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의 발걸음은 ‘대권’을 향하여
2002년 대선 패배 직후 정계를 은퇴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요즘 행보가 바빠지고 있다. 사실 이 전 총재의 충청도 동선은 자신의 고향인 충남 예산으로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이 전 총재의 동선이 넒어 지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방선거를 맞아 잇달아 후보자 선거사무소를 격려방문하고 있다. 이 전 총재는 21일 오전, 국회의원과 대통령 후보 시절 비서관 및 보좌역을 맡았던 정용기 대전 대덕구 구청장 후보와 인근성당에서 미사를 본 뒤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격려했다. 이 전 총재는 이어 이날 오후에도 박성효 한나라당대전시장 후보 사무실과 충남 천안에 있는 한나라당 이완구 충남도지사 후보 사무실을 각각 방문할 예정이다. 이 전 총재는 5․3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8일, 고향인 충남 예산을 찾아 이완구 충남지사 후보 거리유세장과 종손인 이회운 예산군의원 후보사무소에 들렀고, 홍성에 있는 홍문표 충남도당위원장 사무실을 잇따라 방문해 해당 후보와 당원들을 격려했었다. 이 전 총재의 잇단 지방선거 후보 사무실 방문으로,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계재개를 위한 행보를 공식화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지난 4월 초에도 이 전 총재는 국민중심당 심대평, 신국환 공동대표를 만나 면담한 바 있다. 그는 올해 새해 첫날인 1일, 이례적으로 자택을 공개하고 주요 정치인들의 새해 인사를 받았다. 당시 취재진에게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 사학법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야당으로서 할 일을 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지난 2월에는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한 축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계획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 정계 복귀한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심상찮은 행보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르면 올해 내에 이 전 총재의 대권 행보가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전 총재의 지지단체인 인터넷 '창사랑' 조춘호 대표는 23일 PBC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 패배 이후에 잠시 정계를 물러난 것이지 정계 은퇴는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이날 이 전 총재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전․충남지역 한나라당 후보들의 지원에 나서는 것과 관련해 일상적인 정치무대 재진입 절차에 불가하다고 밝혔다. 아직 본격적인 정치 재개 신호탄은 아니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대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의미있는 정치행동이 있을 때를 이 전 총재의 본격적인 정치재개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뒤 향후 대선 정국에서 이 전 총재의 '결심'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 대표는 한나라당 내부의 당권경쟁 구도와 5․31 지방선거 이후에 열린우리당의 정계개편 시도를 이회창 전 총재 대권선언의 두가지 변수로 꼽고 있다. 한나라당의 7월 전당대회 이후 이 전 총재의 역할론을 부각시켰다.
조 대표는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 전대 이후 시점인 오는 7월과 8월 사이가 이 전 총재의 대권 행보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강력한 대권후보로 부각되고 있는 고건 전 총리에 맞설 한나라당 대항마로서 이 전 총리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박근혜 대표 측과 이명박 시장 측이 어떤 상황이 된다면 분명히 우와 열로 구분될 것"이라며 "열세 입장에 있는 후보는 이 전 총재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회창 전 총재가 현재까지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 내 어떤 세력들을 이용해 충분히 대권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창 복귀는 역사적 퇴행 현상?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계복귀 움직임에 대해 소장파 의원들은 "역사적 퇴행 현상으로 불행한 일"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전 총재 지지자 모임인 '창사랑'의 조춘호 대표가 조 대표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 시점인 오는 7월과 8월 사이가 이 전 총재의 대권 행보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강력한 대권후보로 부각되고 있는 고건 전 총리에 맞설 한나라당 대항마로서 이 전 총리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의 측근이었던 모 초선 의원은 <시민일보>와의 대화에서 "연초 이 전 총재가 집을 개방한 시점이 사실상의 정계복귀 시점인 것 같다"며 "최근 대전 유세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행보 등을 종합해 보면 본인 역시 정계복귀에 관심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당대표 외부 영입론이 불거지고 있는 당내 사정으로 볼 때 이 전 총재 복귀는 명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 총재의 정계복귀는 우리 한국 정치사로 볼 때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수요모임 등 소장파를 비롯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윤여준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장 등 과거 이 전 총재의 측근들에 대해서도 "이 전 총재와 함께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모임의 핵심인 모 의원도 "당내 일부에서 이 전 총재의 복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본인도 미련이나 의지가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지난 대선 패배 원인이었던 여러 문제들과 그 후 '차떼기' 등의 문제들이 아직 당내에서 극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특히 "이회창 개인의 정치인으로서의 입장만 내세워 정계복귀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고 역사적으로도 '퇴행 현상'이라는 것이 당내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외부 영입론이 이 전 총재 복귀에 명분을 주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소장파의 외부 영입론은 개혁, 그야말로 당의 본질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인데 거기에서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 명분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엉뚱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심지어 운동권 출신의 모 의원은 이 전 총재의 정치재개에 대해 "한여름 밤의 꿈이 부활하려는가"라는 말로 비난했다. 그는 "이는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행태"라며 "공공연한 유세 행보 등을 보면 본인도 의중이 있는 것 같은데 국민이 원할 때 등장하는 것은 몰라도 한 표라도 얻고자 후보자들이 다급해하는 지방선거 국면을 정치적 입지 강화로 활용하는 모습은 지도자로서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이 탄핵 등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 총재는 어떤 모습을 보였느냐"고 반문하면서 "현재 당세가 좋아지는 시기에 등장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나는 아직 한나라당 당원
이런 정계 복귀에 대해 이회창 전 총재는 "(자신이 대전을 방문한 것은) 정치활동 재개 차원이 아니라 과거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분들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신세를 갚기 위한 것"이라며 정치활동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회창 전 총재는 "(자신은) 아직 한나라당 당원인만큼 기왕이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바란다"며 한나라당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회창 전 총재는 전날 발생한 박근혜 대표의 피습사건과 관련해서는 현 정권의 기강해이를 강도 높게 질타하는 등 다른 정치인들의 발언수위보다 한층 높게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박 대표 피습사건은 충격적인 일로 현 정권이 출범한 뒤 국가기강이 해이해지면서 불법이 판을 치게 된 결과"라고 비난했다.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의 원인을 현 정권의 기강해이 탓으로 규정하고 나선 셈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지난달 12일 극동포럼 초청 세미나 특강을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당시 이 전 총재는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의 프롤레타리아 선동을 연상케 해 섬뜩할 정도"라고 비판하면서 "2007년 대선은 친북좌파세력과 비좌파세력의 대결이 될 것이며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중심이 돼 반드시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병술년 새해가 되면서 이 전 총재는 집을 개방하면서 현실 정치에 복귀할려는 의자를 살며시 내보였다. 그러면서 이 전 총재는 지난 4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현실정치에 나가는 일은 없겠지만, 완전히 국외자의 입장에서 ‘오불관언(吾不關焉; 전혀 상관하지 않는 태도)’하며 조용히 지내는 것도 무책임한 것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몸을 던져 일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 후 현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이 전총재의 행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 때와 매우 흡사하다는데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3년간 칩거하다 1995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 지원을 명목으로 정계에 복귀해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전 총재도 2002년 대선 패배 후 3년 넘게 정치권을 떠나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의 피습사건이후 5.31 지방선거 구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현 정권의 책임론'을 공개리에 거론하며 한나라당 당원임을 천명하고 나선 이회창 전 총재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게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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