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를 강력하게 추진해달라고 강조했지만, 시작부터 암초를 만난 모양새다. 공공기관장들의 비리가 연달아 터지고, 임직원들 역시 비리 행위가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문성을 강조하다 공직의 기본인 청렴과 도덕, 책임감을 허술하게 대한 것이 아니냐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지난해 공공기관들이 부채를 감축하고 복리후생비를 절감했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은 아직 국민들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개혁이 후퇴하는 요요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전 부처가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공부문이 선도적 개혁을 통해 다른 부문의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현재는 좀 어설프다. 그것만 갖고 현재 뽑을 수 있는 것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뒤 “공공부문에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해서 성공사례를 만들고 시행착오를 보완하며 확산되도록, 공공부문에서 금년에 확실한 성과가 나도록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와 임금피크제 확대를 추진한다. 특히 2급 이상 간부직에 주로 적용되던 성과연봉제 대상을 ‘7년 이상 근속 근로자’로 늘릴 계획이다. 7년 이상 근로자의 성과연봉제 강화를 비롯해 임금피크제 확대, 근속승진제 폐지 등 공공부문에서 먼저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한 뒤 민간부문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공공기관장 비리 드러나
이처럼 박 대통령까지 나서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한 불씨 지피기에 나섰지만, 정작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공공기관들은 각종 비리에 휩싸여 있어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힌 모양새다.
장석효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11일 “지난 1년 동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장 사장은 사의를 표명한 배경과 관련해 “현 상황에서 사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가스공사의 조직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특히 비정상의 정상화 공공기관 개혁에 불철주야 고심하고 있는 임면권자께 크나큰 누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장 사장은 지난 2011년~2013년 모 예인선 업체 대표로 재직 당시 이사 6명의 보수 한도인 6억원을 초과해 연봉은 지급하거나, 가족 해외여행 경비를 법인 카드로 쓰는 등 회사에 30억 3000만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지난달 26일 불구속 기소됐다.
장 사장은 비리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지만 지난 7일 이사회에서 해임안이 부결된 바 있다. 그러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장 사장에 대해 해임을 건의했고, 16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해임 여부가 결정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표를 제출한다 해도 장 사장에 대한 해임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규정상 공공기관장의 해임·정직 등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은 사표를 내도 수리할 수 없게 돼 있다.
또 “국민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인데 (산업부가 아니라)내부출신이라고 그렇게(해임 건의 등)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며 “산업부가 검찰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없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9일 논평을 내고 “장석효 사장은 1983년 12월 가스공사에 입사하여 2011년 1월 자원사업본부장을 끝으로 사직한 내부출신 인사로, 퇴임 후 통영예선 고문 및 대표이사로 약 2년간 근무하다가 다시 가스공사 사장으로 금의환향했다”며 “문제는 해당 예선 회사가 가스공사와 밀접한 업무관련성이 있는 유관기관이라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소된 장 사장의 혐의로 △통영예선 대표이사 재직 당시 정관 및 주주총회에서 정한 이사의 보수한도 6억원을 29억 9천만원 초과 지출하여 이사들끼리 나눠가진 것(배임 혐의) △사의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횡령 혐의) 및 2011.8.~2013.6. 기간 동안 가스공사 간부직원들을 상대로 43회에 걸쳐 3,500여만원 상당의 골프접대 등 향응을 제공한 혐의(뇌물 공여) △2013년 7월부터 가스공사 사장으로 돌아온 후에도 통영예선으로부터 법인카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총 2억9천여만원을 사용한 혐의(뇌물수수) 등이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동서발전 역시 비리 혐의에 휩싸였다. 8일 검찰은 장주옥 한국동서발전 사장이 인사청탁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검사·수사관 30여명을 보내 동서발전 사장실과 인사·감사실 내 각종 문건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확보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인사 비리를 뒷받침할 핵심 문서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매체에 따르면, 검찰은 승진 인사 때마다 광범위한 금품공여 관행이 있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 사이에서 인사는 크게 ‘예선’과 ‘본선’으로 나뉘어 있고, 먼저 일선 사업소장이 승진 후보군을 추천하면 중간 간부들이 근무평정을 해서 2명의 후보로 압축한 뒤 사장이 최종 승진자를 선택하는 식이다. 이처럼 ‘3단계 추천’을 거치면서 청탁이 있었다는 게 검찰 분석이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장 사장은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결백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만연한 공직해이
기강 해이 문제는 비단 사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14일 계약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고 금품을 받거나 지인을 취업시키기 위해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감찰에 적발됐다.
