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이 실종된 한국 축구
중원이 실종된 한국 축구
  • 김윤재
  • 승인 2006.06.03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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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진과 1.5진 너무 현격한 차이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글래스코에 도착한 한국 축구대표팀이 2일 노르웨이 오슬로의 울레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겼다. 박지성·김남일 등 주전들이 대거 제외된 1.5군인 데다 시차적응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원정전 무승부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원정경기에 대비한 현지적응과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제기됐다. 가상의 스위스전 이었던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서 우리 대표팀의 플레이는 무기력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스타일인 빠른 패싱과 압박으로 경기를 지배하겠다던 각오와는 달리 90분 내내 스피드와 힘에서 모두 밀렸다. 팀의 주축 미드필더 3인방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이날 평가전은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외신들도 일제히 “한국에는 실망스러운 경기”라며 낙제점을 안겼다. 선수들 역시 경기 내용에 대해 냉정한 자체진단을 내렸다. 먼저 선수들은 "몸이 무거웠다"며 몸 상태를 독일월드컵 첫 경기인 토고전에 맞추고 있어 아직 컨디션을 100% 끌어올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자체진단처럼, 노르웨이전에서 선수들은 한 박자 빠른 움직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또 선발 라인업이 크게 바뀌면서 손발이 맞지 않아 약속된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는 점도 꼽았다. ◆단조로운 공격의 문제점 공격수의 임무는 골을 넣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비수 사이의 빈 공간을 파고드는 창조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 공격수들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면서 수비수를 교란해야 찬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노르웨이전에서는 이런 플레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윙 포워드로 나선 설기현과 정경호가 이영표, 송종국과 함께 사이드를 돌파해 상대 수비를 깨야 하는데 1대1 돌파 능력이 너무나 떨어졌다. 돌파 능력이 없다보니 매번 상대 수비수와 경합을 벌이다가 공을 뺏기는 등 공격력이 낙제점에 가까웠다. 이들은 앞뒤로만 움직였을 뿐 침투패스를 받을 움직임은 물론 이렇다할 돌파도 없었다. 황선홍 SBS 해설위원(전남 코치)은 “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포지션은 지켜야 하지만 공격할 때는 다양하게 변화를 줘야 상대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족할 수 없는 수비 최진철과 김진규가 중앙에 선 한국의 포백 수비진은 전반을 실점 없이 막아냈다. 또 후반 막판 스리백으로 전환되고 최진철 대신 김영철이 투입된 뒤에도 골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아직 4백 수비라인이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수비수들이 성급하게 공을 뺏으려 달려들다 불필요한 파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태클을 시도할 땐 공과 사람 중 하나는 반드시 차단해야 함에도 둘다 놓치는 장면이 많이 보였다. 본선에서 만나는 팀들을 상대하려면 4백들이 탄탄한 벽을 쌓아야 한다. 이 시점이면 그런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 공격진으로 투입되는 패스도 부정확한 게 많았다. 패스를 하기 전 이미 방향과 거리를 예측해야 하는데 한 박자 늦었고, 공격수나 미드필더들의 움직임과 공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김진규는 전반 5분 터치라인 부근에서 성급하게 태클하다 뚫려 크로스를 허용했다. 최진철은 후반 9분 패스할 곳을 찾다 끊겨 찬스를 내줬다. 미드필더들의 커버 플레이가 부족해 수비수 사이로 침투하는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장면도 자주 눈에 띄었다. 욘 카레브 등 노르웨이 공격수의 마무리가 좋지 않아 다행이지 티에리 앙리(프랑스)·에마뉘엘 아데바요르(토고) 같은 공격수였다면 바로 골로 연결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오른쪽 윙백의 고민 이번 노르웨이전에 선발출전한 죄,우 윙백은 지난 한일월드컵과 같은 이영표, 송종국 이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죄영표, 우종국 라인이 형성됐다. 하지만 송종국은 그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송종국이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면서 2006년 독일월드컵을 불과 일주일 남겨놓은 대표팀의 오른쪽 수비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송종국은 전반 45분만을 출전한 뒤 후반 들어 김동진과 교체돼 나갔고, 결국 대표팀은 지난해 아시아 최종예선처럼 왼쪽에 김동진이 포진하고 오른쪽에 이영표가 뛰는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송종국은 우선 체력적으로 100%에 이르지 못했다. 또 오버래핑과 수비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했으며, 측면 돌파를 시도하다 상대에게 한 차례 위기를 맞은 장면도 있었다. 지난해 8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김동진이 경고 2회로 퇴장, 한국의 1승 제물인 토고전에 나설 수 없다. 그렇다면 이영표가 왼쪽에 서고, 조원희와 송종국 중 하나를 기용해야 된다. 좌우 풀백들이 넓은 활동반격을 갖고 있는 토고 공격수 엠마뉴엘 아데바요르의 측면 돌파를 봉쇄하고,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것은 토고전 승리의 열쇠 중 하나다. 하지만 조원희는 측면 돌파시 수비 허점을 많이 보인다는 분석이고, 송종국은 아직도 90분 풀타임을 소화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10일 남은 토고전까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압박플레이의 실종 이번 노르웨이전은 한마디로 중원장악과 압박의 실패였다. 전체적으로 매일 나오는 얘기지만 패스 미스가 너무 많아 경기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다. 특히 미드필드 장악력이 떨어지다 보니 힘든 상황이 자주 연출됐고, 공수의 촘촘한 연결고리 역할이 충실하지 못했다. 또한 미드필드를 지배하지 못하니 거친 플레이가 나왔고, 패스의 질도 덩달아 떨어진 것은 곱씹어봐야 한다. '미드필드 삼총사' 박지성 이을용 김남일의 공백이 크게 느껴진 경기였다. 이들이 컨디션 난조로 경기에 불참하면서 미드필드진이 급격하게 약화됐고 공수 전환에서 전혀 팀의 색깔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가 4강 신화를 썼을 때 체력을 앞세워 공격을 하고 수비할 때도 공격 일선부터 강하게 압박 수비를 펼쳐서 기습 공격 기회가 잦았고 결국 득점 기회를 많이 만들었지만 오늘 경기는 완전히 압박 축구가 실종됐다. 그러다보니 이렇다 할 슈팅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다. 오늘 경기에서는 공격부터 미드필드진까지 압박 수비를 펼치면서 상대 공격을 걸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최종 수비에서 공을 뺏어야 하는 결과가 초래됐다. 최종 수비가 공을 뺏다보면 패스 미스가 날 경우 공격으로 전환하기가 힘든 것은 자명하다. 또한 포백 수비의 미숙한 커버 플레이는 상대에게 완전한 슈팅 기회를 너무나 많이 만들어줬다. ◆높아지는 핵심선수 의존도 중원 장악의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김두현·김상식·백지훈의 미드필더진은 박지성·김남일·이을용 조합에 비해 확실히 무게가 떨어졌다. 당연히 경기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내줬다.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가나와의 경기에 박지성·김남일 등이 가세하면 정확한 패스 연결이 나오면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가벼운 부상중인 이들의 공백을 메울 백업선수들의 기량차가 크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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