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재도약 기회로 삼겠다
검찰이 16일 1000억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2100여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 등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이에 따라 변호인단과 검찰은 법정에서 비자금 조성 보고 및 지시, 비자금 횡령, 개인 빚 탕감 과정에서 회사 손실 초래 여부 등을 놓고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정 회장 사건을 이날 오후 형사합의25부(김동오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첫 공판은 이달 말께 열릴 예정이다. 설마하던 정 회장의 구속이 결정되자 현대·기아차 그룹은 즉각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19일 현대차 그룹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보유하고 있던 글로비스 주식 전량인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발표와 함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국민들께 머리를 숙였다. 또한 그룹의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해 신 인사시스템과 계열사별 독립경영을 하나다고 발표하면서 정 회장 공백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번에 마련된 신 인사시스템은 단순히 인사제도를 개편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룹의 체질을 변화시키겠다는 강도 높은 ‘내부혁신’의 신호탄이다. 정몽구 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리더십 공백이 주는 심각한 경영혼란을 겪으면서 체질 개선을 서두르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인재’의 평가와 육성 방식부터 수술한 뒤 중장기적으로 조직 전반을 아우르는 경영시스템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해나가겠다는 ‘그룹 발전방향’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 회장 주식 1조 사회 환원과 대국민 사과
현대차 비자금 조성 사건과 관련,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 부자가 1조원에 상당하는 사재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 이전갑 부회장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이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이 보유하고 있는 시가 1조원 상당의 글로비스 주식을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 부자가 환원하게 될 글로비스 주식규모는 정몽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1천 54만 6천주(28.1%)와 정의선 사장이 갖고 있는 1천 195만 4천주(31.9%) 등 글로비스 주식의 60%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부회장은 또 "현재 진행중인 현대차 관련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수사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한편, 이에 따른 책임도 감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현대차 그룹은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데 대해 깊이 사과하며 국민들의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 숙였다. 또한 현대차 그룹은 사외이사와 외부인사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사내에 설치해 경영과정에서의 비윤리적 요소를 차단하고 감사위원회 등의 기능도 강화 시키는 등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인사평가 시스템의 변화
현대․기아차가 마련한 신 인사시스템 개편방안은 ‘어떻게 하면 직원을 육성하고 성과 향상을 촉진할 것인가’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전 시스템은 업무성과를 토대로 평가를 내린 뒤 이를 승진 등 보상 차원에서 주로 활용해왔으나 앞으로는 직원 개개인의 잠재된 ‘역량’까지 평가하고 있다. 결과만이 아닌 직원 개인의 교육이나 보직이동 등 인재육성을 위한 기초 자료로 사용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차는 이번 인사 시스템에 대해 “단순히 역량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에 맞게 매년 자기개발 계획을 만들어 상사와의 협의를 통해 확정한 뒤 이를 토대로 사내외 교육을 받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신 인사시스템’은 우선 업무수행의 결과를 평가하는 성과평가와 업무수행 과정상 발휘되는 잠재능력을 평가하는 역량평가가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단순히 성과만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역량까지 구분해 제반 인사제도의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평가방식 역시 목표설정이나 중간점검 없이 매년 두 차례 평가시점에 임박해 한꺼번에 실시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조직 목표와 연계한 개개인의 목표설정, 목표 진척도에 대한 중간점검 , 평가를 위한 면담 진행, 계획대비 실적에 입각한 최종 평가 등의 5단계로 세분화 하기로 했다. 또 평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성과평가와 역량평가 시기를 상반기와 하반기로 분리해 따로 평가하기로 했다. 이밖에 5단계로 등급을 축소하기로 했다. 이전의 1~11등급까지 11단계로 세분화한 평가등급을 S(5%), A(30%), B(40%), C(20%), D(5%) 등 5단계로 축소했으며, 평가결과에 대한 통보도 ‘투명성 및 신뢰도’ 확보를 위해 본인 외에 상관인 평가자들에게도 통보하기로 했다.
