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월 회장 임기가 일제히 만료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무역협회(무협),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등 소위 경제 5단체의 후임 인선 절차가 한창이다. 하지만 각 단체별로 후임 회장 선출에 대한 열기는 제각각이어서 눈길이 쏠리고 있다.
특히 연임이나 추대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다른 단체들과는 달리 중기중앙회의 회장직에는 출마의사를 밝힌 예비후보만 7명에 달하는 등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 열기가 뜨거운 만큼 최근에는 혼탁·과열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어 벌써 선관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여러번 받는 등 과열되는 경쟁 열기에 우려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중기중앙회 회장직은 ‘상상 이상’
유독 중기중앙회의 선거 열기가 뜨거운 것은 중기중앙회 회장 자리가 주는 실익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중기중앙회 회장은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는 명예직이지만 권한은 실로 막대하다.
중기중앙회 회장의 임기는 4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현 김기문 회장은 현재 두 번째 임기의 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김기문 회장은 연임할 당시인 4년 전 선거에서는 단독 추대된 바 있다. 회장에 취임하면 기본적으로 부총리급 예우를 받고 중소기업 홈쇼핑인 홈앤쇼핑 이사회의 의장을 겸직한다.
매년 5월 개최되는 대한민국중소기업인 대회를 주최하고 대통령·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각종 경제 회의와 중소기업 관련 행사에 중소기업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다. 출국 시에도 장관급 의전 예우를 받는다. 대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매월 1000만원의 대외활동수당도 지급되고다. 또 정회원인 578개 조합에 대한 감사권을 갖고 있는 등 실질적인 권한도 강하다.
여기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는 창조경제의 핵심인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자리기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 각계 고위층을 만날 기회가 잦은 편이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은 중기중앙회를 자주 방문했다. 1993년 신년인사회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석했고 2003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기중앙회에서 정책 토론회를 진행했다. 2012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기중앙회를 찾았고 같은 해 박근혜 대통령도 당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 신분으로 중기중앙회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특히 현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재임기간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일정을 함께하는 등 높은 위상을 실감케 했고 현재 국세행정위원회 위원장, 중소기업창조경제확산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또한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등용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실제 역대 중기중앙회 회장 11명 중 7명이 정치권에 진출했고 그 중 4명은 회장 퇴임 후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김기문 회장 역시 정치권으로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김기문 회장은 시계로 잘 알려진 로만손의 창립자이자 최대주주다.
◆후보만 7명 난립…과열 양상 반복

내달 27일 제 25대 회장을 뽑는 선거일을 앞두고 지난 18일 후보자 예비자 등록이 개시되자 현재까지 출마의사를 표명한 예비 후보는 김용구 전 중기중앙회장, 박성택 아스콘연합회장, 박주봉 철강구조물조합 이사장, 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 윤여두 농기계사업조합 이사장, 이재광 전기조합 이사장, 정규봉 정수기조합 이사장 등(이상 가나다 순) 7명이다.
중기중앙회 회장의 실익이 크다 보니 매번 선거 때마다 혼탁·과열 양상이 벌어지는 양상이 반복돼 왔다. 다른 경제 단체장들은 대게 거물급 인사가 회장으로 단독 추대되는 게 대부분인데 유독 중기중앙회장 선거는 과열 양상을 띠어 왔다. 2007년 선거 때도 5명의 후보가 난립했고, 2004년에는 금품과 향응 제공이 불거져 후보자 등 수십 명이 경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여기에 이번 회장 선거에는 공고 전부터 역대 최다인 8명이 출마 의사를 밝혀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바 있다.
지난 12일 한상헌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예비 후보 등록 전임에도 사퇴를 결정하고 사퇴문을 발표했다. 한 이사장은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며 후보자간 비방이 거세지는 있는 선거 분위기에 대해 꼬집었다.
한 이사장은 “이번 선거는 역사상 유례없이 8명이나 되는 후보가 출마함에 따라 벌써부터 과열과 혼탁, 흑색비방선거를 넘어 돈선거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누군가는 이 혼탁한 선거에 대한 경종을 울려 음해와 금권선거를 배척하고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살신성인해야 한다는 시대적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회장 선거를 위탁관리하고 있는 선관위로부터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선관위 정창영 단속본부장은 “중기중앙회장 선거를 위탁받은 이후 현재까지 3건의 경고가 발생했다”며 “경고를 받은 후보는 각기 다른 사람이며 금품과 관련된 것은 아니고 사전 선거 운동과 관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형별로는 중앙회 회원단체 대표를 상대로 한 현 중앙회 비방, 후보 홍보 유인물 배포, 출판 기념회를 통한 후보 홍보 등이다.
현 회장인 김기문 회장의 선거 개입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 서병문 중기중앙회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윤여두 농기계사업협동조합 이사장, 박성택 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 박주봉 철강구조물협동조합 이사장, 정규봉 정수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 예비 후보 5명은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중앙회 사무국은 이번 선거에 일체 개입하지 말고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일었다.
