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선언을 두고 정치권 논쟁이 뜨겁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야 정치권 논쟁이라기보다,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한 홍준표 경남지사와 거세게 반발하는 야당 간의 불꽃 튀는 대결이다. 특히, 지난 18일 홍준표 지사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직접 만나 무상급식 격론을 펼친 것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홍준표 지사가 의도한 것인지 진정성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무상급식 이슈를 타고 확실하게 보수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만은 사실이다. 싸움판이 커지면 커질수록 홍 지사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일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앞서 진주의료원을 폐쇄할 때도 마찬가지 상황이 나타났었다. 진보진영과 시민사회 측에서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분명 이에 따른 반대급부도 존재했다. 홍 지사는 이런 반대급부 효과를 누렸고, 보수진영의 차기 대선주자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됐다. 무관심보다 비판이라도 있는 게 낫다고, 그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도 덩달아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번 무상급식 중단 선언을 놓고도 야당에서는 아이들 밥그릇을 놓고 홍 지사가 대권놀음을 하고 있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홍 지사는 이런 대권놀음 비판에는 일절 대꾸하지 않은 채 야당과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맞서고 있다. 그는 ‘선별적 복지’라는 보수의 확실한 명분과 비전을 가지고 야당의 세찬 공격들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국갤럽>이 발표했던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66%는 초중등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재원을 고려해 소득 상위 계층을 제외한 선별적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들고 나온 야당의 손을 들어줬던 국민들이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무상급식을 시행한 지 4년이 지나고, 또 최근 국가 재정과 복지 수준의 상관관계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들이 나오면서 국민 의식도 크게 변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조사에서 야당이 제기하는 ‘정부 지원을 늘려서라도 소득에 상관없이 전면 무상급식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즉, ‘선별적 복지’ 의견이 ‘보편적 복지’ 의견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홍준표 지사의 이번 선별적 급식 주장이 야당의 전면 무상급식 주장에 결코 밀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선별적 복지’가 결코 홍준표 지사만의 브랜드가 아니었지만, 지금 그는 ‘선별적 복지’를 확실한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 차기 대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된 셈이다.
그러나 홍 지사의 이런 행보가 최선은 될 수 없다. 보수를 결집시킬지는 몰라도 반대세력은 더 멀어지게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 차기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면, 아무리 보수적 이념으로 무장된 확고한 신념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일방통행식은 곤란하다. 지금은 사회 통합과 화해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고, 국가 지도자는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는 사안에 보다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조차 지난 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이슈에 파고들어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이야기했었고, 100% 국민대통합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었다. 그런데 홍 지사는 지금 이에 역행해 다시 이념 전쟁의 선봉장으로 서고 있다니, 아쉬움이 남는다.
홍 지사는 자신을 찾아온 문재인 대표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야당 대표가 직접 올 거였으면, 대안을 가지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 맞는 말이다. 문재인 대표 역시 ‘보편적 복지’라는 자기주장만을 가지고 ‘선별적 복지’ 가치관이 뚜렷한 홍준표 지사를 꺾으려 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문 대표 또한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지방자치 행정에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광폭 행보 이미지’를 심기 위해 경상남도를 찾아갔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정성을 찾기 어려운 발걸음이었다는 의미다. 그리고는 “벽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답답할 걸 모르고 내려가 답답했다고 토로하는 자체가 답답한 일이다.
홍준표 지사도, 문재인 대표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이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다면, 이런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내 주장만 옳다고, 상대 주장은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태도는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 복지든 자기주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쉽게 대안이 찾아지지 않고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는 서로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현명한 일이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표는 찾아가 홍 지사의 입장을 들었어야 했고, 홍준표 지사는 찾아온 문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은 두 사람의 만남이었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