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이어온 밥퍼, 진정한 주인공은 자원봉사자들
1988년 노숙인 들에게 라면 한 그릇을 대접하며 시작된 '밥퍼운동'이 18년 만인 24일 300만 그릇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가 1988년부터 서울 청량리 굴다리 밑에서 한 끼 밥이 없어 굶주리는 이들에게 밥을 퍼주며 ‘밥퍼’ 나눔 운동을 펼친 이후 한 그릇 한 그릇의 밥이 모아져 무려 300만 그릇을 돌파했다. 최 목사와 다일공동체의 나눔 정신에 동참한 이들이 십시일반 모아 굶주린 이들에게 제공한 밥이다. 88년 시작 이래 청량리역 광장에서 진행되던 '밥퍼운동'은 2002년 청량리역 굴다리 옆에 현재 '밥퍼센터'가 문을 열면서 실내에서 노숙인 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이번 300만 그릇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 다일공동체는 5월 2 일을 '오병이어의 날'로 정했다. 현재 청량리 급식소에는 매일 점심때 1000여명이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매달 밥퍼 나눔운동 회원 100여명이 3650원씩, 다일복지재단의 2만명 회원이 1만원씩 내는 후원금으로 식비를 대고, 급식은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다.
◆밥퍼운동은
최 목사가 밥퍼 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88년이다. 장로회신학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신학생 시절 지금의 다일공동체 자리에 며칠을 굶고 거리에 쓰러져 있던 할아버지에게 설렁탕을 사주면서 운동이 시작되었다. 최 목사는 그때의 일에 대해 “지금도 생생합니다. 춘천을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제 앞에서 할아버지가 푹 쓰러지셨어요. ‘진지는 드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나흘 굶었어’라고 대답하시는데 제 귀를 의심했지요” 최 목사는 급한 대로 라면을 끓여드렸다. “당시 저는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장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보다가 ‘일도야, 언제까지 차가운 길바닥에 나를 눕혀 놓을 테냐’는 주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 길로 유학은 접고 무료급식이 제 첫 사역이 됐습니다.” 그 후 최 목사는 굶주린 이들에게 밥을 사주기 시작했고,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자 등산용 버너와 코펠을 들고 라면을 끊여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동안 노숙자와 무의탁 노인들에게 라면을 끓여 대접하던 최 목사는 아내 김연수(54)씨가 푼푼이 모아 내놓은 통장을 가지고 지난 90년 처음으로 ‘밥’ 을 푸게 됐다. 그리고 2002년 청량리역 굴다리 옆에 현재 '밥퍼센터'가 문을 열면서 실내에서 노숙인 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처음에 라면으로 시작을 했으나 이제는 하루 1000여명의 노숙인들이 점심을 먹고 있고, 부산ㆍ목포에서 800명,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1300여 명 등 전 세계적으로 하루 3000여 명이 '밥퍼운동'을 통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최 목사는 “젊은 시절 빈곤과 굶주림에 지친 노숙자들을 방치 하는 정부를 보고 분노해 나부터 실천하자고 시작한 밥퍼운동이 이제는 사회적인 ‘나눔’ 과 ‘섬김’ 의 문화로 확산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의 힘
자원봉사자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일사불란하게 해나간다. 1000인분의 식사를 마련하려면 20명 이상의 일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매일 나와 음식을 만드는 밥퍼 가족은 단 3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자의 몫이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3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다녀갔다. 최 목사도 “어느새 300만 명이 저희가 제공하는 식사를 하셨다니 저도 놀랍습니다. 시작은 기독교 목사가 했는지 몰라도, 매년 연 인원 1만700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시는 3만 회원들이 일군 ‘오병이어(五餠二魚·예수가 떡 5개와 생선 2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 기적)같은 기적’이다”며 자원봉사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즈음엔 이미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몰려와 100m가량 줄을 서 있었다. 배식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이미 100석의 자리를 가득 채운 무료 급식자들은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당신의 얼굴을 보니 밥맛이 납니다"라고 인사한 뒤 식사를 시작한다. 이들은 대부분 노숙인과 7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서울 은평구에서 이곳을 찾은 김모(72)씨는 "거의 내가 막내 수준"이라며 "80, 90대 이상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는 이곳에서 먹는 점심 한 끼가 하루 식사의 전부인 사람도 많다. 그래서 두 번, 세 번씩 밥을 추가로 먹고, 밥을 비닐봉지에 따로 싸 가기도 한다.
◆‘오병이어의 날’
지난달 28일 300만 그릇을 돌파한 다일공동체는 5월2일 이것을 기념해 조그마한 잔피를 열었다. 자원봉사자, 무의탁노인, 노숙인 등 1500명이 참석을 했다. 노숙인 대표로 연단에 오른 김연표 씨는 “죽을 고비를 많이 겪었지만 최 목사를 만나 지금까지 살아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했고, 무의탁노인 대표로 나온 정영대 씨는 “보잘 것 없는 이런 불미한 사람을 거두어 주어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동안 노숙인 들에게 밥퍼 봉사활동을 해 온 역대 주방장 현순옥, 이경자, 이정옥 씨와 현 주방장인 노화자 씨, 그리고 자원봉사자 대표 박명희 씨를 소개했고 참가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이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최 목사는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그동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밥퍼 운동을 이끌어 온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했고, 역대 주방장들은 “이런 일을 해 보면 알 것이다. 정말 보람 있다. 노숙인들이 맛있게 먹고 간다고 말할 때 정말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1500인 분의 비빔밥을 한꺼번에 비벼 나눠먹는 시간이 있었다. 이날 참석자 대표 10여 명은 지름 4m의 목재 솥에 쌀밥과 갖가지 나물, 밤 호두 잣 등 30여 가지를 넣어 큰 주걱으로 버무려 비빔밥을 만들었다.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한 1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줬다. 최 목사는 “1500그릇의 밥을 한 솥에서 퍼먹는 것은 빈부귀천, 지역과 세대차를 뛰어넘는 화합과 화해의 상징”이라며 “나눔과 섬김 속에서만 화해와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방자치의 힘을 빌리지 않고 18년간 한결같이 순수한 봉사자들의 모임으로 노숙인 들에게 300만 그릇의 점심을 제공한 다일공동체. 최 목사는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금을 받게 되면 밥퍼운동은 또 하나의 국립시설이 돼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게 될 것” 이라며 “그럴 경우 빈민층과 노숙자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사라지게 되고, 빈민층은 또다시 소외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3000만 그릇을 돌파 할 때까지 이 운동을 계속하겠다며 웃는 최일도 목사를 보면서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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