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공연예술가 납치ㆍ살인사건의 배후로 기소된 여성 피아니스트가 “피해자의 사망에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1심보다 무거운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강영수 부장판사 형사3부는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전 남편의 납치를 사주해 숨지게 한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된 피아니스트 이아무개(42·여)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3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씨는 공연예술가 채아무개(사망 당시 40세)씨와 2010년 10월 결혼했으나 이 씨의 외도, 습관적 거짓말과 가출, 다른 남자와의 동거, 채 씨 소유 카페에서의 현금 유용 등으로 더는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고, 2012년 11월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를 끝내면서 이 씨가 채 씨에게 매달 70만원씩 총 7,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씨는 경제적 사정으로 위자료 지급이 어려워지고 자신의 치부가 음악계에 알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2013년 11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심부름센터 직원 3명에게 1,000만원을 줄 것을 약속하고 채 씨를 ‘혼내라’고 사주했다. 이들은 이듬해 1월 이 씨가 일러준 시나리오에 따라 채 씨를 유인·납치해 경북 안동 쪽으로 가던 중 용인휴게소에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차에서 달아나려는 채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이씨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등 죄질이 불량해 준엄히 꾸짖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범행을 사주하고 공모했을 뿐 직접 범행을 실행하지는 않았다"며 강도치사죄로 기소된 점을 고려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한 이 씨에게 도리어 형을 늘렸다. 재판부는 “이 씨는 채 씨의 사망에 가장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으로 공범인 심부름센터 직원들에게 선고된 형량과의 균형을 고려하면 1심의 형은 너무 가볍다”며 이 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채 씨를 실명시켜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심부름센터 직원은 이씨에게 ‘그 정도로 다치게 하면 죽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답하는 등 이 씨가 채 씨의 사망을 예견할 수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이 씨는 결혼 전력, 외국에 살고 있는 아들의 양육비를 책임져야 하는 사정을 감춘 채 씨에게 접근해 결혼한 데다가 채 씨 소유의 커피숍에서 현금을 유용한 정황이 드러나 결혼이 파탄에 이르렀다”며 “그런데도 오히려 채 씨에 대해 앙갚음을 계획해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씨는 채 씨가 죽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며 “오히려 자신이 채 씨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등 책임을 채 씨에게 돌리고 있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족들은 헤아릴 수 없는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 시달리며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사망에 가장 근원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으로 공범들과 양형의 균형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가볍다”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한편 실제 범행을 실행한 심부름센터 이아무개(27)씨 등 3명은 지난달 1심에서 각각 징역 25년, 13년, 10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