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을 세 바퀴 돌면 극락으로 간다?!
♣ 무심(無心)을 배우는 길
고창의 봄은 꽃보다 밭이다. 초록색 물결치는 청보리밭과 차밭이 있다. 그래서 파스텔 물감색에 마음이 들뜨기보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푸르름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보리밭을 걷고 또 걸어 한 가운데 서 깊은 숨을 들이 마시면 쌓였던 피로와 잔걱정이 바람과 함께 흩어진다. 보리풀을 뜯어 피리를 분다. 숨소리와 피리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살아있는 동화를 만들어낸다.
청보리밭을 지나 선운사 옆 언덕에 펼쳐진 차밭, 선운사 우룡 스님이 8년 전부터 10만평의 땅을 임대해 짓고 있는 곳이다. 차 사이사이 밀을 심어 거름으로 삼는데, 새순이 돋는 4월 하순엔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어 밀과 차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무심(無心)을 배운다.
♣ 담쟁이 넝쿨 가득한 고창읍성
그곳을 지나 고창읍성으로 가는 길, 그곳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삼림욕하는 기분으로 산책할 수 있다. 연인들에겐 성벽 따라 빙 도는 코스보다 성벽 내에 하트모양으로 나있는 산책로가 마음을 끈다. 언덕 능선을 따라 포근한 곡선으로 휘돌아 가는 튼튼한 성벽엔 점차 붉은 빛으로 변해 가는 담쟁이 넝쿨이 걸려있고, 발아래로는 고창 읍내의 풍경이 정겹다.
수백 년 전 조선의 여인들도 이렇게 돌을 이고 성벽을 거닐었을 것이다. 고창 읍내에 자리한 고창읍성(사적 제145호)은 조선시대인 1453년(단종 원년)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백제 때 이곳의 지명이 모양현이었던 데서 유래했다.
♣ 봄의 끝자락을 전북 고창에서
고창엔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읍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죽은 후에도 길이 환히 트여 극락으로 간다는 속설이 담긴 성 밟기 풍속이 전해온다. 성을 다 밟은 후에는 머리에 이었던 돌을 성 입구나 안쪽에 쌓았다. 결국 성 밟기는 해빙기에 틈이 생길 수도 있는 성벽을 보수할 때 필요한 돌을 확보하려는 데서 유래한 슬기로운 풍습이었던 것이다.
성벽을 돈 뒤 성안 약수로 목젖을 축이고 성문을 나서면 은은한 판소리 가락이 귀를 흐뭇하게 한다. 성문 앞에 조선 후기에 창극(唱劇) 발전에 공이 큰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1812~1884)가 말년까지 살던 고택이 있어서다. 이곳에서 동리는 이전까지 체계 없이 불러오던 광대소리를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등 여섯 마당의 판소리로 절차를 세우고 가사를 고쳤다고 한다.
판소리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판소리박물관까지 봄의 끝자락을 전북 고창에서 만끽해 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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