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종합대책’ 아직 넘을 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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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차별 해소 vs 장그래 양산법

▲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법 관련 비정규직 당사자 긴급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관계자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의 비정규직종합대책 철폐를 촉구 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미생(未生)’이라는 드라마가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키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이 드라마는 한 무역회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주인공인 ‘장그래’라는 역할이 인기를 끌게 된다.

‘장그래’라는 역할은 스펙은 다른 직원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업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여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사원이었다. 능력은 각광을 받지만 끝내 회사는 장그래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2년의 계약기간을 끝으로 회사를 나가게 된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취업의 구멍은 좁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또한 최근 씨앤앰 케이블방송사의 비정규직 대량해고 문제 등 끊임없이 비정규직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종합대책을 내놨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 대책은 정규직 전환을 늘리고 그로 인한 벌어진 격차는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경영계는 정부의 대책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반면 정부는 구조개선 특위에서 노사가 제시한 안과 병행하여 집중 논의하고 내년 3월까지 합의를 도출, 대책안을 수정·보완해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노사정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어 내년 3월 합의에 이르기까지 협상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비정규직 구제 위한 ‘장그래 법’ 제시

지난해 12월 29일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마련하여, 노사정 논의를 위한 안으로 제시하고 공식 논의를 요청했다. 이번 대책안의 따르면 정부는 일자리를 줄이지 않고 근로자간 격차를 줄이고, 실질적인 고용안정성을 높이며, 성실한 근로자들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통해 정규·비정규직 근로자 간 격차를 해소하고 기업의 정규직 채용 문화 확산, 정규직 전환 기회 확대 등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근로자들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근로자가 계약 기간을 연장 신청 할 경우, 계약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해 총 4년으로 늘린다. 이에 따라 연장 기간을 포함하여 총 4년이 지났을 때,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면 근로자에게 이직수당을 주는 방안을 내놓았다.이 같은 방안은 사업자가 정규직 전환을 피하고 계약 기간 연장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총 계약기간 내 고용 계약 갱신 횟수를 최대 3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는 수개월에 걸친 단기계약을 반복 갱신하는 노동현장의 관행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다만 일용 계약이 상시화 돼 있는 건설일용 등은 예외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수습기간 동안 최저 임금의 90%만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단순노무직의 경우 수습기간을 이유로 급여를 감액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또한 주당 16시간의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주당 12시간)에 포함시키기로 해 근로시간을 단축시킨다. 정부는 이를 통해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잇다. 또한 호봉제를 축소하고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동시에 경영상 해고를 인정해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3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주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일용·용역직 대책으로는 건설일용근로자 퇴직공제금 인상 및 실업급여 수급요건 완화, 임금채권 보장 및 취업 훈련 지원 확대, 감시·단속직 휴게·근로시간 구별기준 마련, 감정노동자 보호방안 마련 등이 담겼다.

파견·도급 근로자 대책에는 종합고용서비스 우수업체 인증제 도입, 55세 고령자 및 고소득 전문직의 파견 전면 허용, 파견직 정규직 전환시 사용사업주에 지원금 지급, 위험작업 인가요건 강화 등이 포함됐다.

이밖에도 고용·산재보험 적용 직종을 확대하는 내용의 특수형태업무 종사자 관련 대책과 학교 비정규직 등의 고용 규모를 제한하고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도 나왔다.

▲ 취업준비생이 주로 포진된 청년세대들은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분노했다. ⓒ뉴시스

◆비정규직 대책 실효성 의문, 노동계·경영계 ‘불만’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노동계는 이번 정부안에 대해 ‘일은 더 많이, 임금은 낮게, 해고도 더 쉽게 하도록’ 만들겠다는 구조개악이 핵심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29일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대상도 좁고 실효성이 낮은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반발을 무마시키고 전체 노동시장의 구조개악과 하향평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쪼개기 계약’과 관련해서는 “고용불안과 희망고문으로 노동자를 종속시킨 후 4년 동안 비정규직을 알뜰하게 벗겨먹고, 결국은 이직수당(연장기간 임금 총액의 10%) 몇 푼 집어주고 해고시킬 것이 뻔하다”고 꼬집었다.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정부에 요구했다. 더불어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추진에 맞서기 위해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설립도 제안했다.

