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고집을 버린 용기를 기대한다
아베, 고집을 버린 용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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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오는 29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그가 연설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패전국인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승전국인 미국 의회 연설에 나선다는 점에서 당연한 관심사일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에 직접적 피해국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아베 총리가 이번 연설을 계기로 역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 자세를 취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회의론이 앞선다.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고, 아베 내각 각료들 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등 여전히 ‘사과’와 ‘반성’의 길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지난 22일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의 연설에서 2차 대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는 했지만, 사과의 표현은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이날 연설은 오는 8월 예정돼 있는 전후 70년 담화 내용의 가늠좌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후 70년 담화 내용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가능케 하는 일이었다.

이에 더해 같은 날 일본 초당파 의원들로 구성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100여명은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 참배하기까지 했다. 또, 23일에도 아베 내각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후 70년이 지났지만, 일본만은 아직도 2차 세계대전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NYT)는 사설을 통해 “아베 총리가 모호한 수식어로 과거사 사과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희석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며 “일본이 과거에 대한 비판을 계속 거부한다면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동아시아 문제 칼럼니스트인 에몬 핑클톤 역시 포브스에 실은 칼럼을 통해 “아베 총리의 주요 의제는 ‘사과 안하기’”라며 “이는 일제의 악행으로 고통을 겪은 아시아와 미국, 서유럽, 러시아의 수백만 명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전직 총리들까지도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 식민지배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문구를 포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식민지 지배, 침략이라는 말은 감추어지면 큰 문제가 된다”며 “동아시아에 긴장감을 줄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냈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속에 있으니까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을 촉구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안팎으로부터 역사 문제에 대한 비판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베 총리가 고집스럽게 일본이 처해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우리와 한 목소리로 일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 오던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아베 총리가 중-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이 역사 문제에 대한 명분보다 AIIB 실익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한국이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물론 외교라는 것은 자국의 실익을 중심으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중일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아베 총리에게 역사를 직시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일본이 오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을 용인해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모든 것은 아베 총리에게 달렸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풀어가고자 한다면,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없다. 미 의회 연설부터 전후 70년 담화에까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담아야 할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제 그만 쇠심줄 고집을 꺾을 때가 됐다. 그것만이 일본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박강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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