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현대車, 통상임금 판결 엇갈린 이유
현대重·현대車, 통상임금 판결 엇갈린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정성’이 뭐길래…재계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이냐”
▲ 올해 노사협상 최대의 이슈인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법원이 각각 다른 판결을 내려 재계의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올해 재계를 뒤흔들 이슈인 ‘통상임금’ 재판에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 각각 다른 판결이 내려져 재계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 12일 울산지방법원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에서 “상여금 800% 전부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2009년으로 소급해 3년 간의 추가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반면 한 달여 전인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차 노조원 23명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옛 현대자동차서비스 근로자 2명에게 합계 400여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청구는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통상임금 판결이 한 번 내려질 때마다 재계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는 통상임금 인정 여부에 따라 재무 부담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으로 인정받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초과수당, 야간수당, 휴일근무수당 등의 산정기준이 넓어져 근로자가 받는 범위가 넓어진다. 예를 들어 시간외근무수당의 경우 ‘시간당 통상임금’을 산정해 이의 150%를 지급해야 한다. 1년에 한 번씩 받는 연차수당 역시 시간당 통상임금을 일수로 계산해 지급해야 한다.

◆판결 가른 ‘15일’, 핵심은 고정성
두 회사가 각각 다른 판결문을 받아든 이유는 ‘고정성’의 차이 때문이다. 지난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이 가이드라인에는 ‘일정 주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지급될 것’(정기성), ‘일정 조건이나 기준에 해당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될 것’(일률성), ‘지급 여부가 업적·성과 등 추가 조건에 관계없이 확정돼 있을 것’(고정성)이 포함됐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의 판결이 갈린 것은 이 ‘고정성’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등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부는 옛 현대자동차서비스 근로자 2명에게만 고정성을 인정한 근거로 ‘15일 미만 근로자에 대해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을 들었다.

같은 재판 대상이었던 현대자동차와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는 이 규정이 있었다. 현대차와 현대정공은 지난 1999년 현대자동차서비스와 합병하기 전부터 2개월 중 15일 이상을 근무해야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이 성과급은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판단된 것이다.

즉, 옛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는 15일 미만의 근무 여부와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상여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 것이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정공은 15일 미만 근무한 근로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상여금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옛 현대자동차서비스 소속 근로자들은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상여금이 일할계산돼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당시 판결로 현대차의 5만1600명의 근로자 중에서 옛 현대자동차서비스 출신인 5700여명 중 근로시간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은 근로자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에 현대중공업이 패소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에도 옛 현대자동차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상여금의 지급 조건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지난 5일 르노삼성의 통상임금 소송도 ‘고정성’이 당락을 결정지었다. 창원지방법원은 르노삼성 근로자 23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은 지급기준 기간 말일인 홀수 월 말일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돼 고정적인 임금이라 할 수 없고, 문화생활비는 월 15일 이상 근무라는 추가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지급이 결정되므로 역시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 할 수 없다”며 르노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같은 날 창원지방법원은 S&T 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고정성’이 있다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S&T중공업 전·현직 사원 720명이 제기한 이 소송에서 재판부는 “설·추석 상여금과 유해수당은 조건을 충족해야 지급하는 임금이기 때문에 고정성이 없다”면서도 “정기상여금은 근무 일수에 연동하는 임금으로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 통상임금 문제로 쟁의행위까지 가결된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의 소송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논의를 미룬 상태다. 현대중공업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조선업계 전체에 미칠 파장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사진 / 홍금표 기자

◆규정 하나로 수 천억 갈려…재계는 ‘패닉’
하지만 일련의 법원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근로 현장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15일 미만 근무자’에 대한 규정 하나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수 천억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 것은 난센스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규정 하나가 빠져서 현대중공업이 이번 판결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적게는 3000억원대에서 많게는 6000억원대로 추산된다.

또한 현대중공업의 판결의 여파가 재계 전반에 미칠 파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이미 많은 대기업들의 임단협 협상에는 통상임금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올라와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1심 판결을 끝내고 2라운드에 돌입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정기상여금, 설·추석 휴가비, 하기 휴가비 등은 (지급 당시)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므로 고정성이 없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으나 노조 측은 이에 대해 반발하고 쟁의행위를 가결한 상태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도 지난 2012년 창원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판결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달 13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버스운전사 김 모 씨 등 5명이 영신여객자동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직자에 한해 기본급의 연 600%를 연 6회로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창원지법의 르노삼성 소송에서는 재직자 조건 때문에 고정성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는데, 영신여객자동차㈜ 소송에서는 재직자 조건이 있어도 고정성이 있다고 판시된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부산지법의 르노삼성 소송에서는 지난 5일과 다르게 재직자 조건이 있어도 고정성이 있다는 판결이 나와 파장이 일기도 했다. 당시 부산지법은 “재직자 조건이 있지만, 정기상여금을 결근한 근로자에게도 일할 계산해 지급해 고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는 한 회사 내의 같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각각 법원이 다른 판결을 내리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것이냐”고 혼란스러움을 토로하고 있다.

2013년 기념비적인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을 두고 기업들은 관련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판결마다 기준이 다른 법원의 결정 때문에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당장 현대중공업과 현대차의 판결 역시 상급심에서 어떻게 뒤집힐 지 향방을 전혀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달여간 수 차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엇갈린 결과가 나오자 혼란에 빠진 재계는 속히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법제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정부 및 국회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 시선이 쏠리고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