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굳건하게 지켜졌던 ‘한국=현대차 안방’이라는 공식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현대‧기아차의 내수 점유율이 지난해 70% 밑으로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실추된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수입차 공세에 대응할 만한 방법을 강구하고, 현대차 ‘뻥 연비’로 불거진 소비자 불신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현대‧기아차는 신차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소비자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내수 점유율 탈환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제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차 시장이 긍정적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현대‧기아차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수소연료전지차 등이 국내‧외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대항마’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 수입차 러시에 소비자 불신까지…안방 탈환 가능할까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내수 점유율 70%대를 유지하면서도 세계시장에서 처음으로 800만대 판매실적을 달성하는 등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여줬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합병이후 줄곧 70%를 웃도는 점유율을 이어왔다. 가장 낮은 점유율을 보였던 2007년에도 70.5%로 70%대 점유율을 유지했고, 2009년에는 76.8까지 뛰어올랐다. 이후 2012년 74.6%, 2013년 71.4%로 하향곡선을 그리긴 했지만, 그래도 70%대를 지키며 ‘철옹성’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부터 60%대로 내려온 현대‧기아차의 국내 점유율은 결국 69.3%에서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업체별로는 현대차가 41.3%, 기아차 28%였다.
현대‧기아차의 아성을 무너뜨린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수입차들의 거센 공세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25.5% 증가한 19만 6359대를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승용차 판매 기준)도 13.9%로 전년보다 1.8%포인트 늘어난 수준으로 집계됐다. 2010년 6.9%에 비해 무려 두배나 늘었다. 르노삼성차가 스페인에서 전량 수입하는 QM3를 수입차로 볼 경우 점유율은 15.2%까지 상승한 것으로 봐야한다.
현대차가 일명 ‘뻥 연비’ 논란으로 소비자 불신을 키운 점이 내수 점유율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6월 정부 합동 발표에서 현대차 ‘싼타페(DM) 2.0 디젤 2WD’가 국토부의 연비 재조사에서 표시 연비보다 낮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현대차가 국토부에 신고한 차종의 연비는 14.4㎞/ℓ 였지만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이 이후 측정한 연비는 이보다 10% 가까이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용오차 범위 5%를 훨씬 초과한 것이다. 문제가 된 ‘싼타페(DM) 2.0 디젤 2WD’는 앞서 빗물이 트렁크 등 차량 내부로 흘러드는 현상 때문에 말썽을 일으켰던 차종이기도 해 소비자들의 불만과 불신이 가중됐다.
이 밖에 국내 다른 완성차업체들의 선전도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에 타격을 미쳤다. 한국GM은 지난해 출범 12년 만에 연간 최대 판매 실적(15만4381대)을 기록했다. 르노삼성도 QM3로 인기 돌풍을 일으키며 전년대비 33.3%나 급증한 8만3대를 팔았다.
이같은 국내 자동차 시장 판도 변화에 올해도 현대‧기아차의 안방사수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입차의 경우 올해 25만대를 판매하고 점유율은 15%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내수 시장 목표를 각각 69만대, 48만씩으로 잡아 사실상 공격보다는 방어에 강조점을 두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됐다. 지난해 내수 판매가 각각 68만5191대, 46만5200대인 점을 감안했을 때 다소 보수적인 목표치이기 때문이다.

◆ 중국공장 증설‧친환경차 개발…성장세 ‘액셀’ 밟나
그렇지만, 현대‧기아차는 올해 판매 목표를 보수적으로 설정한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신차 출시로 점유율 하락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맞춰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출시한 데 이어 쏘나타 1.6 터보,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잇달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투싼·아반떼·K5 등의 주요 모델의 신차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또 내수 판매에 영향을 주는 ‘안티 현대차’ 움직임에도 적극 대응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국내영업본부 안에 소비자 전담 조직인 국내 커뮤니케이션실을 신설하고 온라인상의 잘못된 루머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현대·기아차가 최근 중국 허베이와 충칭에 공장을 내년 중에 착공하기로 각 지방정부와 합의하는데 성공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기아차는 현대차 충칭공장이 완공되는 2017년에 현대차 171만대, 기아차 89만대 등 중국에서 총 260만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또 허베이공장 증설이 완료되는 2018년에는 270만대까지 생산을 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친환경차의 출시도 점유율 확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부터 강화되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로 친환경차의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잇따른 국제 유가 하락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친환경차 구매가 망설여질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 지난 6일 현대차그룹은 오는 2018년까지 4년간 투입되는 사업비 총 81조원 중 11조3000억원을 친환경차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이와 관련해 박홍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 소장(현대차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2015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지금까지는 연비 개선이 중요한 문제였다면, 내년부터는 동력성능과 상품성, 가격경쟁력을 내연기관차 수준까지 끌어올린 친환경차가 대두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 역시 “친환경 자동차의 개발은 유가와 관련된 것 이외에도 환경을 고려했을 때 이미 세계적인 산업의 새로운 목표”라면서 “일시적인 유가하락에 장단을 맞추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글로벌 판매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맞다”고 내다봤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