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자극적으로만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너무 자극적으로만 가고 있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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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나라를 그야말로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치권의 모든 이슈나 일정은 故 성완종 전 회장의 초대형 부패스캔들 폭로에 따른 진실규명에 맞춰져 있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성완종 정국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비리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고, 당사자들은 진실인지 어떤지 아직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날아오는 돌들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겠냐’는 옛말이 있듯, 진실 유무를 떠나서 불미스러운 일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들은 씁쓸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대하는 정치권이나 언론의 모습이 너무 자극적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관련 당사자들을 상대로 성역 없이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수사가 진행되기에 앞서 정치권과 언론이 너무 과도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정치권의 경우 故 성완종 전 회장이 숨지고 난 직후 국회 대정부질문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 국민에게 TV로 생중계되는 대정부질문에서 이완구 국무총리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범죄자 이미지가 덧씌워져 버리고 말았다. 그가 만일 3000만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후로 어떻게 국무총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사실 성완종 전 회장이 이완구 총리만을 죽이자고 이렇게까지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실제로, 대정부질문이 시작되기 전 성완종 리스트의 포커스는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 등에게 맞춰져 있었다. 대정부질문을 통해 보여 지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성완종 리스트의 포커스가 온통 이완구 총리에게 쏠려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야당 의원들의 공격이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여당 의원들의 공격 또한 야당 못지않게 뼈아프고 날카로웠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행정부를 상대로 한 입법부의 활동에 여야가 어디 있냐는 원론적인 얘기는 여기서 할 필요도 없겠다.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당신과 나는 다르다’는 선 긋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완구 총리는 전 국민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 TV 속에서 ‘나 잘 싸운다’며 더 강력한 화력을 쏟아내는 야당 의원들에게 폭격을 당하고, ‘나는 당신과 다르다’며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포화를 쏘아대는 여당 의원들에게까지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는 꼴이다. 이완구 총리를 두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부정부패 비리를 파헤치더라도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눈이 멀어 대중을 선동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다.

언론 또한 너무 달아올라 있는 듯하다. 몇날 며칠을 실시간 생중계 하듯 이완구 총리가 해명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증언을 찾아내 반박하고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 A매체는 비타500 박스에 돈을 담아 건넸다고 하고, B매체는 봉투에 담아 돈을 건넸다고 한다. 5만원권으로 600장이어야 3000만원인데, 5만원권 600장을 담을 수 있는 봉투라니 실소가 나오기까지 했다. 보도 내용이나 관련 증언들도 뒤죽박죽이고, 아무 곳이나 쑤셔서 소리만 나오면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다 담아 기사로 내보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뿐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을 인터뷰 해놓고도 한 매체는 박스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었다는 증언을 보도했고, 또 다른 매체는 박스를 트렁크에 실었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똑같은 사람을 인터뷰 해놓고 이렇게 다른 기사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들이 마음이 바쁜 이유 일 것이다. 크로스체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취재원이 어떤 감정으로 어떤 상태에서 증언을 하는지 따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일단 무슨 말만이라도 나오면 기사로 잘 팔린다 생각하니 지면에 싣고 보는 것 아니겠는가.

마치 세월호 참사 당시, 또는 각종 재난 상황에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피해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이른바 ‘특종’과 ‘단독’만을 노리고 뛰어다니는 언론들의 그때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일 아니겠는가.

정권의 핵심 실세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부정한 돈을 받고 잘못을 저질렀다면 응당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 용도로 이용되고, 언론의 상업적 용도로 활용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국민은 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정치권과 언론이 합목적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런 정권의 초대형 부패스캔들 이슈만을 반 강압적으로 접하게 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다시 균형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부패스캔들 원 포인트에만 집중돼 있을 때가 아니다. 민생경제 살리기 문제에도 다시 관심을 가져야 하고, 공무원연금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논의를 해야 하고,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온 4.29재보궐선거에도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다시 차분함과 냉정을 되찾고 하나씩 꼼꼼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박강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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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015-04-17 13:21:10
그동안 유보된채 유린당해온 공무원의 노동기본 3권 보장도 논의를 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