◆강도 높은 조직 ‘내부혁신’
현대차 그룹은 그동안 성과평가를 토대로 한 신상필벌의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그룹으로 분류가 됐었다. 주요 간부급 및 임원들의 경우도 실적이나 능력에 따른 수시인사를 통해 늘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신 평가제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종전 성과중심의 엄격한 평가보다 직원 개개인의 능력(역량)을 높이는 데 더 중점을 두기로 했다. 매년 실시하는 정기평가 자체를 승진 등 단순히 인사를 위한 기초 ‘감시자료’가 아닌 ‘인재육성’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활용해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와 관련, 그룹 주변에서는 최근 검찰의 비자금 수사를 전후해 인사시스템에 대한 부작용이 생기면서 문제가 더 불거졌다는 점에 그룹은 주목하고 있다. 그룹 내부적으로도 이번 사태가 인사에 불만을 가진 내부제보자에 의해 촉발됐다는 점 등을 의식해 인사시스템 개편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차 그룹은 이번 인사제도 혁신을 시발로 앞으로 그룹 내 조직이나 의사결정 시스템 등 다각적인 내부혁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룹은 이미 비자금 사태를 계기로 경영지배구조 개선 및 계열사별로 자율과 독립을 추구하기로 했다. 독립적인 계열사를 통해 체제 구축 등을 통해 조직내부를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공언해놓은 상태다. 이와 관련,"별도의 비상대책기구나 대행체제는 없고 각사 대표들 책임 하에 업무를 정상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김동진 부회장이 총괄하고 위아·현대오토넷은 김평기, 현대모비스는 한규환, 로템은 정순원, 현대하이스코는 김원갑, 현대제철은 이용도 부회장이 책임경영하게 된다. 기아차의 경우 현재처럼 정의선 사장(해외사업 담당)과 조남홍 사장(국내사업 담당)의 투톱 체제로 운영된다. 현대차그룹의 이런 방침은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 집단경영체제로 전환하더라도 각자 분야가 다른 그룹의 특성상 의견 통일이 쉽지 않은 데다 주요 사안의 경우 책임과 권한을 갖고 의사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기획총괄본부 등을 중심으로 경영전반에 걸쳐 다양한 개혁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정몽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는 시점을 계기로 흐트러진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면서 사회와 호흡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 임직원에 옥중서신 전달
불법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2일 그룹 임직원들에게 "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힘을 합치자"는 내용의 옥중 편지를 보냈다. 정 회장은 면회온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구술했고 전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토록 했다. 그가 지난달 28일 법원의 영장실사심사를 거쳐 구속 수감된 이후 외부에 심경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회장은 우선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근의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충격과 안타까움, 실망이 매우 컸을 것"이라며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참담한 심정으로 여러분께 글을 보낸다"고 했다. 정 회장은 "무엇보다도 현대차 그룹의 일원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여러분의 명예와 자부심이 큰 상처를 입었으리라는 생각이 가장 힘들게 한다"며 "이 모두를 덕이 부족한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어 "멈춤과 고난의 시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중의 하나인 이곳에서 지나간 일들을 깊이 성찰해보고 지금까지의 경영을 되돌아보게 된다"며 "오로지 현대차 그룹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일한 나머지 각계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 회장은 그룹 및 협력업체 임직원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털어놓았다. 그는 "오늘의 우리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사업장에서 땀흘려 일하는 가족 여러분, 물설고 낯설은 해외 각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한 여러분이 만든 자랑"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땀흘려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불안해하고 있을 협력사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착잡하다"고 말했다. 특히 "평소 임직원들의 노고에 칭찬과 격려가 많이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임직원의 애로사항을 좀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 회장은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현대차 가족 여러분의 땀의 결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며 "우리의 창업정신이기도 한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을 가지고 품질과 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근본이 있어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할수록 근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의 현대차그룹이 처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함께 고민하고 힘을 합쳐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여론은 현대차 구속에 부정적
네티즌 3명 가운데 2명은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을 선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가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가운데 65% 이상이 정몽구 회장의 구속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포털 다음이 실시한 '정몽구 회장 처벌, 당신의 의견은?'에서는 '경제에 악영향, 선처해야'가 66.8%(1341명)를 차지한 반면 '비자금 근절기회, 강력 처벌해야'라는 응답은 30.9%(620명)에 불과했다. 네이버의 인터넷 설문조사에서도 '경제 파장 고려 선처를'이라고 답한 비중이 전체 응답자의 67.2%에 달했고, '법대로 엄중 처벌해야'라는 응답은 32.8%였다. 엠파스의 폴에서도 선처해야 한다는 의견과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의견비중이 각각 73%,27%로 선처를 바라는 의견이 월등히 많았다. 야후코리아의 조사에서는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고려해 선처해야 한다'는 응답이 65%나 됐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환율 하락과 유가 고공행진 등으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계 2위의 총수를 구속할 경우 현대차의 대외 신뢰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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