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중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이 좀처럼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외환은행은 하나은행과의 합병기일을 오는 2월 1일에서 3월 1일로 한달여간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외환은행의 공시에 따르면 합병관련 주주총회 역시 지난 1월 2일에서 오는 1월 29일로 연기됐고 지난 1월 2일로 예정됐던 채권자 이의제출기간 시작일도 오는 1월 30일로 연기됐다. 이의제출 종료일은 1월 12일에서 2월 9일로 연기됐고 합병 등기 예정일도 2월 4일에서 3월 2일로 연기됐다.
지난달 1일 하나카드와 외환카드가 통합법인으로 출범한 데 이어 양행의 인도네시아·중국 현지 통합 법인도 순조롭게 출범했지만, 은행의 통합 작업만은 속도가 매우 더딘 형국이다. 주주총회나 합병기일 등 전체적인 일정이 연기된 가운데 노사 양측은 핵심 쟁점을 두고 팽팽히 대치하고 있어 향후 협상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합의문 깬 ‘조기통합’, 왜 나왔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이슈는 지난해 7월 17일 하나금융지주가 “소속사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각각 이사회를 개최해 합병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고 공시하면서 금융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나금융지주는 조기 통합의 명분에 대해 “금융환경 악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여기에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당시 경영 위기론을 명분으로 꼽았다. 김 회장은 양 은행의 수익성이 다른 대형은행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어 조기 합병을 통한 비용절감과 시너지 창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조기 통합 움직임에 대해 즉각 “‘2·17 노사정 합의서’를 위반하고 있다”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2·17 노사정 합의서’란 지난 2012년 2월 17일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으로 인수됐을 때, 하나금융·외환은행·외환은행 노조·금융위원회가 5년 이후에 합병을 논의하고 외환은행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으로 서명한 합의서를 말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자진사퇴한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조기통합 발표 당시 “이번 통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사항은 노동조합과 충분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조기통합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와의 협상은 파국의 연속이다.
노조 측은 사측이 주장하고 있는 경영위기론에 대해 너무 부풀려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하나금융이 발표한 지난해 상반기 경영실적에서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모두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해 경영위기에 따른 조기 통합 논의가 무리한 연결이라는 것이다.
◆노사 팽팽한 대치…쟁점은?
지난해 11월말부터 매일같이 협상을 진행해온 양측은 대화의 원칙과 의제 등을 담은 대화기구 발족 선언문(1차 합의문)의 쟁점사항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서명 직전까지 갔으나, 막판에 합병절차 중단 문제로 인해 타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이 전체적으로 연기된 것은 이처럼 양측의 협상이 진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핵심 쟁점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무기계약직의 6급 정규직 전환 문제다. 2013년 10월 말 노사는 2200여명의 무기계약직(로즈텔러)을 6급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에 대해 합의한 바 있는데, 사측은 대화기구 발족 선언문에 왜 정규직 전환 문제를 거론하냐는 입장이고 노조는 이미 합의한 사항에 대해 말을 바꾸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5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이미 2013년 말에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합의했는데 사측이 대화기구 발족 선언문의 서명을 앞두고 말을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작에 시행됐어야 할 정규직 전환이 차일피일 미뤄져 오는 가운데 합의문 서명을 앞두고 아예 사측이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해 1월부터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행하기로 했으나 현재까지도 추진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해 11월 양측이 원칙적으로 시행에 관한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화기구 발족 선언문의 합의를 앞두고 합의가 뒤집혀진 모양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보도된 바와 같이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당초 대화기구 발족 합의문에 서명이 이뤄지면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으나 이처럼 막판에 양측이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대치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전체적인 일정이 한달여간 연기되는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합병 절차 추진 여부도 걸림돌
여기에 최근 들어 노사는 새로운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현재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고 설명했다. 그는 “대화기간에 합병절차 추진을 중단하고 합의하에 진행하기로 해놓고 사측이 약속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과정에서 노조는 대화기간 중 합병절차를 잠정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사측이 난색을 표해 양측은 상호 합의를 통해 추진하기로 구두합의를 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사측이 이를 번복했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하나금융의 독자적 통합절차 추진의 예로 IT통합을 들었다. 실제로 하나금융은 최근 외환은행 IT인력을 서울스퀘어 사무실로 이동시키는 등 두 은행의 IT인력 통합을 먼저 진행하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올해 시행될 계좌이동제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올해 10월까지 IT통합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절차를 진행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조 관계자는 “독자적으로 행동하다 대화를 하자고 하니 어떻게 대화가 이뤄지겠느냐”며 합의사항 준수를 촉구했다.
노조의 주장과 달리 하나금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달 29일 “노조측 요구를 담은 선언문에 합의한 뒤 노조가 대화를 질질 끌거나 잠적해 버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도 하나금융 관계자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김정태 회장, 연임 위한 포석 두나
이처럼 통합 논의가 지연되자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이 연임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노조 관계자 역시 제반 일정이 연기된 것은 김 회장의 연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연임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렇게 무리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당초 예정된 주주총회가 지난 2일에서 오는 29일로 연기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의 연임이 주주총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합병이 연기되면서 주주총회도 함께 연기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김정태 회장은 연임을 위해 임기 규정을 고치고 사외이사를 물갈이하는 등 준비를 착착 진행해 왔다.
하나금융 회장 임기는 기본적으로 3년으로 연임할 경우 1년씩 임기가 연장된다. 그런데 하나금융 이사회는 지난 4월 기존 회장이 다시 선임될 경우 3년을 이어서 일하는 것으로 연임방식을 바꿨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할 경우 2018년까지 임기를 보장받는다.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도 올해 들어 대폭 바뀌었다. 하나금융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끝난 사외이사 5명 가운데 4명을 교체했다. 당시 자리에서 물러난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시절 선임된 인사들이었는데, 김 회장은 사외이사 물갈이를 통해 이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현재 하나금융의 부진한 실적이 김 회장의 연임 가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당기순이익 9430억 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2011년 말 1조3031억 원에서 1조 원 아래로 내려갔다.
따라서 현재 경영 실패론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 김 회장이 연임하기 위해서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다고 풀이된다.

◆쟁의행위 돌입 초읽기…전망 불투명
여기에 노사는 임금 및 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을 놓고도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라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 2일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달 29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개표한 결과 휴직자 등을 제외한 투표대상 조합원 5423명 가운데 4821명(88.9%)이 투표에 참여, 4402명(91.3%)이 쟁의행위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합의이행 등이 포함된 지난해 임단협이 결국 해를 넘기게 된 상황에서 최대한 신속한 타결을 위해 관련절차를 밟게 됐다"면서 "쟁의행위 돌입에 대한 집행부의 최종 결정을 남겨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의 협상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중재해야할 금융당국은 정작 한 발 물러선 입장을 취하고 있어 대치 정국을 풀어나갈 해법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승인은 노사간의 타협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을 뿐 논의의 진전을 위한 중재의 제스처를 취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노조 관계자는 “금융위가 아예 노력을 안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고, 타협을 촉구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액션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일정이 연기되면서 주주총회는 오는 29일, 합병기일은 3월 1일로 예정됐다. 주주총회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았고, 통상적으로 통합 승인에 걸리는 기간이 60일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주주총회가 열리는 시점까지는 타협이 끝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정태 회장이 야심차게 꺼내든 조기통합 카드가 순조롭게 먹힐지, 현재로써는 현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대치 정국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