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도입 1년, 기술 믿고 대출…취지는 어디로?
기술금융 도입 1년, 기술 믿고 대출…취지는 어디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CB·은행권 모두 ‘우왕좌왕’…잇속 챙기기로 끝나나
▲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향후 성장동력이 높은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한 기술금융이 오는 6월 도입 1년을 맞는 가운데, 기술력을 평가하는 TCB와 대출을 해주는 은행권에서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정황들이 잇따라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정부 당국이 강력히 추진해 만든 창조금융사업 일환의 기술금융이 오는 6월로 도입 1년째를 맞는다. 기술금융 대출을 받기 위해 평가를 의뢰한 기업들은 1년 새 대폭 늘었지만 검수에 투입되는 인력이 부족하고 이 마저도 전문성이 의심되는 경우가 많아 깜깜이 평가 문제가 불거졌다.

기술금융이란 심사 대상이 되는 기업이 미래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현재 취약한 재무상태에 머물러 있더라도 기술을 사업화하는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시중 은행이 공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술만 보고 담보없이 대출해줌으로써 기술력 있는 기업에 성장 발판을 마련해 주겠다는 의도다.

이때 은행은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이 기업 심사 후 작성한 평가서를 토대로 기술금융 대출을 해주는데 이 과정에서 검수인력 한 명이 수백건에 이르는 기술평가를 담당하고, 심지어 전문가가 아닌 인력이 검수에 투입된 경우도 발견돼 향후 은행 건전성 문제를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 전문인력 1명당 평가 건수 수백건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TCB 업무가 시작된 지난해 7월 기술금융 자금 조달액은 1922억원이었고, 3개월 만인 10월에는 3조5900억원으로 19배가 뛰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속도대로라면 올해 기술금융 대출규모는 15조5000억원, 내년에는 25조20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늘고 있는 기술금융 수요와 대출금액에 비해 검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엉터리 기술서가 남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초 국내에서 운영됐던 TCB는 기술보증기금과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평가정보 등 3곳이다. 기술보증기금의 경우 지난해 6월 20일 TCB로 지정됐고, 6개월 만인 12월 평가 건수는 총 4360건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전문 인력은 143명에 불과했다. KED는 지난해 6월 25일 TCB로 지정된 이후 12월까지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한 건수는 5079건에 달했지만 전문인력은 17명에 그쳤다. 나이스평가정보 역시 지난해 7월 15일 TCB로 정해진 후 12월 평가 건수가 4007건이나 됐지만 검수인력은 단 25명이었다.

이들 세 기관의 전문인력 1명이 6개월 동안 평균적으로 처리한 평가 건수는 기술보증기금이 30건, 한국기업데이터가 300건, 나이스평가정보가 161건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실 평가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TCB가 기술평가를 해준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실제 대출을 받을 경우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긴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TCB 측이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평가 기업의 기술을 고의적으로 과대 평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이미 TCB가 건넨 평가 보고서를 보고 대출을 승인한 은행권은 건전성 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기술력이 괜찮다는 평가서를 보고 대출을 승인했는데, 당초 기술력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의 건전성 관리가 생명인데 신뢰할 수 없는 보고서를 토대로 대출여부나 대출조건을 결정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은행권, ‘무늬만 기술금융 대출’ 대부분

당초 금융위는 기술금융을 장려하기 위해 은행을 대상으로 혁신성평가제를 도입하면서 100점 만점에 40점을 기술금융 부분으로 정하고 또 이 40점 중 30점을 양적평가 성격의 항목으로 지정했다. 결과적으로 금융위는 은행들이 기업의 기술력에 초점을 둔 신규 대출보다는 기존 우량 중소기업대출을 기술금융대출로 바꾸는 등 양에만 초점을 맞춘 편법을 쓰는 것을 부추긴 셈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현재 은행들이 받는 혁신성평가 총 100점 중 ▲공급 규모 16점 ▲대상 기업 숫자(기업지원) 8점 ▲담보 없이 집행된 신용지원 규모 6점 ▲전담인력 등 인프라구축(지원 역량)에 10점이 배점돼 있다. 즉 전체 혁신성평가 100점(기술금융은 40점) 중 30점이 양적평가다.

은행 입장에서는 원래 고객이었던 우량 중소기업들에게 기술금융 명목 대출을 해주게 되면 건전성 우려를 줄일 수 있고, 손쉽게 대출 목록을 늘림으로써 혁신성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하지만 당초 기술금융이 도입된 취지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7월부터 11월 사이 기술금융 명목으로 총 5조8278억원을 대출해줬지만, 이 중 신규대출 규모는 1조5751억원으로 전체 기술금융 대출의 27%에 머물렀다. 이외에는 기존 대출을 기술금융으로 둔갑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기술금융 대출이 제도 도입취지에 맞지 않는 경우라도 이뤄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기술력 평가 기준이 애매한 기업이라도 TCB평가서만 있으면 기술금융대출을 해준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토대로 할 때 현재 기술금융의 운영방식 대로라면 향후 TCB-은행권 간 유착관계도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TCB는 심사 대상 기업의 기술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그 기업에서 실제 대출이 이뤄지면 높은 수수료를 받는다. 또 은행은 양에 초점을 맞춰 많은 기업에만 기술금융 명목으로 대출을 해주면 금융위의 혁신성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당초 금융당국이 주장했던 기업의 ‘기술력’은 평가 잣대에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