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으로 남성들 제쳤다
5·31지방선거에서는 서울, 대구, 인천 등 대도시에서 최초의 여성 구청장이 탄생해 정치권에 불고 있는 ‘여풍(女風)’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국내 정계에 보다 많은 수의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는 가운데 수요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3명의 여성구청장이 대도시에서 탄생했다. 과거 여성 구청장은 중소도시에서만 선출되어 왔다. 바로 서울 송파구청장 선거에서 정무2차관 출신의 한나라당 김영순(57) 후보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이유택 현 구청장의 추격을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됐고, 대구에서 가장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중구에서 당선된 윤순영 중구청장과 인천의 박승숙 중구청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남성들이 득세하는 정치권에 여성들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서울 김영순 송파구청장
서울시 사상 첫 여성 구청장이 된 김영순(57.한나라당) 당선자는 개표 초반부터 압도적인 표 차로 앞서 나가자 "유권자들에게 내세운 공약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서울시에서 여성이 1급(관리관)까지 오른 경우는 있었으나 구청의 수장(首長)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김 당선자는 앞으로 4년 동안 구청 공무원이 1460여 명, 연간 예산이 2600억원이나 되는 큰 조직을 이끌게 된다. 인구는 60만 명으로 노원구에 이어 서울에서 둘째로 많다. 김 당선자는 경선 없이 전략 공천을 받아 일찌감치 승리가 예견됐었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후보가 우위를 보여 준 지역적 특성 때문에 '공천=당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총리급 구청장론'을 내세웠다. 제2롯데월드 건립, 거여.마천 뉴타운 개발, 문정.장지지구 개발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을 해결하려면 중앙 정치무대에 많이 알려진, 중량급 인사인 자신이 적임자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먹혀들면서 현역 구청장 등 네 명의 경쟁자를 여유 있게 물리쳤다. 가락농수산물시장 이전과 관련해 김 당선자는 "악취와 교통난 때문에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전만이 해결책은 아니다"면서 "구민의 여론을 수렴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한 김 당선자는 1988년 통일민주당 여성국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여성단체에서의 활동을 눈여겨본 김영삼 당시 총재의 눈에 띈 것이다. 그 뒤 신한국당 중앙연수원 부원장.부대변인을 지냈고 김영삼 대통령 후보 시절 여성특보를 거쳐 여성부의 전신인 정무제2장관실 차관이 됐다. 남성 못지않은 폭넓은 인간관계 덕분에 '마당발'로 통하며 당 안팎에서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변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하고도 남을 인물"이라고 말한다. 김 당선자는 "송파에는 올림픽공원과 롯데월드 등 훌륭한 스포츠시설과 위락시설이 있으며 백제 왕조의 유물 등 문화 환경도 조성돼 있다"며 "강남.서초와 차별화된 송파를 만들어 가겠다"고 구청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대구 윤순영 중구청장
대구의 첫 여성 구청장으로 뽑힌 윤순영(53.사진) 중구청장 당선자는 "부드러운 행정, 강한 추진력으로 살기 좋은 중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대구 지역의 화제가 됐다. 출마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많았다. 비록 장소가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였지만 당선이 될 확률은 반반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구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이 중구인데 여성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한나라당 대구시당은 중구청장에 여성 후보를 내기로 하고 현직 구청장 대신 윤 후보를 공천했다. 윤 당선자는 선거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문화 운동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문화 부분에 맞혀 활동을 하다 보니 지역 주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명도에서 밀린 윤 당선자는 우선 중구의 골목을 누비며 얼굴 알리기를 첫 번째 선거운동으로 삼았다. 발이 부르트고 목이 쉬었지만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강행군했다. 대봉동과 삼덕동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재건축, 재개발 공약은 거기에서 만들어졌다. 윤 당선자는 또 “여성으로서의 장점을 십분 살린 부드러운 행정력에다 강한 추진력까지 더해 구민의 이익과 행복을 최우선에 두는 투명한 지방 자치 실현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구청장이 될 것”이라면서 “차별화된 중구의 색깔 만들기와 문화중구 인프라 구축 등 공약을 차근차근 이행해 역사와 전통의 중구, 그 옛 명성을 꼭 되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천 박승숙 중구청장
인천지역에서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여성 단체장이 탄생했다. 바로 박승숙 인천중구청장이다. 박 중구청장은 주부로써만의 삶을 살다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정계에 입문해 인천 정계에서 여성의 위치를 찾기 위해 수십년 동안 생동감 있는 활동을 해 왔다. 특히 한나라당이 집권여당일 무렵 정계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인천시당에서 16년 동안 여성위원장을 맡아왔고 지난 1997년부터는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시의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수십 년간 지역 정가와 3선 광역의원으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박 중구청장은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인천지역의 중심도시에서 구도심 슬럼화의 대표적인 곳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구의 재개발과 도시 인프라 재배치 사업을 추진해 중구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바람을 일으켰다. 박 당선자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10여 곳의 재개발 사업을 비롯해 현재 추진 중에 있는 구도심 사업을 조속히 완성하는 한편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 회복과 교육환경 개선 등의 현안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또 “최초의 근대공원인 만국공원을 복원하고 인천역~자유공원~월미도를 잇는 관광벨트 조성사업과 함께 이 구간의 노면전차 건설사업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 중구청장은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쌓은 다양한 경험과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섬세함을 살려 "살림 행정"을 실현하겠다”고 기초단체장으로서의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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