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내외적 여건 변화와 경기 침체속에서 한 해를 보낸 우리나라 대표 산업들의 각 업체들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을미년을 준비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유례없는 큰 호황을 누렸던 반도체 부문은 올해도 큰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권을 다투고 있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업계는 글로벌 경쟁의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 각 업계의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 전망을 점검해 본다.
◆반도체, 사상 최대 이익 이을까
지난해 20년만의 호황을 누린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 주력 산업 중에서 가장 전망이 밝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13년에 이어 2년 연속 수출 1위 자리를 지킨 반도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량의 10.2%를 차지하고 있는 효자 품목이다.
반도체 산업은 지난 십수년간 ‘치킨 게임’이 벌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으로 재편됐고, 공급과잉 이슈가 해소되면서 가격안정을 띠고 견조한 수요가 더해졌다. 이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31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2015년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수출액 615억 달러(예상치) 대비 4.4% 증가한 64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규모는 923억97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9%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2013년 570억 달러를 경신한 615억 달러를 기록, 2010년 507억 달러 수출 이후 4년 만에 6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연간 수출 규모 600억 달러 달성은 우리나라 단일 품목으로는 반도체가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기술 초격차’를 내세우고 있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단품을 넘어 복합제품과 솔루션을 공급하는 전략을 펼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2년 연속 사상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고, 삼성전자도 반도체부문이 스마트폰부문을 대신해 캐시카우로 부각될 전망이다.
특히 D램 메모리 부문은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모바일 D램 등의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12조5000억원, SK하이닉스는 6조원에 이르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전·디스플레이, ‘새 무기’ 절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 전자업계는 을미년 새해 내내 중국·일본 업체들의 거센 도전에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진검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서운 성장세로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에 고전할 확률이 높다. 스마트폰과 TV 등 백색가전뿐 아니라 미래 신기술인 사물인터넷과 웨어러블 등 곳곳에서 이런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우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마트폰 산업은 현재 하드웨어 발전이 정체되면서 글로벌 시장의 중심이 프리미엄폰에서 중저가폰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샤오미·화웨이·레노버 등 중국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중저가 제품을 쏟아내면서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던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했고, 중국 휴대폰 시장 1위 자리를 샤오미에 빼앗기기도 했다.
새해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다. 스마트폰시장에서 중저가폰 비중은 연평균 10%씩 증가해 올해는 50%, 2015년에는 52~5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샤오미 등이 특허 분쟁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중저가 시장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투트랙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고마진을 포기하고 공격적인 가격정책으로 중저가 시장에 뛰어든다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시작될 수 있다. 저가폰 공략에서 중국 업체들에 비해 뚜렷한 우위를 드러내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베일에 가려진 갤럭시S6 등 각 업체들의 차기 신제품이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며 대박 열풍을 재현해내지 못한다면 스마트폰 부문의 기상도는 ‘흐림’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 시장에서의 올해 화두는 역시 ‘사물인터넷’(IoT)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물에 인터넷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이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으면서, 이를 활용한 스마트홈 서비스가 확산될 것으로 보여 중국 시장을 발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을 어떻게 따돌릴 것인가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물인터넷의 ‘플랫폼‘ 역할로 주목받는 TV를 두고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삼성전자의 ’타이젠‘, LG전자의 ’웹OS‘간의 경쟁도 치열할 전망이다. 글로벌 TV시장에서는 소니와 TCL이 먼저 뛰어든 퀀텀닷 TV시장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세하면서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대치는 높지만 글로벌 경쟁에서는 최대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대만 업체들의 추격이 날로 거세지고 있어 세계 정상 자리를 확고히 할 만한 또 다른 무기가 절실하다. 지난해 일부 시장에선 일시적으로 대만 업체에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위태로운 행보를 보였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기술에서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다지만 삼성디스플레이의 실적 위축 등 부정적 시그널도 일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LCD는 생산 공정 기술이 대부분 표준화·보편화되면서 후발 주자들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며 “패널 크기에서부터 두께까지 후발 주자들과의 기술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계에 부딪힌 만큼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 심화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수출 호조가 예상되고 있다. 이동통신 기기, TV 등 모든 전자기기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필수 부품이어서 수요가 확대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장기 실적개선 국면에 진입해 매출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달성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방부문의 설비투자 확대로 장비수주 모멘텀이 본격화되고, 대규모 장비발주가 1년 이상 지속되는 빅사이클 진입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올해 디스플레이 산업의 실적은 프리미엄 TV 시장의 성장이 관건이다. 2014년 UHD TV가 프리미엄TV 시장을 주도했다면 2015년에는 퀀텀닷 TV와 OLED TV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디스플레이가 CRT에서 LCD로, LCD에서 OLED로 진화하며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는 상황에서 2015년에도 퀀텀닷과 OLED가 채택된 TV가 출시되며 디스플레이 시장은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올해와 비슷한 3.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너진 조선명가, 자존심 회복할까
새해 조선업계를 바라보는 관전포인트는 ‘자존심 회복’이다. 지난해 조선업계는 유가 폭락으로 해양플랜트 수주가 급감하면서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 이같은 흐름은 올해도 크게 개선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 조선업은 수주 누계실적, 수주 금액 등에서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고 이에 공고하던 국내 조선 빅3 순위도 뒤바뀌었다. 명실공히 세계 1위를 지켰던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사상최대 적자를 내며 위기에 빠진 사이 2위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을 끌어내리고 1위에 올랐다.
