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세력교체를 앞두고 있는 등 야권에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서는 안 전 대표 측근 인사들은 최근 신당 창당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7.30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2선으로 후퇴한 안 전 대표의 당내 입지가 급격히 축소되고, 2.8전당대회를 통해서는 오히려 불편한 관계에 있는 친노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마저 제기되자 안 전 대표에게 원심력이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안철수 고심해 왔나?
지난해 7.30재보궐선거 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안철수 전 대표는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지내왔다. 그러면서 안 전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2대 주주였음에도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갔고, 그 사이 당내 일각에서는 ‘안철수 지우기’ ‘안철수 청산’ 주장까지도 나왔다. 안 전 대표는 각계의 우려에도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할 만큼 민주당과의 합당에 자신했었지만, 결국 호랑이 굴로 들어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 모양새였다.
그런 과정에서 안 전 대표도 ‘후회’하는 발언들을 하기 시작했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 때부터 지금까진 내게 맞지 않는 역할을 했다”며 “지금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이 제 전문 분야가 아닌 정치 개혁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저는 경제와 교육에 전문성이 있다. 당시 경제와 교육개혁을 가로막았던 것이 정치라 생각해 정치쇄신을 얘기했는데 되레 오해를 받았다”고 말했고, 민주당과 통합 과정에서 기초공천 폐지 문제를 앞세웠던 것 또한 미숙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또, 이 무렵 당 안팎의 거듭된 비대위 참여 요청을 거부하면서 독자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안 전 대표가 당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최측근인 송호창 의원의 조강특위 참여에도 부정적 입장을 밝혀 사실상 탈당 명분 쌓기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왔었다.
◆당명 사수 왜?
앞서, ‘안철수 지우기’의 핵심 중 하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에 있었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전 대표가 민주당과 합당하기 이전 독자적으로 이끌었던 세력의 당명이었고, 합당하면서 ‘새정치연합’ 이름을 고수해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된 것이다. 민주당 내 反안철수 정서를 가진 인사들 사이에서는 50년 전통의 ‘민주당’ 당명을 안철수 전 대표 때문에 잃어버리게 됐다는 성토가 들끓기도 했었다.
그런데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2.8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당명 변경 논란이 불거졌다. 이른바 당권주자 빅2로 불리는 문재인 의원과 박지원 의원 모두 당명 변경 필요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문재인 의원이든 박지원 의원이든 누가 되든 간에 안철수 지우기 움직임은 불가피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자, 안 전 대표는 지난 2일 “당명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참석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안 전 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저는 지난 7.30보궐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물러날 때 합당 때의 모든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 5대 5의 지분도 패배의 책임을 지고 주장하지 않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안 전 대표는 그러면서 “지금은 당명보다 당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경쟁할 때”라고 덧붙여 강조했다.
특히, 안 전 대표는 “우리가 당명에 새정치를 포함하고 당명을 바꾼 것은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당명 때문에 우리 당이 집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보수의 역사와 전통에 맞는 당명이어서 집권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안 전 대표는 그러면서 “그동안 열린우리당을 시작으로 당명을 바꿔온 역사를 돌아보자”며 “그 이름을 버린 사람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다시 그 이름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국민들이 우리 당을 신뢰하겠냐”고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거듭 “우리 당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며 “그래야 집권할 수 있다”고 당명변경이 중요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신당으로 갈까?
그런 가운데, 5일 일부 언론을 통해서는 안 전 대표 측근 인사들이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날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철수 전 대표 측근 인사인 윤석규 전 새정치추진위원회 전략기획팀장 및 정기남 전 진심캠프 부실장 등 과거 안 전 대표와 함께했던 인사들이 오는 15일 모여 신당 창당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또, 오는 7일에는 안 전 대표 측근들이 안 의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담은 대담집 ‘안철수는 왜?’가 출간될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 측근 인사들인 강연재 변호사, 정연정 배재대 교수, 오창훈 변호사, 강동호 전 진심캠프 지역협력팀장 등 4명이 대담한 내용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안 의원도 책 출간에 동의했고, 안 의원은 이들에게 “미리 책 출간을 말했으면 더 많은 뒷이야기를 말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문은 “측근들의 대담 형식을 빌려 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계와의 정면 대결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안 전 대표는 지난해 3월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뒤 “2012년 대통령선거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후보단일화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측근들의 질문에 “그때는 좀 다르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안 전 대표 측의 한 인사는 “2012년 대선 막바지였던 12월 15일 문 후보의 서울 광화문 유세에 친노 진영으로 분류된 의원들과 연예인들만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안 의원이 ‘친노의 한계’를 절감했다”며 “안 의원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문 의원과의 단일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고 동아일보에 전했다. 특히, 안 전 대표는 문재인 의원을 겨냥해 “표의 확장성도 없으면서 왜 끝까지 (후보직을) 고집했는지…”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책에는 합당 이후 민주당 출신 인사들과 안 전 대표가 겪은 갈등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관계자는 “우리 당에 대선주자가 당신밖에 없는 줄 아느냐”고 날을 세웠고, 서울시당 회의에서는 한 의원이 안 전 대표 측에 “돈 10원 한 장 안 갖고 입당해 놓고 말이 많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안 전 대표가 민주당과 합당을 발표한 직후 측근들에게 “이제 민주당을 잡아먹어야죠”라고 말한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측근들은 “안 의원이 합당 이후 구체적인 계획 등을 갖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운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한편 동아일보는 안 전 대표가 이 같은 대담집 출간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던 이유로 더 많은 뒷이야기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보도했지만,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안 전 대표는 “당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서 지난 대선에 대한 불필요한 이야기가 나오는 점은 유감”이라며 “지난 대선과 이후의 정치적 선택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며 대담집과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 전 대표 측도 일각의 신당 창당 논의에 대해 “안 전 대표와는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 전 대표 측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업주로서 탈당이나 신당을 생각해본 적 없다”며 신당 창당 논의가 안 전 대표 의중에 따른 것이 아님을 적극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