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후보의 깨끗한 행보, 지켜야 할 가치
5,31 지방선거가 임박하면서 여야 정당에서는 경선을 준비하고, 치르고 있다. 선거를 치르면 이기는 사람도 있고, 선거에서 패배하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이계안 후보가 강금실 후보에게 패했고, 한나라당에서는 맹형규, 홍준표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했다. 하지만 이 세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경선을 하기는 했지만 서울시장에서 이기기 위해 당이 전략공천의 느낌이 강하게 있다는 것이다. 세 후보 모두 이들이 나오기 전부터 열심히 공약을 만들고 발로 뛰면서 서울시장이 되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지만,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패했다. 이런 이유로 불복의 구실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과에 깨끗이 승복을 했다.
◆맹형규, 홍준표 후보, 아름다운 패장
지난 4월 27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눈물을 떨군 두 후보가 있었다. 맹형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이 오세훈 후보에게 쓰디쓴 패배를 겪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낙선한 패장 맹형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 갑자기 등장한 오세훈 돌풍과 당의 처신에 역시 남모를 설움을 겪었다. 둘은 부둥켜안고 눈물까지 흘렸다. 두 사람 모두 6개월간 전력을 다해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했고, 경선 직전 몰아닥친 ‘오세훈 바람’에 밀려 고배를 마시고도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했다. 경선이 끝난 후 오세훈 후보는 두 후보에게 서울시장 선거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두 후보는 26일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도록 거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당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까지 사퇴한 맹 전 의원은 이날 오후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오 후보의 당선이 내년 정권교체의 기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계획을 묻자 “개인적으론 마음을 비웠다”면서 “다만 한나라당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그는 오 후보가 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며칠 머리를 식히고 난 후 생각해 보자”고 했다. 홍 의원은 경선 패배직후 선거캠프 해단식 에서 “민심이 그렇다면 오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는 것이 옳다”면서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을 위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현재 맹 전 의원과 홍 의원은 윤여준 전의원과 함께 오세훈 후보 캠프공동선대위원장 일로 정신이 없다. 맹 위원장은 “승리를 위해 한몸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강북민심을 잡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못다푼 서울시정 구상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선 불복자는 선관위에 후보등록을 못하는 법규정이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서울 CEO 꿈 접은 이계안 의원
지난 5월 2일 올림픽펜싱경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강금실 후보가 당선확정 발표에 두 손을 치켜들며 스포 트라이트를 받는 뒤쪽에서 미소를 머금고 박수를 치는 ‘경선 지킴이’ 가 있었다. 바로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이었다. 당 외곽에서 불어닥친 ‘강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서울 CEO’의 꿈을 접은 이 의원. 지난 1월 22일 "젊은 CEO, 하이브리드 일꾼인 이계안이 여기 서울에 있다"며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로 꼭 100일 만이다. 사실 이계안 의원은 초반부터 이기기 힘든 구도였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투수론’ 을 외치며 혼신을 다했다. 100여일의 짧지 않은 기간, “왜 뜻을 접지 않느냐”는 시선에 설움도 많았다. 그 설움을 딛고 매주 꼬박 ‘서울경영 프로젝트’ 공약도 발표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를 이길 사람은 이계안 뿐"이라는 `대안론'을 설파하며 당원들의 지지를 호소했으나 ‘강금실 대세론’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만일 내가 정치인이 아닌 현대그룹의 CEO였다면 당 지도부가 나를 영입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겠느냐"며 강 전 장관 영입에만 관심을 쏟은 당 지도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그동안 강금실 후보에 일방적으로 기운 당 안팎의 여론에 ‘굴하지’ 않고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정책면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오히려 강금실 후보를 앞서는 ‘준비되고 능력있는 이계안’이라는 이미지를 당 안팎에 알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월부터 매주 그는 ‘서울경영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정책을 발표, 특유의 추진력과 정책통으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강금실 후보와의 TV 토론에서는 인지도의 열세를 극복하며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당내 기획통인 한 중진 의원은 "이계안 의원의 인지도가 낮아 강금실 바람을 꺾지 못했지만 서울시장 경선 자체가 이 의원에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 서 “비겁하게 살기 싫어서 나섰다” 는 이 의원. 결국 고배를 마신 뒤 “최선을 다해 후회없다” 고 말했다. “강 후보가 요 청하면 무엇이든 돕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의원은 공동선대 위원장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아름다운 패장인 세 후보는 성실성과 준비성을 가지고 정책선거라는 사실을 한번도 망각하지 않고 선거를 치뤘다. 하지만 결과에 치우치는 우리 정당정치에서 감성과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언제나 말만으로 결과에 승복한다고 하는 여지껏 우리가 보아왔던 정치인들보다 결과에 승복하고 승리자를 위해 도와주는 세 후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현재 정책보다는 이미지 선거전 양상을 띄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정책 대결을 하지 않는다고 정치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승자들이 패자들의 좋은 정책을 벤치마킹이라도 해 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예전 아수라장 정치판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배반이 난무하고 적과 동지가 순식간에 바뀌어온 여지껏 우리나라의 정치관행상 세 정치인의 깨끗한 행보는 지켜가야 할 가치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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