중국의 도전에 직면한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대내외 악재까지 겹치며 실적도 추락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적자만 3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상반기 해양플랜트 저가수주에 따른 손실로 그룹 경영진단을 받았고, 하반기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을 통해 재도약을 노렸지만 무산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조선업계는 중국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희망을 걸고 있다. 특히 셰일가스 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LNG선의 건조능력을 갖춘 조선소는 세계에서도 국내 빅3 정도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올해 글로벌 LNG선은 50척 이상 발주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가운데 대형 3사가 40척(80억달러) 이상을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입차에 시달린 車업계, 올해는?
새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유가 변화에 따른 대응 전략 수립과 수입차들의 약진을 어느만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고속 성장세는 주춤했다고 분석되고 있다. 국내외 경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안방에서는 수입차의 거센 공세에 직면했고, 해외에서는 엔저 효과를 등에 업은 일본의 부활로 국내 완성차 업계는 시름을 겪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새해 자동차 산업은 국내외 생산과 수출을 중심으로 소폭 증가세를 보이거나 국내외 자동차 시장 규모에 급격한 변동이 없는 한, 지난해와 비슷한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초 엔저’ 시대를 맞아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엔저를 등에 업은 토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 변화에 민감한 국내 업체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내수 시장에서도 국내 자동차 업체들로서는 수입차 강세를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의 수입차 강세는 5년 연속 최고 실적을 갱신하는 등 가히 폭풍적이었다. 독일차를 중심으로 수입차 대중화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특히 지난해 현대차는 처음으로 글로벌 판매량 800만대를 기록했고 정몽구 회장은 올해에는 820만대를 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내수 시장 잠식에 대해서는 딱히 묘안이 없는 상태다. 현대·기아차의 내수시장 판매량은 꾸준히 감소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점유율 70% 선이 붕괴됐다.
올해 국내 시장에서는 사상 최대 수준인 167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수입차들의 판매는 25만대 수준으로 약 19%p 증가가 예상되고 있어, 수입차업계의 공세와 이를 막아내려는 국산차업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정유·화학, 터널은 언제 끝나나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최악의 지난 한 해를 보낸 정유·화학 기업들은 새해에도 좀처럼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석유시장의 패권을 둘러싼 중동과 미국의 헤게모니 싸움이 해를 넘기면서 수급은 물론 세계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면 정유회사들의 재고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석유화학회사들도 원료 가격보다 제품 가격이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져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
원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정유사들은 지난해 1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비싼 값에 원유를 사서 싼 값에 석유 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재고 손실이 불어난 탓이다. 석유화학 회사들도 국제유가 하락과 환경규제로 올해 수익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은 미국의 셰일가스, 중동 에탄가스, 중국의 석탄화학 산업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점차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업계는 경기 불황에 유가 하락이 겹치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가격이 하락하지만, 수요 부진으로 제품값이 더 빨리 떨어져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읻다. 게다가 올해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 새로운 규제가 시행돼 어려움이 예상된다.

◆‘차이나 쇼크’에 철강업 ‘흐림’
지난해 국내 철강업계는 자동차와 조선 등 수요산업 부진은 물론 각종 무역제재로 국내외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다만 올해 철강업계는 지난해보다 ‘불확실성’은 상당부분 해소됐지만 올해도 불황의 그림자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중국의 움직임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철강경기 침체가 지속돼 온 상황이고, 세계 조강 가동율은 올해 들어 4월을 제외하곤 매월 전년 동월비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또한 중국의 성장 둔화에 따른 소비 감소와 조선, 건설 등 주요 수요 산업 침체로 전체 철강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으로 인한 ‘차이나 쇼크’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세계 철강교역시장의 혼돈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중국의 수요증가율을 올해보다도 낮은 0.8%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철강 수요가 부진해지면서 수출을 확대하고 있는데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중국 철강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2%나 급증한 7400만t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내년엔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의 수요는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이고 신흥국 수요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할 전망이지만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아 중국의 부진을 대체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환율 및 원자재 가격의 하락,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및 통상 마찰, 세계 경기 회복 성장세 둔화 등이 예상되고 있어 철강업은 올 한해도 큰 부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