이 자리에 불참한 김용구 전 중기중앙회장도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이날 참석한 5명 예비 후보들과 같은 의견임을 밝히고 기자회견문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예비 후보 7명 중 6명이 김 회장의 중립을 요구하고 나섰음에도 이재광 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이 자리에 불참했고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아 의혹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예비 후보들은 이재광 이사장을 김 회장이 지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이재광 이사장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왜 빠졌느냐는 질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기자 여러분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회 안팎에서 김 회장의 마음이 이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예비 후보 중 한 명인 서병문 중기중앙회 수석부회장은 이날 사태가 심각해 정상적인 수석부회장 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직을 사퇴하고 “각 지역회장들 중에는 김기문 회장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런 시기에 지역회장단이나 이사장 등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가 진행되면서 후보자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불필요한 문제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행사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결국 오는 29~30일로 예정돼 있던 지역회장단 골프 및 워크숍 행사는 취소됐다.
◆곳곳에 변수…전략 싸움 치열
이들은 김기문 현 회장을 비롯한 중회 회장단의 특정 후보 지지가 표면화될 경우 선거 레이스의 양상은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정후보가 직간접적으로 현 회장단 지지를 받을 경우 선거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공정 선거를 위해 중립을 지킨다는 입장이지만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며 “회장단에서 출마의사를 밝힌 후보 3명의 경우 김 회장의 지지 여부에 따라 희비가 갈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후보자 도덕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회장 후보자는 불법선거나 개인 비위 혐의 등 도덕성 문제가 부각될 경우 선거인 추천은 물론 회장 선거에서 일정부분 표를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 한 대표는 “이미 특정 예비 후보가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추천과 후보 도덕성 등의 변수가 남아 있어 판세를 전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선거 양상이 갈수록 과열되고 있고 판세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정국으로 빠져들면서 후보 간 합종연횡 가능성도 제기된다. 예비 후보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협동조합 고위 인사는 “특정 후보들이 당선 가능성과 도덕성은 물론 현 회장단의 지지 여부 등을 감안해 선거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서로 연대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사를 지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기중앙회장 선거는 정회원(중소기업협동조합장 등) 530명의 간선제로 진행된다. 유권자의 10% 이상 추천을 얻은 예비후보만 본선에 나갈 수 있고, 본선 후보들은 다음달 27일 총회에서 본선거를 치르게 된다. 한 명이 20% 이상 추천을 받을 수 없으니 이론상으로는 5명까지 ‘컷 오프’가 된다.
자신을 추천한 후보자 명단을 본인이 열람할 수 있다는 규정도 변수 중 하나다. 조합들은 대부분 후보 전원과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여덟 사람이 모두 추천을 부탁하면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지 난감해진다. 한 사람 편을 들게 되면 나머지 일곱명의 후보와 사이가 껄끄러워진다. 이에 후보 추천을 기권하는 사람이 전체 선거인단의 10~20%에 달할 정도다. 이같은 규정은 향후 분쟁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단체들 무난한 진행 ‘비교’
중기중앙회의 선거 열기에 비하면 다른 4개의 주요 경제단체들의 후임 회장 선임은 대체로 무난히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나마 한국무역협회 회장 자리가 경쟁이 예상되는 정도다. 연임 제한이 없는 무역협회 회장직에는 현 한덕수 회장의 연임이 점쳐지고 있지만 후임으로 거론되는 기업인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2년 3월부터 무협을 이끌어온 한 회장의 경우 관료 출신답게 무리하지 않고 무난하게 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무협 회장은 연임 제한이 없는 만큼 재계는 한 회장이 한 차례 더 임기를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동안 무협 회장직에 의욕을 보여왔던 회장단 인사들 가운데 일부가 차기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과 구자용 E1 회장 등이 무협 회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기간 공석이었던 경총 회장 자리는 오랜만에 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총은 지난해 2월 이희범 회장이 사임하고 LG상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1년 가까이 김영배 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돼 왔다. 여러 재계 인사들은 경총 회장직에 대한 제안을 고사했다.
1970년 7월 창립된 경총은 지금까지 회장을 5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노동문제를 다뤄야 하는 경총 회장은 골치 아픈 자리란 인식이 팽배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올해는 박병원 전 은행연합회장을 내정하고 설득 작업 중인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회장직을 수락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총 회장 임기는 2년이며 연임에 제한이 없다.
역시 2년 임기에 연임 제한이 없는 전경련 회장직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다시 한 번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다른 주요 그룹의 총수 중에서 딱히 회장직에 도전하는 후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다시 추대되면 3연임째가 되는 허 회장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뿐이지만 지난 2013년 1월과 비슷하게 연임 불가 의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사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허 회장은 2011년 2월 조석래 효성 회장의 뒤를 이어 전경련 회장을 맡았고, 2013년 2월 재추대됐다.
대한상의 역시 이변이 없는 한 현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3년 임기의 회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박용만 회장의 경우 지난 2013년 8월 전임 회장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잔여임기를 마치는 만큼 제대로 된 임기를 한 차례 더 수행해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특히 박 회장은 박근혜 정부와의 소통이 원활하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고 있어 연임에 별다른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등 재계의 목소리를 내는데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지지도 또한 높은 편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