이 정책으로 마련되는 의결권한이 있는 협의회나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대표는 “한국사람도 천차만별이듯이, 중국동포 또한 천차만별인 부분이 있다”면서도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지만 범죄에 대해서 옹호하거나 비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중국동포들이나 이주민들에 대해서 이들을 범죄인 취급을 하고 모두를 싸잡아서 비난하거나 욕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염려했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정부는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면서 이것이 불법체류자의 범죄를 부추기는 요소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지역사회의 외국인주민 협의체 마련 등 정책 마련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을 정부 정책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이주민 스스로가 말하도록 하는 것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답한 한편, 이주민에 대한 선입견을 줄이기 위해 “차별 금지법’을 만들어 캠페인, 교육과 함께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