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가 본회의 처리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문제를 지적하며 거부권 행사를 강력 시사했지만, 박 대통령 자신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 지금보다 더 강제력이 큰 개정안 공동발의에 참여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 33명 공동발의
지난 3일 <한겨레>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초선 의원 시절이던 1998년 12월 당시 안상수 의원(현 창원시장)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동료 의원 33명과 함께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당시 발의된 개정안은 “중앙행정기관의 잦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되거나 법률의 위임범위를 일탈한다는 등의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의견이 제시된 때에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 같은 법 개정 취지에 대해 발의 의원들은 “국회가 법률의 입법정신에 따라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를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지금 여야는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성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통제’ 의미까지 담긴 ‘국회법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던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 관계자는 4일 “‘발의’가 아니라 ‘서명’을 한 것”이라며 “그런데 공동발의로 기사가 나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관계자는 “1998년 국회에 들어갔을 때 이야기다. 그런 걸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초선 감안’ 해명에 야당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5일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초선 의원이어서 하라는 대로 서명했다는 말인데, 초선 의원들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청와대가 앞장서서 박근혜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궁색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변명”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 “신문법 시행령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나라당이 독소조항이라고 반대해 삭제된 내용이 문화관광부 시행령에 버젓이 들어간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적어도 의원시절에는 국회의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행정부의 이른바 하극상 시행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지켜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초선이어서 잘 몰라서 그랬다는 식의 청와대의 말도 안 되는 거짓 변명을 자신의 입장으로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17년 전엔 위헌적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위헌?”
전날(4일) 김영록 수석대변인도 현안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정이 마비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면서 위헌 소지가 높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며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던 게 이번에는 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됐는지, 당시에는 3권 분립에 어긋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왜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인지 몹시 의아하다”고 꼬집었다.
또, “의원일 때는 몰랐는데 대통령이 되고 보니 뒤늦게 깨달은 게 있는 것인지 분명히 해명하고 유감이라도 표명해야한다”면서 “이런 해명이나 유감 표명 없이 국회법 개정안이 마치 천하의 악법인 것처럼 소모적 논쟁으로 몰아간다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 역시 이날 논평에서 “더 강제력이 있다는 말은 더욱 더 위헌적이라는 뜻인데, 그때는 위헌적이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위헌적으로 돌변했다는 뜻인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17년이란 세월 동안 생각이 숙성돼서 180도로 달라졌다고 봐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건망증인가”라며 “단순히 생각이 바뀌었으면 바뀐 이유를 듣고 싶다. 설마 원칙에 입각해 대승적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대통령께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소신이 왔다리 갔다리 한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고 비꼬았다.
아울러, 청와대 관계자의 해명에 대해서도 “공동발의하는 법안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서명을 해줬다는 말인데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묻지마 서명이나 하는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얼굴로 내밀고 있다는 말이냐”며 “우리는 대한민국 대통령 수준이 그렇게 낮다는 걸 믿을 수 없다. 어떻게 청와대가 대통령 수준을 떨어뜨리는 발언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가. 대통령 창피 주는 청와대에 매우 실망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