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상권 살리기’ 움직임의 열기가 뜨겁다. 일각에서는 대형마트의 휴일 영업 제한을 두고 경제민주화의 승리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드럭스토어와 아울렛, 복합쇼핑몰 등이 유통산업발전법상의 등록제와 의무휴업 규제 등을 피하면서 소상공인들과의 마찰이 다시 시작됐다.
대형마트와 소상공인 사이의 2차전은 사실 예고됐던 결과다. 지난해 12월 12일의 서울 고법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6개사가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낸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에 성동구와 동대문구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만약 이 판결이 확정되면 동대문구와 성동구의 대형마트들은 주말과 영업뿐 아니라 24시간 영업도 할 수 있게 된다.
판결에서 가장 논란이 있었던 부분은 ‘대형마트’의 정의다. 재판부가 홈플러스와 이마트, 롯데마트 등을 두고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점원의 도움 없이 물건을 사는 점포’를 대형마트로 규정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을 근거로 들었다.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등을 방문한 고객이라면 누구나 점원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당초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대형마트를 분류할 때 세운 기준인 ‘점원의 도움 없이’라는 문구는 ‘일괄적으로 물건을 담아 구매가능 하도록 하는 창고형 매장’을 두루 가리키는 것임을 고려할 때, 재판부가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대입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또 재판부는 영국계 기업인 홈플러스에 대해 애초 영업 제한을 할 수 없다고도 판시했다. 해당 기업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적용 대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WTO와 FTA협정은 ‘사람의 건강 등을 보호하기 위한 때’를 제외하고는 해당 외국계 업체의 서비스 영업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영업시간 제한은 직원들의 건강을 위한 조처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재판부는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은 밤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려운 맞벌이 주부와 아이가 있는 가정 등은 주차 여건이 열악한 전통시장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결정은 일부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판부는 소상공인들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의 근거로 제시하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에 대해 “대형마트 노동자보다 근무환경이 비교적 더 열악한 전통시장 상인들의 건강권 보호 필요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골목상권 상인과 전통시장 상인, 대형마트가 상생협력하기로 했던 내용을 법원이 대기업 편에서 법리적으로만 해석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로 소상공인들은 또 다시 생존권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유통공룡 롯데, 골목상권 삼키나
이같이 대형마트와 소상공인들이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며 척을 진 가운데 대형 유통기업 롯데가 한식뷔페 사업 진출을 발표했다. 이에 골목상권은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지난달 7일 <조선비즈>는 롯데리아가 “오는 5~7월 한식뷔페 사업을 시작한다. ‘별미가’ 1호점 장소로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 송파구 등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롯데그룹의 한식사업은 롯데리아가 주도하고 롯데푸드가 음식의 재료 공급·유통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이 대기업의 외식사업 출점을 자제하라는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를 의식해 롯데 소유 건물에만 한식당을 출점할 것으로 보인다고도 조선비즈는 전망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현재 백화점 32곳과 100여곳이 넘는 대형마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맹점이다. 동반성장위의 권고에 따르면서도 롯데는 합법적으로 한식뷔페 매장 수를 늘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단체는 동반성장위의 권고가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헛점’에 대해 “동반위가 유통재벌에 의해 골목상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롯데가 개장준비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한식뷔페 ‘별미가’의 경우 실제로 바로 길 건너편에 먹자골목이 형성돼 있다. 여기에는 70여개의 일반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어 이곳에 롯데 한식뷔페가 들어서면 소상공인들이 매출 등에서 큰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한식 뷔페가 복합몰에 들어가서 영업을 하면 주변 골목상권 고객들까지 모두 집중되는 효과가 있다”고 우려했다.

◆ “규제시차, 골목상권 붕괴 원인”
‘골목상권 지키기’ 바람이 강하게 불자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2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를 도입하고 상권영향평가를 의무조항으로 개정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자는 토론회가 개최됐다.
‘해외사례로 본 대규모점포 규제방안 토론회’에서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이케아, 드록스토어, 복합쇼핑몰과 같은 대형·준대형 점포에 대해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 도입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유병국 교수는 쇼핑과 엔터테인먼트가 융합된 복합쇼핑몰의 집객효과와 대형유통업체의 인터넷 소매업 진출 사례를 언급하면서 기술 및 환경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시차’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어 대안으로 사업영역(판매품목)의 제한과 사업공간(도시계획에 의한 토지사용 용도)의 구분을 제시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이동주 정책기획실장은 “주변상권에 10% 이상의 영향이 미치면 허가를 하지 않는 독일식 상권영향평가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이케아 광명점 주변 상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61%가 ‘이케아가 주변상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면서 “전문점도 영업시간 등 제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2011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 애초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탈법, 편법으로 대응하는 유통재벌들에 의해 완전히 무력화되는 과정을 겪어왔다”며 “대형마트와 SSM만이 아니라 상품공급점과 드럭스토어, 복합쇼핑몰이 새로운 갑이 되어 골목 상권을 짓밟고 있는 지금 기존의 유통법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골목 상권을 지켜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4일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소수의 독점적 대형마트 때문에 납품·입점업체와 골목상권, 영세상인의 권익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골목상권, 좋은 상품으로 승부할 때”
하지만 골목상권에 대해 이와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12월8일 <미디어펜>에 개제된 이헌 변호사의 칼럼에서 그는 ‘전통시장 골목상권으로 가서 상품을 사라고 강요당하는 소비자들’이라는 중재 아래 “경제민주화 구호에 사로잡힌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형마트의 영업규제로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은 원하는 시간에 편리한 장소에서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는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당하였고, 특정시간, 특정요일에는 대형마트에 가지말고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에 가서 상품을 사라고 강요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각종 조사결과에 의하면 대형마트의 매출 감소는 재래시장과 동네상권의 매출 증대 효과로 전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며 “오히려 대형마트의 매출 감소는 대형마트 내에 입주한 상인과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 및 중소업체에게 연쇄적인 피해를 야기하는 등 대형마트의 규제에 의한 실효성 보다는 도리어 부작용만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김진국 배재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김 교수는 “좋은 상품을 준비해 놓으면 소비자는 먼 길 마다하지 않고도 찾아온다”며 “골목상권 혹은 재래시장에서 상품 구성, 가격 및 시장환경 등을 포함 더 나은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면 소비자가 마다할 리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골목상권 및 재래시장은 정부에 대형마트 영업시간제한 요구를 하기 전에 먼저 소비자에게 본인들이 충분히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에 대해 “시장에서 존중받아야 할 소비자들의 선택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 사료된다”며 블로거의 말을 인용해 “골목상권 혹은 재래시장은 우리가 지켜내야 할 공공의 자원은 아니라는 것이 많은 소비자들의 생각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이를 간과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규제는 결국 이미 재래시장에서 마음이 떠난 소비자를 붙잡지는 못하고 대형마트와 중소상인의 매출은 정체된 채 그 시장을 온라인시장에 빼앗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마냥 골목상권의 입장 호소에만 귀를 기울일 수 없다는 입장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들이 골목상권의 입지를 흔들고 있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논리에 사실상 소비자들의 선택권 또한 침해받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단순히 ‘대형마트 대 중소상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시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경쟁할 부분과 협력할 부분을 분명히 해야 할 때로 보인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