국무총리 소속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은 지난 9월부터 4개월간 2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특혜성 계약·취업 비리 실태를 점검해 11개 기관, 임직원 30명을 적발했다. 부패척결추진단은 이번 점검에서 비리 사실이 적발된 30명 전원에 대해 해당 기관에 징계 등 문책을 요구했다. 또 기관장 1명, 임원 2명 등 비리 정도가 심각한 12명을 검찰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공공기관 임직원 9명은 계약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고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적발된 금품수수 액수는 모두 6억8000만원(9명)에 이른다.
A기관의 한 팀장은 정보시스템 유지보수 사업자 선정 대가로 업체 3곳에서 모두 1억29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B공사 팀장은 소방설비 개선공사 대가로 관련업체 8곳으로부터 1억2500만원을, C재단 본부장은 특정 업체에 용역을 독점하게 해준 대가로 1654만원을 챙겼다. D교육청 과장은 학교 신축공사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경쟁사의 견적가격을 유출하고 2540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았다.
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내부 기밀을 유출한 기관도 있었다.
E공사 이사는 93억원 규모의 IT센터 이전공사 총괄책임자의 지위를 이용해 비공개 내부 입찰정보를 관련 전산업체에게 사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A기관 원장은 대학원생 제자 3명의 경력이 기준(실무경력 5년)에 미치지 못함에도 경력을 속여 취업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F공사 과장은 전무이사의 지시를 받고 사장 후보자의 조카를 공고도 없이 서류 전형만으로 특혜 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지난해 7월 구성한 부패척결추진단은 지난 5개월간 ▲국고보조금·지원금 관련 비리 ▲안전 관련 비리 ▲공공기관의 특혜성 계약·취업 비리 등 '3대 우선 척결 비리'에 대한 실태를 점검해 비리 행위자 898명을 적발했다. 또 정부와 검찰, 경찰 등 관계기관의 5대 핵심분야 집중 점검을 통해 5개월간 모두 6046명이 적발되고 이 중 412명이 구속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에서도 수년간 뇌물 비리가 지속한 사실이 드러났다. 창원지방검찰청은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인 구모)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김모씨 등 구씨에게 뇌물을 건넨 기자재 납품업체 대표 2명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검찰은 구씨가 정부출연기관에서 일하는 만큼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을 고려해 뇌물수수죄를, 구씨에게 돈을 건넨 업체 대표들에게는 뇌물공여죄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구씨는 2007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 사이 자신이 전기연구원 전동력 연구센터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들 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동기 기자재와 전동기 평가시스템 납품을 수의계약을 해주거나 기자재 검수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명목으로 9차례에 걸쳐 200만∼1천500만원씩 모두 5천만원을 받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공공기관 전반에 비리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전문성만 강조한 결과?
이 같은 상황에 “전문성만 강조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경영이나 업무 연관성 등 전문적 기술에 집중하다 보니 공직의 ‘기본’인 청렴성이나 도덕성, 책임감 등을 간과하지 않았느냐를 의미다.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를 추진하면서도 정작 핵심과제인 이른바 ‘O피아’ 근절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비록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 것이 아니지만 공기업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높은 회사들이 낙하산 기관처럼 되면서 공피아(공공기관+마피아) 내지 관피아 기득권자의 전리품이 되는 관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방안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잇따른 비리 소식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윤 장관은 8일 “비정상의 정상화, 공공기관 비리척결은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며 “공공기관장은 몸소 모범을 보여줘야 하고 처신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특히 “공공기관과 자회사 간 불건전한 관행 등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비정상적인 구조, 관행, 비리 등을 철저히 점검해주길 바란다”면서 “더불어 강도 높은 개혁추진도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