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아니에요”…빠져 나가는 대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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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유예 마치고 14일 본격 시행…기업들, 치열한 머리싸움

 

▲ 한 달여간 두 차례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13.39%의 블록딜을 시도했던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은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총수 일가 처벌을 피하기 위한 마지노선인 30%에 10주 모자라는 29.99%로 내려갔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지난달 12일 오후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13.39%를 돌연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와 증권계 등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며 큰 반향이 일었다.

당시 증권가는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지배구조 개편에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여겨졌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량으로 내놓은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져 오던 시나리오를 아예 다시 쓰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지배구조 프리미엄으로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추락했고 상대적으로 억눌려져 있던 현대모비스는 ‘봉인’이 해제되며 급등했다. 여기에 지난해 한전 부지 고가 인수 논란으로 크게 타격을 받았던 현대차그룹 자체의 신뢰도 역시 겨우 주주친화적 정책으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공식적인 이유는 바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함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간의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6일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블록딜을 재시도해 결국 성공하면서 현대글로비스의 잔여 보유 지분을 2년여간 처리하지 않겠다는 보호예수 조건까지 내걸며 겨우 시장을 진정시켰다.

◆1년의 유예기간 마치고 본격 시행 앞둬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오는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확하게는 지난해 2월 14일 개정된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중 기존 내부거래 규제에 대한 1년여간의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개정 이후 현재까지는 신규 내부거래에 대해서만 제동을 걸어 왔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 그룹에서 총수(오너) 일가의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상장 계열사(비상장 계열사는 20%)는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 매출의 12%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의 일감 몰아주기는 ‘기업이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을 보유한 회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나 상당한 규모로 거래를 하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규정됐다.

해당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공정위는 정도에 따라 시정명령 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검찰 고발까지도 가능하다. 이 경우 오너는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고 3년 평균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도 있다. 기존에는 해당 계열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또는 시정명령 등으로 마무리 돼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예외 사유도 존재한다. 정상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이고 연간 거래액이 50억원 미만(상품·용역은 200억원)인 경우, 계열사가 사업기회 수행능력이 없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사업기회를 제공한 경우, 상품·용역의 연간 거래총액이 거래상대방 매출액의 12% 미만이고 200억원 미만인 경우, 비용절감 등 효율성 증대, 기술유출 등 보안, 경기급변·금융위기·천재지변 등 긴급한 경우는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재계는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상당히’ 유리한 조건, ‘상당한’ 규모의 거래나 사업기회 제공 등의 의미가 너무 모호하고,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는 등 전체적으로 표현들이 너무 애매하고 실효성이 너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한 바 있다.

▲ 삼성석유화학을 지난해 삼성종합화학에 합병한 후 한화와의 빅딜로 넘긴 삼성은 가치네트를 이미 청산했지만 제일모직의 건설부문이 아직 규제 대상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 측은 제일모직의 건설 부문이 예외 요건에 해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사진 / 홍금표 기자

◆삼성·SK, 합병으로 규제망 피하기?
어쨌든 공정위는 자발적으로 대기업들이 시정할 시간을 1년여를 제공했고 이제 본격적인 적용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만큼 볼멘 소리만 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간 공정위가 규제 대상으로 지목했던 대기업들은 사업구조 재편, 내부거래 축소, 지분 정리, 청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피한 기업은 삼성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석유화학, 가치네트 등 3개사가 규제대상이었는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분 30% 이상을 보유한 삼성석유화학은 지난해 삼성종합화학에 합병시킨 뒤 한화그룹과의 빅딜을 통해 삼성테크윈 등과 함께 한화에 넘겨주기로 한 계열사라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인 가치네트는 이미 청산 절차를 밟았다.

현재까지 남은 건 오너일가의 지분이 40%를 넘는 제일모직이다. 제일모직은 사명을 변경하기 전인 2013년 하반기 삼성에버랜드에서 영위하던 급식사업을 삼성웰스토리로 분사하고, 건물관리업은 에스원으로 양도해 내부거래 비중이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인 건설 부문만 규제 대상으로 남아 있다. 다만 예외 요건인 긴급성·보안성 등에 해당하는 공사 물량이 있기 때문에 규제 심사에 쉽게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내부에서는 보고 있다.

SK C&C와 에이엔티에스(ANTS) 두 곳이 규제 대상인 SK그룹은 최근 SK C&C를 SK㈜와 합병할 것이라는 합병설에 휘말렸다. 내부거래액이 2013년 기준 9544억원으로 41.5%를 차지하는 SK C&C는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의 대주주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고,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 지분이 43.43%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SK C&C와 SK㈜를 합병한 뒤 사업회사를 자회사로 전환하면 그룹 내 매출 비중이 줄고 일감 몰아주기 이슈도 해소될 수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최 회장이 그룹을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점도 합병 매력을 높이는 요소로 꼽힌다. 지분을 매각하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SK그룹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현대차, 지분 매각·합병 총동원
총수 일가의 지분을 직접 낮추는 방법으로 규제를 피한 기업은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개정법 취지에 부응하기 위해 계열사인 현대엠코와 현대위스코에 이어 지난 6일 블록딜 방식으로 지분을 낮춘 현대글로비스까지 총수일가 지분을 30% 미만으로 낮췄다. 이 중 현대엠코와 현대위스코는 각각 지난해 4월, 11월에 현대위아,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돼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고, 현대글로비스는 두 차례의 시도 끝에 블록딜 방식으로 13.39%의 지분을 처분했다.

