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이 한화자산운용의 채권거래 관련 불법행위 처벌에 있어 애초 정해진 제재 수위보다 한단계 낮은 징계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금융당국이 불법거래에 대한 제재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일부에선 한화자산운용의 중국 진출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 한화그룹 쪽을 배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금감원은 지난달 23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불법매매 행위 등이 적발된 한화·케이비(KB)·미래에셋·교보악사·대신 등 자산운용사 6곳에 대해 기관주의 및 과태료 처분을 의결했다.
그런데 이번 제재심 결과에서 한화자산운용에 대한 기관 제재 수위가 애초 제재심에 올린 안보다 한단계 낮춰지는 일이 발생했다. 자산운용사에 대한 현장 검사를 담당한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은 한화자산운용이 검사 대상 자산운용사 가운데 유일하게 '채권 파킹' 거래를 통해 자사 공모펀드에 손실을 끼친 사실을 밝혀냈다.
앞서 금감원은 맥쿼리 투자신탁운용이 채권파킹 거래로 계열 보험사 등에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힌 행위에 있어 3개월 일부 영업정지와 과태료 1억원의 중징계를 내렸었다. 이 때 금감원 측은 “자체 감사를 소홀히 하거나 개선 노력이 미흡한 회사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전한 바 있다.
채권파킹은 채권을 매수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가 해당 채권을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에 바로 담지 않고 채권 매수를 요청한 증권사나 중개인에게 잠시 맡긴 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제하는 거래방식이다. 금리변동에 따라 추가 수익 및 손실이 발생하며 불법거래 행위에 해당한다.
채권파킹이 불법인 가장 큰 이유는 ‘사재기’라고 할 수 있다. 채권시장엔 불법 사재기를 막기 위해 ‘채권매수한도규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중간단계 중개인을 거치며 이 제도를 피해가는 것이다. 때문에 채권 사재기를 통해 시가조작이 이루어질 수 있고, 도박성 펀드 운용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2013년 4~11월 자사가 운용하는 국민연금 펀드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케이아이디비(KIDB)채권중개를 통해 2조9000억원 규모의 채권파킹 거래를 했고, 그 결과 국민연금 펀드에는 이익이 났지만 일반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자금을 모은 자사의 공모펀드는 10억1000만원 가량의 손실을 입힌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에 따른 징계 수준이다. 애초 자산운용검사국은 한화자산운용에 대해 기관경고와 과태료 처분을 해야 한다는 징계양정안을 제재심에 올렸다. 손실 규모가 '기관경고' 징계에 해당하는 10억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재심은 이보다 제재 수위가 낮은 '기관주의'와 과태료 조처를 취하기로 의결했다.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업계에서는 한화자산운용에 대한 징계 수위가 제재심에서 완화된 배경을 두고 한화그룹의 금융업 중국 진출과 관련이 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중국에 합작 운용사 설립을 위해 지난해 9월 하이타이집단(해태그룹), 베이팡국제집단(북방국제그룹) 등 중국 국유기업과 합작 계약을 체결한 뒤 중국 금융당국에 인허가 서류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한화자산운용은 2013년에 펀드운용 부실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기관경고 처분까지 더해지면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합작사 설립 승인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한화 쪽이 적극적인 소명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이 회사의 한 간부는 "그룹 쪽에서는 혹시라도 그룹 차원에서 추진해온 해외운용사 설립이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말했다.
금감원 측은 제재 수위가 완화된 것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확정된 것으로, '봐주기' 제재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한화자산운용이 공모펀드에 끼친 손실 규모가 기관경고 처분을 내릴 기준 금액을 약간 넘긴 데 불과한데다, 채권 매매를 투명화할 시스템을 마련했고 대표이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재발 방지 의지를 표명한 점 등을 제재심의위원들이 수용했다"고 말했다. [시사포커스 / 박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