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세대의 차이를 아우르는 격정적인 청춘잔혹사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작지점부터 약 30분 가량이 흐를 때까지, 관객들은 의아함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분명,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복고 영화'의 계보에 놓여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쓰는 언어나 사고방식, 행동패턴 등은 모두 현재시점의 그것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무성의' 또는 '오류'라고 보일 정도로 "말죽거리 잔혹사"의 서두는, 마치 26년 전의 시대상황으로 타임슬립한 현재의 인물들이 시대적 배경에 적응되지 못한 채 플롯 속을 부유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느낌의 서두가 끝나고 전개부에 이르기 시작하면, 이 영화가 이전의 '복고 영화'들이 걸었던 길과는 사뭇 다른 방향을 향해 의도적으로 변칙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복고 영화'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노스탤지어'의 향취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복고 영화'의 주된 셀링포인트라 여겨졌던 노스탤지어의 결여는 전혀 예기치 못한 효과들을 낳고 있는데, 먼저 현재와 똑같은 모습으로 구축된 청춘군상들은 '복고 영화'의 틀 안에서는 이르기 힘든 감정이입의 가장 예민한 영역에 도달하고 있으며, 이 불협화음의 과정이 익숙해질 무렵, 관객들은 '청춘'이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잔혹한 시기임을, 언제 어느 때나 똑같은 방식으로 괴롭고, 고통받으며,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시기임을 '통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제가 되어버린다. 1978년이 아니어도, 말죽거리가 아니어도, 모든 청춘은 잔혹한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같은 사고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동류'들인 것이다. 이들은 수십년간 같은 체인에 의해, 같은 모양새의 틀을 통해 직조되는 오래된 과자와도 같다. 그리고 그 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이런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이야기되는 "말죽거리 잔혹사"는, 영화제작상의 여러 측면에서 너무나도 탁월한 성취를 거뒀기에, 같은 '복고 영화' 쟝르 내에서는 물론, 한국영화사를 꿰뚫는 '청춘 영화'의 계보 내에서도 그 위치를 확고히 할 걸작으로 등장했다. 주로 '교내 폭력'을 통해 청춘의 각박함과 방황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지난 날 '교내 폭력'을 다룬 영화들이 보여준 몇 가지 시선, 즉 이들을 '신화적'으로 다루는 우스꽝스런 시선과 그저 '어딘지 모자르고 기괴한 사고체계를 지닌 아이들의 난동'으로 다루는 시니컬한 시선, 그리고 이 마저도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일부로서 다루는 다소 위험한 시선 등에서 멀찍이 떨어져, 완벽하게 '기억'과 밀착되어 있는 가감없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교내 폭력이 이루어지는 상황 특유의 발작성, 의외성이 그대로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친우와 서로 맞붙어 싸우게 될 때 생기는 기묘한 관계의 재설정, 그리고 이것이 결국 극복되지 못하는 어슴푸레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상황과 인물, 미묘한 감정의 곡선을 이 영화는 완벽히 '기억'해내고 있으며, 그 '기억'으로 인해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보기 드문 쾌거를 달성해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플롯 자체는 그닥 신선하지만은 않다. 한 눈에 반한 여학생을 두고 친한 친구와 벌이게 되는 삼각관계 구도와, 자신을 괴롭히는 학생/학교/세상에 대해 복수극을 펼친다는 두 갈래 줄기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플롯은, '어디에다 있을 법한 이야기'라기 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며, 의외성과 독창성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고색창연한 파트들도 다소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진부한 설정'은 유하 감독이 '기억'해내는 상황의 디테일과 감정의 디테일, 사고의 디테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독특한 양상으로 변모해가며, 결국 '처음 보고 듣는 이야기'로 생각되어질 만큼 독보적인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성취는 '정확한' 기억만이 유지시킬 수 있는 밸런스, 밀착적 시선과 관조적 시선의 절묘한 밸런스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유하 감독은 단 한 번도 이 밸런스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종결까지 한 달음으로 내달리는 뚝심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출연진의 정확한 캐스팅과 연기통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보통 배우들 개개인의 개성과 연기패턴보다도 감독의 연기통제 방식이 더 눈에 띈다는 지적은, 배우들 본인들로서는 어딘지 모욕적인 구석이 있을 법도 한 일인데, 이 영화의 경우, 감독의 방향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연기의 '포인트'를 제대로 밟아준 배우들에게도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으며, 특히 '현수' 역의 권상우에게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활달한 역 전문의 배우가 소심한 역에 도전한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효과, 즉 꿈틀거리는 폭발적 본성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듯한 불안정한 상태를 정확히 묘사해냄으로써 관객들의 복잡다단한 감정대를 일순간에 집중시키고, 폭발시키며, 또 와해시킨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무술연마' 시퀀스들에서도 관객들은 '현수'에게서 의욕보다는 광기를, 흥분보다는 애잔함을 더 먼저 포착하게 되며, 결국 이 시퀀스들은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자 가장 폭력적인 - 물론 정서적인 면에서 - 장면으로 기억되고 만다. 외모를 중심으로 타입캐스팅된 이정진과 한가인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역할을 조정시켰기에 배역의 소화에 있어서 별 무리가 가지 않았고, 특히 '약방의 감초'라는 식으로 반드시 집어넣곤 하는 '개그 전문 조역'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많은 호감을 산다.
유하 감독은 2002년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 스타일을 명확히 차별화시키진 않더라도 이야기를 강렬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내러티브 구축의 달인임을 증명해냈다. 스타일리즘에 심취한 비쥬얼 테크니션들이 쉽게 '작가'의 위치에 오르는 현재의 풍토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유하 감독 나름의 '스타일'은, 스크린에 각인시켜 놓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비쥬얼의 배치 뿐만이 아니며, 흔히 '청사진'으로 여겨지곤 하는 드라마 투르기 구조내에서도 충분히 작가적 개성을 심어놓을 수 있음을, 그리고 감독들의 연기통제 방식 차이와 내러티브 전체를 꿰뚫는 '시선'의 차이 역시 '영화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주요소가 될 수 있음을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소설가 김승옥의 자조적인 멘트처럼, 어찌됐건 모든 작가는 '이야기꾼'으로 분류될 수 있을 뿐이며, '극성'에 의존하고 있는 쟝르라면 그 어떤 것이건, 결국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가 그 작가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키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