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가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은행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예비판정을 내려 은행과 무보간의 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6일 무보는 모뉴엘의 사기대출 사건과 관련해 6개 시중은행이 청구한 총 3억400만 달러(3265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예비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3265억원은 모뉴엘이 3조원대의 허위 가공 매출 등을 통해 10개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6768억원에 포함된 담보대출 3860억원 중 무보가 보증한 전체 금액이다.
지난달 9일 수원지방법원 파산2부(부장판사 오석준)가 모뉴엘 관계자와 파산관재인 등을 불러 모뉴엘의 파산을 선고하자 대출금을 떼이게 된 은행들은 무보가 보증을 선 부분인 3265억원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한 바 있다. 이에 무보는 보상심사팀을 통해 보상 여부를 심사해 왔다.
당시 무보 측은 “보상심사를 너무 보수적으로 할 경우 중소기업 지원이 위축될 우려가 있어 보상심사에 적극 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날 무보가 보험금 전액을 지급할 수 없다는 예비판정을 내림에 따라 이같은 발언이 무색하게 됐다.
무보 보상심사팀은 모뉴엘 대출 건에서 핵심적인 대출 서류들이 누락됐거나 비정상적으로 처리돼 있어 약정상 보험금 지급 의무가 있는 정상적인 대출거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같이 예비판정했다. 무보는 기본적인 거래 증빙 서류도 없는 상황에서 보험금을 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수천억원대의 대출금을 떼이게 될 처지에 놓인 은행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수출거래는 현실적으로 현장에서 확인이 힘든 만큼 무보가 내 준 보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무보에서 받은 보험증권에는 선적일로부터 일정 기간 뒤 할인을 해주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며 “물품수령까지 은행이 확인해야 하는 거래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은행별로 모뉴엘에 빌려준 대출 금액은 기업은행 1055억원, 외환은행 863억원, 산업은행 754억원, 농협은행 568억원, 국민은행 466억원 등 총 3265억이다.
무보는 예비판정 결과를 이르면 오늘, 늦어도 7일까지 보험금을 청구한 기업·산업·외환·국민·농협·수협 등 6개 은행에 통보하고, 예비판정에 대한 6개 은행의 소명 절차를 거쳐 다음주 최종판정을 할 계획이다.
최종판정 결과에 대해 6개 은행이 불복해 이의신청을 제기할 경우,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무보의 이의신청협의회를 통해 조정을 받을 수 있으며, 계속 의견이 갈릴 경우 소송까지 가게 된다.
한편 모뉴엘의 파산에 따라 은행권이 빌려준 총 6768억원 중 담보대출 3860억원을 제외한 2900여억원의 신용대출 금액은 전액 손실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파산 선고 당시 시중은행 관계자는 “모뉴엘에서 회수할 수 있는 자산이 거의 없다”며 “사실상 신용대출은 전액 손실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로봇청소기 등을 개발·제조하는 중견 가전기업인 모뉴엘은 수출물량과 대금을 부풀려 서류를 조작해 이를 통해 수천억원의 대출을 받았다가, 지난해 10월 은행에 갚아야 할 수출환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끝에 지난달 파산 선고를 받았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