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재추진중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개발 사업이 예상과 달리 다시 표류하고 있어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시에 상암DMC 랜드마크 사업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한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녹지그룹은 최근 서울시가 약속과 다르게 사업 일정을 미루고 있다며 투자의향서를 철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녹지그룹 측은 “당초 올 1월 중 빌딩 부지를 공모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하겠다던 서울시가 지금은 말을 바꿔 계속 기다리라고 한다”며 “언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1월까지 입찰공모를 내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으며 상반기 안에는 입찰 공고를 낼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위기 넘기나 했더니…갈등 재점화
상암DMC 랜드마크 사업은 3조원 이상을 투자해 DMC 중심부 3만 7262㎡ 부지에 숙박·문화·집회·업무시설로 사용할 초고층 빌딩을 짓는 대형 프로젝트다.
당초 ‘서울라이트타워’라는 이름으로 2008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추진됐던 상암DMC 랜드마크 사업은 총 사업비 3조7000억원 규모로 상암 DMC 중심지역 9만5638㎡에 높이 640m, 133층 짜리 초고층 건물을 세운다는 계획으로 진행됐다. 특히 높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업자 선정 직후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상암DMC 랜드마크 부지는 F1블록(3만777㎡)과 F2블록(6484㎡) 등 2개 필지에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해당 부지는 올해 공시지가 기준으로 토지가격만 3200억 4452만원에 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상해에 있는 녹지그룹 본사를 방문해 상암DMC에 투자할 것을 요청하는 등 2년 동안 투자 유치에 공을 들여왔다. 이에 녹지그룹은 지난해 12월 상암DMC 랜드마크에 대해 투자를 결정하고 장위량 녹지그룹 회장이 직접 서울시청을 찾아 박원순 시장에게 LOI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며 공개입찰을 진행하겠다던 서울시가 일정 제시도 없이 특정 업체와 투자의향서를 체결하고 나선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고,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사업이 중국 자본에 넘어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지만 결국 사업 재추진이 가시화되는 모양새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난 현재 사업 진행은 답보 상태에 있다. 녹지그룹 측은 서울시가 명확한 이유도 없이 공모 절차를 미루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써는 이처럼 절차 진행이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주로 ‘높이’를 지적하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서울시가 늦장을 부리는 이유가 과거 상암DMC 초고층빌딩 사업권을 추진했던 컨소시엄 사업자들과 사이에 진행 중인 소송 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100층 안되면 랜드마크 아니다?
지난 2008년 133층의 서울라이트타워 사업을 추진할 당시 서울시는 대우건설과 한국교직원공제회 등 24개 사업자 컨소시엄을 시행사업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금융위기 때문에 컨소시엄 측은 사업성 악화를 우려, 건물 층수를 45~80층·4개동으로 변경하고 오피스텔을 더 짓게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공정성 훼손과 특혜 부여라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컨소시엄 측은 이에 반발해 토지대금을 도중에 연체하고 사업을 고, 서울시는 2012년 6월 “컨소시엄 측의 대금 연체와 사업 의지 결여로 계약해제를 통보하겠다”며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는 받은 토지대금 1965억원을 반환해야 했지만 사업 실패의 귀책사유를 서울라이트 측에 물어 계약금 등 700억원 상당을 뺀 나머지 금액만 돌려줬다.
컨소시엄 측은 사업 무산의 책임이 서울시에도 있음을 주장하며 못 받은 금액과 36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며 2013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해 8월 1심에서 서울시에 569억6100만원을 서울라이트타워에 돌려주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컨소시엄 측이 계약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시가 위약금 조로 받아간 금액이 너무 과도하다는 취지였다. 이에 서울시가 즉각 항소해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 결과는 올 하반기쯤 나올 전망이다.
새삼스레 서울시가 컨소시엄측과 벌이고 있는 소송전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녹지그룹 역시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이 아니라 88층 빌딩을 건설할 계획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녹지그룹은 상암DMC에 약 3조5000억원을 투자해 88층짜리 건물 2동을 건설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서울시 측은 사업 재추진 과정에서 “이전 133층은 사업자가 제안한 기준이고 서울시는 100층 이상을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밝힌 바 잇다.
즉, 층수 변경, 토지 용도 변경 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사업이 무산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서울라이트타워 컨소시엄 측의 주장을 일축시키기 위해서라도 녹지그룹의 층수 변경을 수락하기가 쉽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컨소시엄 측은 서울시가 100층 이하로 사업 계획을 변경하면 추가 소송을 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입장 변화 감지…조만간 ‘결판’
하지만 앞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서울시가 층수 하향 조정을 해주지 않아 사업에 실패했다”는 컨소시엄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같은 우려가 서울시의 지나친 보신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이 새나오고 있다. 2년여 간의 노력 끝에 겨우 재추진의 길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3조5000억원 규모의 상암동 DMC 랜드마크 개발 기회를 미루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는 오는 7월쯤 항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실상 부지 매각 공고를 미루려는 입장”이라면서 “공무원들의 과도한 보신주의 때문에 3년여 만에 찾아온 DMC 랜드마크 빌딩 건립 기회가 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지난 19일 서울시는 랜드마크의 기준을 100층 이상의 건물로만 한정한 현 규정을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보기로 했다고 밝혀, 결국 서울시와 녹지그룹간의 갈등의 이면에는 ‘100층 논쟁’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태다.
서울시는 이달 중 개최할 예정이었던 DMC자문위원회를 무기한 연기하고 내부적으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다음달 중 층수 완화 방안을 최종 확정하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사업자 모집공고를 늦어도 오는 3월 중에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녹지그룹은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359위로, 중국 부동산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 500대 기업의 반열에 오른 회사다. 최근 중국 부동산업계 컨설팅 기업인 EH컨설팅은 지난해 1~11월 중국 부동산 기업 매출액을 비교 분석한 결과 녹지그룹이 총 매출액 1918억 위안(약 34조4664억원)으로 만과그룹(1911억 위안)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녹지그룹은 해외 진출과 경영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1~10월 녹지그룹의 해외 투자규모는 200억 달러(약 22조18000억원)를 넘어서 해외 투자액으로 중국 국내 부동산 기업 중 최대를 기록했다. 장위량 녹지그룹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세계 주요 도시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어 공격적인 투자가 상암DMC 랜드마크 개발 입찰에서도 결실을 모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