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그동안 고심을 거듭해오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기로 공식 선언했다. 정부는 26일 최종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리고 중국 측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서한으로 통보했다. 이로써 한국은 AIIB에 예정창립회원국의 지위를 얻게 됐으며, 오는 6월 중으로 설립협정문 협상이 완료되면 이후 우리 국회의 비준절차를 거쳐 창립회원국이 될 예정이다.
정부에 따르면 AIIB는 그동안 낙후됐던 아시아 지역의 지속적 성장과 사회발전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는 다자개발은행으로서,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시설 투자수요는 2020년까지 매년 7,300억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SOC 등 기반시설 조성에 초점을 맞춘 다자개발은행이라는 뜻이다. 해외 건설 및 토목사업 등에 참여 경험이 많은 우리로서는 이번 AIIB 참여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마냥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AIIB가 중국 주도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불편한 외교 문제가 남아 있고, 또 우리의 지분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문제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우선, AIIB는 그동안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왔던 아시아개발은행(ADB)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의 동맹국가인 미국과 일본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고, 실제로 투자 가치가 긍정적이라는 셈법이 나오면서도 일본은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우방 국가들을 향해 AIIB 참여를 반대해왔던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AIIB 참여를 선언하면서 “세계은행(WB)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기존 다자개발은행의 이 지역에 대한 투자자금 공급은 이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안보와 경제 두 축 모두를 미국에 의존해오던 우리 정부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으로 분리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셈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부담은 과거에 비해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중국과 손을 잡고 미국을 외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AIIB 참여 선언은 미국의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의 한반도 배치 논의로 직결되고 있다. 아직 미국이 우리 정부에 사드 배치를 공식으로 요청한 바는 없다고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는 사드 배치 논란에 불이 붙어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중국 주도의 AIIB 참여를 선언했으니, 사드 배치 또한 이제 수순 아니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AIIB와 사드에 대한 ‘패키지 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만일, 사드가 AIIB와 마찬가지로 두 말할 필요 없이 우리 국익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드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고, 정부 역시도 이런 논란 속에 이렇다 할 만한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AIIB 참여에 따른 미국 달래기용으로 사드를 덜컥 배치하겠다고 결정내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식이라면 향후 수많은 미국과 중국 G2간의 대결 속에 우리는 늘 봉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눈치 보기, 중국의 눈치 보기가 아닌 우리 국익 우선의 자주적 외교를 펼칠 때가 됐다는 얘기다.
AIIB 자체에 대해서도 정부가 참여 선언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투자 가치가 분명하다는 것은 여야 정치권도 한 목소리이며, 전문가들 또한 크게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AIIB 내에서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AIIB 참여를 선언하자마자 온통 관심사는 우리가 과연 3대 주주가 될 수 있을까 하는데 쏠려 있다. 하지만, 정부는 “GDP 순으로 보면 한국이 역내 3위지만 우리가 세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갖는다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의 지분을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다 적극성을 가지고 지분 확보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 중국의 지분이 50%를 넘길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독주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참여 국가들과 적극적인 공조 속에서 중국 지분율을 낮추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AIIB 참여로 우리가 중국의 성장에 들러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다. AIIB 참여 선언은 이렇게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또 심각한 위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대국들의 경쟁 속에서 우리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나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