하지만 그밖에 규제 대상으로 거론돼 온 현대오토에버, 이노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현대커머셜 등은 아직 규제 제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은 이노션이 50%, 현대오토에버 29.1%,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28%, 현대커머셜 50% 등이다. 시장에서는 이노션의 경우 상장이나 총수일가의 지분을 추가 매각하는 방식으로, 또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는 합병하는 방식으로 오너 일가의 지분을 축소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그룹도 지분 매각보다는 사업구조 재편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3형제가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 S&C는 보안성 유지 등 공정위 규제의 예외 조항을 중심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한화S&C는 장남인 김동관 상무의 경영승계를 위해서도 핵심적인 기업이기 때문에 지분 정리를 할 가능성보다는 사업구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S&C의 계열사간 상품·용역거래 의존도는 50% 안팎의 수준이다. 에스엔에스에이스, 태경화성, 한컴, 한화 등도 역시 거래처 다변화 등을 통해 규제를 벗어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 안 될 것”…낙관론도
애초에 내부 거래 비중이 크지 않아 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곳은 롯데그룹이 대표적이다. 롯데그룹 계열사 중에는 한국후지필름,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 비상장사 4개사가 규제 대상으로 지정됐지만, 그룹 관계자는 “4개사 모두 대상에는 올랐지만 내부 거래 비중이 높지 않아 문제 될 소지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신동빈 회장이 지분 22.08%를 소유한 한국후지필름의 내부 거래액은 2013년 기준 전체 매출액(714억원)의 3.5%에 불과하다. 또한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이 최대주주인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는 현재 사업을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내부거래도 거의 없다는 게 롯데그룹의 설명이다.

무려 18곳이나 규제 대상에 포함된 GS그룹 역시 대부분 내부 거래 비중이 크지 않아 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주회사인 ㈜GS를 비롯해 GS네오텍, 옥산유통, GS ITM 등 규제 대상은 18곳으로 많지만 주로 방계회사들로 소규모다. GS그룹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GS경영과는 무관한 방계회사들로, 건수는 많지만 실제 내부거래 규모(금액)는 다른 그룹에 비해 현격히 낮은 수준"이라고 항변했다.

또한 GS그룹 측은 ㈜GS는 계열사로부터 브랜드 사용료 수입을 얻고 있고, 본사 사옥 임대 등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상황이고, 옥산유통은 필립모리스 담배를 독점 수입해 GS25 편의점 등에 납품하는 회사로, 대체 불가능한 사업영역이며, GS ITM은 IT 관련 회사로 내부 보안을 담당해 불가피한 내부거래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또한 GS네오텍은 내부거래 대상 거래 가운데 신규거래는 중단하는 등 비중을 현저히 낮추고 있다.

이밖에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 정석기업 등이 규제 대상인 한진그룹은 “공정위의 규제와 관련해 총수 일가의 지분을 파는 등의 준비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 LG가 구형모 씨가 소유한 ㈜지흥은 2013년 매출을 전년 동기 1260억원보다 30% 줄어든 881억원으로 낮추면서 내부거래비중을 15%까지 낮췄다. 9월에는 자동차·가전 센서시스템을 만드는 센시스를 인수했다.

▲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시민단체와 재계는 모두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시민단체는 “어떻게 규제를 빠져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안내서”라고 혹평하고 있고 재계는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짜고 치는 고스톱’?…비판 여전
한편 굴지의 대기업들이 일제히 내부 거래 비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합병·지분 정리 등으로 회피하는 것에 대해 ‘꼼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박주근 CEO 스코어 대표는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지분 매각에 대해 “(총수 처벌 기준을) 피해가기 위해서 29.99%를 맞추는 것은 법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행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지분은 30%에서 딱 10주가 모자라며 30%만 넘지 않으면 과징금을 부과받더라도 총수 일가가 고발되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합병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보유한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으면서 총수 처벌 기준만 빠져나간다는 내용이다. 삼성SNS와 삼성석유화학, 현대엠코, 현대위스코 등이 이런 방식을 택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채이배 회계사는 “규제를 회피하려는 노력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비율이 아닌 금액에 어떤 기준을 마련해서 대응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멀쩡히 운영되던 계열사를 잇달아 합병·분리하는 것은 너무 노골적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처럼 명확한 수치를 통해 정량적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은 정부라는 점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 경우 정부 역시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기업 세무담당 임원은 “몇 몇 기업만 신중히 들여다 보면 될 사안을 전국에 있는 모든 기업에 적용하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정량적 기준은 오히려 피해가기가 더 쉬워 작년 시행후 다양한 조세회피 방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제도의 헛점이 많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참여연대는 “재벌에게 ‘이렇게 하면 걸리지 않고 일감몰아주기를 할 수 있다’는 안내서와 같다”며 혹평한 바 있다.

또한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계열사를 통한 내부 거래는 규제 대상에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특수관계인의 범위를 ‘동일인 및 그 친족에 한한다’고 규정돼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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