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싫지만 우리당이 더 싫다
‘도대체 왜 안 뜰까.’ 지지율 정체가 장기화된 열린우리당의 한숨 소리다. “당 지지율이 성추행과 공천비리에도 끄떡없는 마술 같다”는 정동영 의장의 하소연도 터진다. 5·31 지방선거에서 ‘집토끼 복원’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지만 낙관도 비관도 하지 못하는 무거운 당내 기류가 그대로 반영된 발언이다. 지방선거에 대한 당내 ‘중간평가’의 초점은 광역단체장 후보와 당의 괴리가 1순위다. 장밋빛 미래를 바라보며 당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영입한 장관 출신 인사들은 현재 한나라당 후보들과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 중진은 “영입후보와 당의 접목이 불완전하다”며 “당과 거리두기를 넘어 아예 반대로 엇나가는 후보의 언행은 지지층에 혼란을 준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절대 안찍겠다’는 여당의 비토(거부)층 급증과 여당 밖의 ‘보수층 결집’이란 외풍이 그 실체들이다.
◆지지율의 키워드는 ‘무능과 독선’
8일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정당 지지율이 한나라당 33.5%, 우리당 19.9%, 민주노동당 10.7% 순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같은 기관의 정례여론조사에 비해 한나라당 지지도는 29.6%에서 3.9% 포인트 상승한 반면 우리당 지지도는 22.3%에서 오히려 2.4% 포인트가 하락해 격차는 7.3%포인트에서 13.6% 포인트 차로 벌어졌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파문,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파문에 힘입어 좁혀졌던 양당의 격차가 다시 두 배 가까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나라당은 박성범, 김덕룡 의원의 '거액 공천헌금 의혹' 사건뿐 아니라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5월 정례여론조사 직전에는 박계동 의원 '몰카' 파동까지 터졌지만 지지율은 요지부동인 셈이다.
이런 각종 비리와 추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한나라당이 잘못한 것이 많지만 우리당이 더 싫다라는 의외의 답이 나왔다. 또한 국민들이 한나라당의 보수적인 이념에 공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한나라당 지지층과 40대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44.5%, 40대의 49.9%가 "우리당을 더 싫어한다"고 답했다. 반면 각종 개혁적 법안과 제도를 추진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당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는 까닭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의 무능함과, 국정운영 방식이나 철학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한나라당 강세, 우리당 약세의 키워드는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정부여당의 무능과 독선' 때문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우리당 지도부는 한나라당 지지율의 고공행진에 대해 "국민들이 한나라당에게는 관대하고 우리당에는 엄격하다"며 "돈 공천, 성추행, 사학법으로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원인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악재의 반사이익이 없다
명지대 신율 교수(정치학)는 “한나라당의 악재가 터져도, 여당이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압축했다. 한나라당의 비리를 문제삼고 여당이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여당도 마찬가지’ 라며 현 위치를 유지하거나 모두 부동층 화됐다는 분석이다. ‘표의 탄력성’이 낮아졌고, 역으로 여당의 표 흡수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잘한다’라는 층도 여당을 지지하는 그룹에서의 지지도 40~50%선에 그치고 있다. 지난달 25일 KSOI 조사에서 ‘절대 찍지 않을 정당’에 대해서 열린우리당(24.9%)이 1위를 차지했다. 한나라당(19.2%), 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각 10.8%), 민주당(6.8%) 순이다. 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38.0%, 우리당이 10.7%였던 현상이 역전이 됐다. 우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40대의 이탈이 가장 눈에 띈다. 29%였던 가 2년 전보다 16.6%포인트 늘었고, 수도권(26.2~28%)도 증가폭이 컸다. 한나라당은 20대와 충청·호남권, 화이트칼라·고학력층의 비토층이 1위였다. 이런 현상은 우리당이 2년 전 부패 대 반부패의 반사이익을 봤다면, 지금은 민생경제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무능한 것은 못참겠다는 정서가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신율 교수는 “사학법 재개정을 막은 것은 지지층에게는 노대통령과 함께 2년간 좌우로 흔들리다 선거전에 정신차린 듯한 ‘본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누적된 정치불신이 선거를 맞아 한번에 해소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여당의 약한 반사이익은 ‘무능’과 ‘정체성 혼란’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여기에 한나라당이 공천비리라는 사건이 터졌을때 감싸기 보다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도 역풍을 낮춘 것에 한 몫을 했다.
◆외풍도 양극화
‘보수층 결집-개혁층 이완’이라는 흐름도 여야의 이해가 엇갈린다. 우리당의 한 중진은 “보수층의 결집도가 높아진 것은 현재 지방선거에서 대선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개혁층보다 커진 것”이라며 “외견상 20%를 넘나드는 대선주자 박근혜·이명박의 지지율이 당지지율을 묶어주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우리당은 당 지지율의 축이 되는 대선주자들이 전혀 당 지지율을 올려주지 못하는 상황이란 비교다. 사회를 움직이는 40대들이 보수화로 흐름을 바꾼 것도 주목된다. 취업·주거·교육 등이 이슈화되고, 중산층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보수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40대층이 우리당을 외면하고 있다. 학교에서 보는 20대도 정치보다 경제의 관심도가 커진 추세로 변하고 있다. 그는 FTA·비정규직·부동산·미군기지 문제도 여당이 뚜렷한 정체성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 진보·개혁세력의 분열을 촉진할 ‘여권의 악재’라고 내다봤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