한국노총도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해 “정부의 조삼모사식의 땜질 처방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이들은 상시 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사용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도 ▲불법 사내하도급 근절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 및 노동기본권 보장 ▲사용자들에 대한 지도·감독 강화 등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해소하는 법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계와는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면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주요내용에 대해 비판했다. 경영계는 이번 대책은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의 범위를 과도하게 넓히고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규제만을 강화하면서, 사실상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사정과 노동시장의 현실은 도외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먼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은 30인 미만의 영세·중소기업에 집중되는데, 경제상황과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치 않는 인상은 영세·중소기업의 경영난으로 이어질 우려를 표했다.

정규직 전환 기회 촉진 및 차별·남용 방지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퇴직급여 적용확대’는 장기근속에 대한 공로보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퇴직급여 제도 취지와 맞지 않고, 단기근속자 비율이 높은 영세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정규직전환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업무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기준으로 사실상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는 것은 법에서 규제하지 않은 ‘사용사유 제한’을 유도하는 것으로 기업 인력운용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경영계는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규직 고용에 대한 과보호와 연공급제에 따른 과도한 임금인상에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영계는 정규를 향해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경직성 조정과 고통분담이 선행되지 않고 또다시 추가적인 비정규직 규제를 만들거나, 기업의 부담 증대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최근 tvN <미생>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극증 비정규직의 역할을 맡았던 ‘장그래’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tvN

◆진정한 의미 담긴 ‘장그래’법? 청년세대 ‘싸늘’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비정규직 구제 대책은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의 극중 비정규직 역할의 이름을 따 이른바 ‘장그래 법’으로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해 만화 <미생>의 작가 윤태호씨는 지난해 12월 30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장그래 법’에 대해 “그분들이 만화를 보셨는지 모르겠고요, 일단은. 만화를 보셨다면, 어떤 의도로 보셨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리고 어쩜 이렇게 만화와 전혀 다른 의미의 법안을 만들면서 ‘장그래’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윤태호 작가는 “고통을 연장하는 게 기회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고 보고요. 좀 더 정책을 입안하시는 분들이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비정규직은 607만7000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32.4%를 차지했다. 비정규직이 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정규직과의 차별도 확대되고 있다. 올해 6~8월의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145만3000원인 반면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60만4000원에 달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 차이는 10년 전에 비해 격차가 1.7배가량 차이 났다. 지난 2005년 월평균임금의 차이는 69만원에 불과했지만 올해의 월평균 임금차이는 115만1000원이었다.

그러나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2013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88.2%가 100인 이하 기업에 집중돼 있었다. 또 성별로는 여성은 53.5%로 남자 46.5%보다 높았고, 60세 이상 근로자 중 비정규직은 68.7%, 청년층은 34.5%에 달했다.

특히 취업준비생이 주로 포진돼있는 청년층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비정규직 종합 대책은 대책이 아닌 희망고문을 연장하는 법이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년세대들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은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현행 2년까지 허용된 비정규직의 계약기간을 최장 4년으로 연장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삼고 있다”면서 “비정규직·계약직 채용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정부에서 어처구니없게도 비정규직 신분의 희망고문을 2년 더 연장한다는 정책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정부는 기업이 노동자를 더 쉽게 자를 수 있도록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파견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며 “그야말로 ‘비정규직 양산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청년유니온은 “정부의 정책은 청년 노동자들에게 실체 있는 변화를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가 앞장서서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나가는 한편 사내우보금을 쌓아놓은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중소기업에서도 청년들이 가고 싶은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하고, 실업급여를 포함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고용불안 상태의 위협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들은 “계약직 고용을 4년까지 늘리겠다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란 이름의 앙상하고 저열한 희망고문만이 남았다”며 “정부가 자행하는 희망문을 받아들일 수 없다. 2015년도 경제정책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다시 쓰라”고 촉구했다.

한편 경희대 중앙도서관 등에는 ‘최경환 학생, 답안지 받아가세요’라는 제목으로 최 부총리의 경제 정책을 ‘F학점’을 매기는 등 분노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확산됐다. 성균관대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최경환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최씨 아저씨를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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