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장업 외길인생, 고유서체 개발
"33여년간 오로지 인장업으로 인생을 바쳐온 것이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인정받아 크나큰
영광이다."
지난해 노동부와 산업인력관리공단으로부터 인장공예부문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인장명장
에 선정된 류철규명장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외길인생으로 장인정신을 키워온 것이 새삼 보
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류철규 명장이 명장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인고의 세월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장남으로 태어
나 한 가족을 이끌어야만 했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인장공예의 외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
로지 손재주 하나만을 믿고 시작했던 인장업은 류명장의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류명장이 인장업에 뛰어든 것은 17세때이다. 부친의 타계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
는 선택이었다. 무작정 고향을 떠나 대전에서 스승인 이성석씨를 만나 처음 인장업소에 취
직을 했지만 말이 취직이지 숙식해결과 함께 기술을 익힌다는 조건으로 월급은 고사하고 3
년동안 도장을 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만 조각도를 갈고 잔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에 지나
지 않았다.
그러나 인장업에 뛰어든 이상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류명장은 신념을 버리지 않고 틈틈히 한
문공부와 함께 낮에 눈여겨 봐둔 스승의 손놀림을 되세기며 연습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러서야 스승인 이석성씨가 쓸만한 놈이라며 도장을 파볼 것을 권해 첫 작품
을 완성해 인정을 받고 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인장업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고 류명장은
말한다.
이후 첫 번째 스승과 8년을 보내고 두 번째 스승으로 당시 인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박인규
씨에게 2년동안 기술을 익히고 지난 80년도쯤 지금의 자리인 충남도청 앞에 성호사라는 간
판을 내걸게 되었다.
"인장은 90년대 초 만해도 무슨 서류하나를 작성하더라도 날인이 반듯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장업소는 행정기관 근처에 줄지어 있었고 사람들 또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장대신 손도장이나 사인으로 대신되면서 인장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한때 인장업 회원수만 해도 700여명에 달했던 대전 .충남지부는 현재 100여명의 50대 이상
의 회원들로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고 류명장은 말한다.
인장업이 비록 문화적인 발달로 인해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나 동양사회에서는 아직 필요한
예술적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예 배우려 하지 않는 것에 아
쉬움이 남는다며 류명장은 인장업을 좀더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서체 개발
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류명장은 도장하나를 새기더라고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류명장은 고급인장을 새
길때면 우선 마음을 정화시키고 깨끗한 마음과 정성으로 평온한 이른 아침에 인장을 새긴다
고 한다. 류명장이 하루에 새기는 도장은 두 세 개에 불과하다. "하나의 인장을 새겨도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상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장은 새기는 사람의 혼이 담겨있는 것이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류명장의 인장철
학이 있기 때문이다.
각종 분야에 종사하는 명장들이 다 그렇듯이 명장이 되기까지는 많은 고생과 역경속에도 굴
하지 않고 장인정신을 발휘해야만 명장으로 인정받듯이 모든 것은 쉽지가 않다.
다만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아낌없는 가르침으로 인재를 길러내려는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
한 것처럼 류명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던 스승이자 지금은 호형호제
하면서 지내는 이석성씨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특히 스승의 가르
침 못지 않았던 아내에게 명장의 자격을 주고 싶다고 류명장은 말한다.
무엇보다도 명장이 되기까지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 세상의 모든 명장들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명장으로 선정됐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아내에게 진정한 명장으로서 그예
우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류명장은 인장뿐만아니라 서예나 전각분야에도 남다른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한국서예협회 충남 전각초대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서 인장은 물론 서예
나 전각에 있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달인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비록 서구사회의 문화개방에 따라 인장이 아닌 사인이 일반화 되어가고는 있지만 인장업 분
야에서 최고의 대우인 명장으로서 자식들에게는 남겨줄 재산은 없지만 아버지가 명장이었다
는 명예는 남겨줄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류명장은 말한다.
한편 류명장은 요즘 인장분야의 계승을 위해 후배양성은 물론 고유서체개발과 함께 기능대
회 인장부문 선수 지도자 및 심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경범기자 mkb@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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