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삼성그룹의 화두는 단연 지배구조 개편 및 이재용 체제 전환이다. 이에 최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시나리오가 새롭게 대두돼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6일 교보증권 백광제 연구원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다음 순서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유력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후에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제기돼 왔다.
◆ 왜 삼성물산인가?
새롭게 제기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시나리오는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순환출자방식이기에 가능한 아이디어다. 현재 삼성의 창업 3세로 분류되는 이재용 부회장 등이 그룹 내에서 지배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올려 순환 출자 고리에 얽혀 있는 계열사 간 합병이나 분할을 통해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는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오너 3세의 삼성전자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 3.38%를 넘겨받으려면 최소 3조7천억 원 이상을 증여세로 내야 한다. 따라서 지배구조 개편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삼성전자 지분 확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제기된 시나리오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 지분의 4.1%와 삼성SDS 지분의 17.1%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할 경우, 제일모직은 단순 계산으로도 삼성전자 지분의 4.1%를 거머쥘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삼성SDS가 큰 이변 없이 완만하게 주가 상승세를 이어나가는 상황(시총 30조원 가정·5일 기준 24조원대)에서 삼성전자와 합병하게 된다면,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SDS 지분 17.1%를 삼성전자 지분(2.5~2.6%대)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즉,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하고 삼성SDS가 삼성전자와 합병되면 도합 6~7%대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작업이 이달이나 다음 달 내에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 시나리오대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진행될 경우 ‘이재용→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에서 ‘이재용→제일모직→삼성전자’로 연결고리가 단순화되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은 더욱 안정적으로 삼성전자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걸림돌은 삼성물산의 분할 여부다. 삼성물산은 그간 건설과 상사 부문으로 운영돼 왔는데 건설 부문은 이재용 부회장이, 상사부문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책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물산의 어느 부문과 제일모직을 합병할 것인지 등의 과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
따라서 삼성의 승계구도와 3세들의 지배력은 삼성물산을 쪼개서 어느 부문과 제일모직을 합병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에 삼성물산을 분할하지 않고 바로 합병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는 데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합병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제일모직은 합병과 보유 자사주를 활용해 삼성전자 지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고, 업계에서는 삼성생명 등의 중간지수회사 전환 등의 방안은 관련 법 개정에 따라 방향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법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삼성그룹의 대응이 주목을 받게 됐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개편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계열사 합병 등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다”고 답했다.
◆ 기존 시나리오와 다른 점은?
한편 이같은 분석은 기존에 유력하게 제기돼 오던 제일모직-삼성전자 합병설을 뒤엎는 것이다. 기존 시나리오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주회사격인 삼성전자홀딩스(가칭)와 자회사로 인적분할한 후 삼성전자홀딩스와 제일모직이 합병해 삼성 지주사를 출범시키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기존에 보유중이던 삼성전자 지분과 제일모직과 합병을 통해 취득하는 지분을 합칠 경우 그룹 주력 사업체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투자회사와 사업회사의 분할 비율을 2대 8,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투자회사의 합병비율을 1대 3 정도로 추정해 왔다. 이 부회장의 경우 현재 삼성전자 지분이 0.57%에 불과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전자홀딩스가 합병하게 되면 7∼8%대의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업계의 관측에도 불구하고 그간 제일모직과 삼성전자홀딩스와의 합병이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던 것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2%)의 처리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제일모직은 현재 삼성생명의 2대 주주인데 만약 이상태로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에 나설 경우 제일모직은 법적으로 금융지주(총 자산의 50% 이상이 자회사 지분)가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금융지주회사 법에 의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강제 매각해야 한다.
이같은 지분정리가 모두 해소돼야 제일모직의 지주사 전환 작업이 속도를 낼 수 있는데 여기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삼성 측에서는 이 시나리오를 계속 부정해 왔다.

◆삼성, 지배구조 개편 속도 내나
재계는 이건희 회장이 건강을 회복중인 만큼 이 부회장이 향후 절차를 서두르기 보다는 사업구조 재편 등 다른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제일모직 상장으로 삼성그룹 승계를 위한 굵직한 밑그림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한동안은 계열사 합병과 매각, 신사업 발굴 등 이재용 시대의 삼성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올해 초부터 삼성의 승계작업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시각도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화재 지분 취득과 삼성SDS상장, 삼상테크원, 삼성종합화학 매각, 삼성전자 제일기획 자사주 매입 등이 한 달 사이에 벌어졌다는 점 때문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은 무산됐지만 올해 합병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한 증권 관계자는 “제일모직 상장이 완료된 만큼 올해부터는 삼성그룹과 계열사 내 지분 이동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시나리오는 워낙 많지만 시장에서는 올해안에는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올해 초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라 나온 만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설 등장이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