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의 보안 불감증이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하나은행 직원이 고객 정보를 이용해 스스로 고객의 양자로 입양되고 수 십억원을 인출한 사건을 놓고 고객의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서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2009년 사망한 당시 70대 고객 박모 씨(여) 의 유족들에 따르면, 당시 부산시 연산동의 하나은행 지점 간부급 직원이던 이모 씨는 박 씨의 입양신고서를 제출해 스스로 자산관리 고객인 박 씨의 양자가 됐다. 박 씨는 당시 뇌 손상으로 환각 증상을 보이는 ‘섬망증’을 앓고 있었으며, 이 씨가 양자로 등록된 뒤 6개월여 뒤 숨을 거뒀다.
이 씨는 박 씨가 입원한 사이에 박 씨의 자금을 지인의 계좌 앞으로 돌려놨고, 같은 지점에서 일하던 다른 과장도 여기에 가담해 이 계좌에서 두 차례 인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박 씨는 사망한 다음 날 오전 9시부터 4일간 인출에 가담한 과장과 대리 등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박 씨 명의의 계좌에서 14억여 원을 인출했다.
◆유족들 “입양·인출 모두 허위”…관리 부실 비판
슬픔에 잠겨 이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던 박 씨의 유족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강력히 의혹을 제기했다.
우선 유족들은 이 씨가 입양신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무단 사용·제공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들은 이 씨가 평소 박 씨의 금융거래를 담당하고 있었던 만큼, 박 씨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입양신고서 작성에 이용했고, 본인이 알 수 없는 등록기준지 등의 정보는 수영구청 담당 공무원이 가족관계 전산을 조회해 제공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유족들은 이 씨 등이 자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평소 박 씨가 사용하던 인감도장이 아닌 다른 한글 도장으로 예금을 인출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박 씨의 유족은 “평소 사용하던 인감도장이 아닌 한글 도장으로 이런 거액의 인출이 가능한 것이냐”며 하나은행 측의 관리 부실 행태를 비판했다. 유족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출금 전표에는 인감 도장과는 다른 한글 도장이 사용됐다.
박 씨의 유족들은 박 씨의 사망 두 달여 뒤 무단 입양신고서 작성과 구청의 개인 정보 무단 제공 등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년여 뒤 내려진 1심 선고에서 유족들은 패소했고, 항소와 상고심을 거쳤지만 모두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박 씨의 입양 의사 부존재를 증명하기 어렵고 입양신고서의 위조도 확인할 수 없다며 유족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한 수영구청 공무원의 정보 제공 행위도 위법의 소지가 없다고 판결했다.
특히 유족들은 입양신고서에 날인된 도장이 2008년 중순 전에 분실됐고 기명도 손 떨림 증상을 감안하면 고인의 필적이라기엔 너무 또렷하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법원은 박 씨가 2009년에도 해당 도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필적도 고인의 필적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족들은 모든 주장이 배척된 데에 대해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 씨의 유족 측은 “박 씨는 입양신고를 위한 위임장과 신청서를 작성한 적이 없고, 공무원의 정보 제공이 주민등록증만으로 수리된 것은 무효”라고 반발했지만 해당 자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진 셈이다.

◆하나은행 “일방적 주장일 뿐”…“법원 판단 끝난 일”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이미 3심까지 가서 법적인 판단이 끝난 사건”이라면서 유족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직원은 이미 수 년 전에 퇴사한 상황이라 누군지조차도 모르는 상황이며, 확실하지는 않지만 알아본 바로는 퇴사 전에도 따로 징계를 받거나 금융당국 등으로부터 문제가 제기된 부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하나은행의 직원관리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억울함을 표했다. 그는 “직원 관리 문제에 하나은행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면서 “직원이 누군가의 양자로 들어가는 것을 회사 측에서 알 도리도 없고 해당 직원이 회사에 보고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까지 회사가 관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의 주장도 일방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박 씨의 유족들은 지속적으로 평소 사용하던 인감도장이 아닌 한글도장을 사용해 거액을 인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하나은행 측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 관계자는 “그런 일은 시스템상 당연히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판 내용을 상세하기 알지는 못하지만 3심까지 법정 다툼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유족들이 그 부분을 주장하지 않았을리가 있겠느냐”면서 “이미 재판부가 인출에 사용된 도장이 박 씨가 사용하던 도장이 맞다고 인정한 것인데 법적 판단이 수 차례 내려졌음에도 유족들이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또한 금융권과 고객 사이의 해묵은 논쟁인 보안 불안에 대해서도 걱정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고객들 입장에서 내 정보를 직원이 이용해 빼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전자 금융을 포함한 보안 문제가 불거질 때 거론되는 은행들 명단 어디에도 하나은행은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며 “가장 보안 관련 사고가 없는 곳이 바로 하나은행”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빛스캔이 발표한 지난해 연말부터 지난 1월까지 은행별 유출 통계에 따르면 하나은행(165건·7%)은 외환은행(86건·3%)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유출률을 기록햇다. 1위는 농협으로 626건·26%를 기록했고, 2위는 국민은행으로 538건·22%였다.
그는 “이미 해당 직원이 퇴사했을 뿐 아니라 법적인 판단이 수 차례 내려졌고 금융당국의 문제 제기도 없었던 사안인 만큼 하나은행이 자꾸 이 문제에 거론되는 것은 이상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거나 특별히 대응할 부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