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남북관계에 변화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비롯해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의 문제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고 있긴 하지만, 남북 정상 모두가 큰 틀에서 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 시그널이다. 따라서 소소한 문제들을 넘어서 대의본질이 대화에 있는 만큼, 올 한해 남북관계 개선은 기대해볼 만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5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소련의 대독일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동시에 초청한 상태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만 초청한 것은 아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및 아베신조 일본 총리 등 한반도 주변국 정상을 포함해 제2차 세계대전 관련국 모두를 초청했다.
남북정상을 위해 마련된 자리가 아닌 만큼 이곳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공식으로 개최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남북 정상이 조우라도 하는 상황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오다가다 자주 만나고 익숙해지다 보면 가까워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남북대화 의지가 상호 더 적극적이라면 러시아 주최 기념행사 이후 따로 자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라는 제3국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충분히 개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초부터 거듭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와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을 트집 잡고 있는 상황임에도 “어떤 형식의 대화를 하든 국민의 마음을 모아 협상해나가고 북한이 호응해올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노력해달라”고 관계부처에 당부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통일부-외교부-국방부-국가보훈처 등 4개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이 같이 주문을 하며 “여러 가지로 엉켜있는 남북관계를 풀고 통일을 준비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허심탄회한 남북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남북교류와 협력의 질을 높이고 작은 협력부터 이뤄가려면 조속히 남북 간에 통일 준비를 위한 실질적인 대화가 시작돼야 한다”는 뜻도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메시지의 진정성을 위해서라도 이번 러시아 초청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이 행사 참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러시아 관영 이타르타스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의 행사 참석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사 참석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고 검토 중”이라는 소극적 반응만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을 뿐 참석을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망하고 있는 것이라면, 청와대가 보다 전향적 자세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남북관계 주도권은 분명하게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만날 것을 제안하고 우리가 먼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만일, 김정은 위원장이 행사 참석 여부에 고민하고 있다 하더라도 청와대가 먼저 참석을 확정짓고 김정은 위원장을 더 적극적으로 국제 사회로 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와 평화는 수동적인 자세로 얻어낼 수 없다.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남북관계를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통령이 돼야 한다. 국내 정치상황이 사사건건 시끄럽고 복잡해 있더라도, 통일을 향한 대통령의 굳건한 의지가 흐트러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요즘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해서 말들이 많다. 임기 말 지지율이 더 하락한 상태에서 국정전환용으로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 하지 말고, 지금 진정성을 가지고 북한과 대화에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길 기대해본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