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변수로 거론되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어소시에이츠.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한 뒤 그 목적을 ‘경영참가’라고 밝히고 양사간 합병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 사들이는 등 이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삼성물산이 또 다시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라는 식의 외국계 헤지펀드 부추김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리의 목소리가 높다.
◆ 시세차익 ‘먹튀’ 포석 두나?
지난 4일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 어소시에이츠는 삼성물산 지분을 7.12%(1112만 5927주) 가지고 있다고 밝히면서 ‘경영참가’를 목적으로 장내 매수한 것 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엘리엇은 상장기업의 보통주 5% 이상을 보유하거나 기존 보유자의 지분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5일 이내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에 보고하도록 한 제도인 ‘5%룰’에 따라 주식대량보유상황보고서를 신고했는데 이때, 일부 공개한 주당 취득단가는 6만3560원으로 전체 주식보유량을 곱해보면 총 7071억원 어치를 사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발표 후 9일 만에 갑자기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한 사실을 밝힌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한 것일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고,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양사 합병에 딴지를 걸었다.
그러나 금감원에 따르면 엘리엇은 애초 삼성물산 지분 4.95%를 가지고 있다가 양사 합병이 결의된 후인 지난 3일 지분 2.17%를 추가로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합병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는 석연찮은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당초 아슬아슬하게 5% 수준 직전에 걸쳐 지분 4.95%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5% 룰’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늘렸다고 발표한지 이틀 만에 챙긴 시세차익이 무려 1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먹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4일 이후 삼성물산의 주가가 20% 올라 엘리엇의 보유지분에 따른 시세차익이 1억2400만달러(한화 약 1377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 삼성물산, 과거에도 헤지펀드 피해 전적
삼성물산은 11년 전에도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튀’에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경영을 분쟁을 조장한 뒤 주가가 오르자 시세 차익을 챙기고 떠난 일이다.
앞서 헤르메스는 ‘투자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2004년 3월 삼성물산 주식 5%를 사들인 후 우선주 소각 등을 요구하며 경영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당시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20%를 넘지 않았지만 호주 플래티넘 등 다른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이 가세하면서 1년만인 2005년 46%까지 늘었다.
그러자 삼성그룹은 최대주주인 삼성SDI를 통해 지분 확보에 나서는 등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같이 외국계 헤지펀드-삼성 간 신경전은 치열해질 조짐을 보이다가 헤르메스가 2004년 12월3일 돌연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총 380억원의 차익을 거두고 떠나면서 허무하게 끝이 났다. 업계는 이 일을 ‘먹튀 펀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 꼼수는 꼼수일 뿐…흔들림 없는 합병
‘엘리엇’이라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실제 합병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와 관계인이 가진 지분의 총계는 13.99%다. 시장은 여기에 우호 지분을 합칠 경우 19% 정도가 양사 합병에 ‘찬성’하는 쪽이 가진 지분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엘리엇이 ‘합병반대’를 끝까지 고수하며 반대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추가 지분 확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증권가는 엘리엇이 지분을 추가 확보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에 엘리엇이 실제로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했다기 보단 단지 시세차익만을 노리고 양사 합병에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물산 주가는 양사 합병 발표이후 계속 오름세다. 지난달 26일 합병발표 전 거래일은인 22일 기준 종가는 5만5300원이었는데, 26일 6만3500원으로 뛰었고 지난 4일 종가 기준 6만9500원으로 7만원 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로써 애초 엘리엇이 합병반대를 주장하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든 근거는 힘을 잃고 있다.
한편, 지난달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기준주가에 따라 산출된 합병비율 1:0.35로 제일모직에 삼성물산이 합병되는 방식이다. 즉 삼성물산 주주들이 주식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를 받게 된다.
엘리엇 어소시에이츠는 엘리엇 매니지먼트 그룹에 속해있고, 1997년 만들어진 헤지펀드 운영사다. 금융감독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엘리엇 어소시에이츠의 자산운용 규모는 16조원 정도로, 다른 헤지펀드인 엘리엇 인터내셔널 등을 포함할 경우 지주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자산운용액은 29조원이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