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삼성물산 합병반대’ 시나리오는 두 가지?
엘리엇 ‘삼성물산 합병반대’ 시나리오는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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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시세차익? 장기 소송전? 시장 관심 집중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고, 합병조건도 공정하지 않다”며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아울러 “현물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해 달라”는 요구까지 덧붙였다. ⓒ뉴시스

지난 4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7.12%(1112만5927주)를 경영 참여의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엘리엇은 그러면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고, 합병조건도 공정하지 않다”며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엘리엇은 또 “현물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해 달라”는 내용의 주주제안서를 보내면서 다음 달 17일 합병 승인을 위해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 의안으로 상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외국인투자자를 규합해 삼성물산의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엘리엇의 주장은 제일모직의 주식가치가 삼성물산보다 3배정도 고평가돼 당초 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인 1대 0.35가 불공정하다는 게 핵심이다. 엘리엇은 또 합병으로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가 만들어질 경우 공정거래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며 합병 후 삼성물산의 건설사업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삼성물산 1대 주주인 국민연금에게도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발송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삼성물산의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의 계열사인 삼성SDI와 삼성화재에도 ‘합병 반대 동참’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 1558만8592주(지분율 9.98%)를, 삼성SDI는 1154만7819주(7.39%), 삼성화재는 747만6102주(4.79%)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20만6110주(1.41%)를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 요구, 성사 가능성 낮아

그러나 엘리엇이 주장하는 ‘경영참여’와 ‘현물배당’은 모두 성사 가능성이 낮다.

상법상 상임이사 추천 등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10% 이상의 지분이 필요하다. 엘리엇의 보유 지분인 7.12%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삼성물산 지분에 대한 추가 매입 역시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규정 상 경영참가 목적으로 5% 이상의 지분을 매입한 투자자는 이를 보고한 후 5영업일이 지나야 추가 매입이 가능하다. 엘리엇의 공시일이 4일임을 감안하면, 11일까지 주식을 추가 매입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물산의 주주명부 폐쇄일은 12~16일이다. 이말인즉, 9일까지 주식을 취득해야 계약 체결일로부터 2거래일인 11일 주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10일부터 취득하는 주식은 주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즉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다. 결국 11일까지 추가 매입이 불가능한 엘리엇은 7.12%의 지분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물산 보유 지분의 현물 배당 안건 역시 해프닝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안건이 상정돼 정관 변경에 성공한다 해도 합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유 지분의 현물 배당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주장하는 대규모 현물배당은 채권자와의 관계 등으로 쉽지는 않아 보인다”며 “기업들의 대규모 현물배당이 어려운 이유는 사채권자 집회의 동의가 수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러고 설명했다. 현물배당이 2012년 개정상법에서 도입되었으나 아직 국내에서 이러한 판례가 있고 된 적이 없는 점도 기업 입장에서는 실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엘리엇은 왜? 두 가지 시나리오

▲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엘리엇의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느냐, 아니면 장기 소송전으로 끌고가 대규모 수익을 노리느냐가 그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엘리엇 사태’는 삼성이 자초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뉴시스

경영참여와 현물배당이 모두 가능성이 낮은 이때, 초점은 “엘리엇은 왜?”로 맞춰진다. 이를 두고서는 크게 두 가지의 해석이 존재한다. 한 가지는 단기 차익을 노린다는 것. 다른 한 가지는 장기 소송전에 돌입해 대규모 수익을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물산 보유 지분이 지난 2일 전까지는 4.95%였지만 지난 3일 2.17%를 추가 매수해 지분이 7.12%로 늘었다. 엘리엇의 공시가 나온 이후 삼성물산의 주가는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기대감에 20% 오른 7만6100원까지 상승했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4일 이후 삼성물산의 주가가 20% 올라 엘리엇의 보유지분에 따른 시세차익이 1억2400만달러(한화 약 1377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시장 역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밝힌 후 삼성물산 공매도(가격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후 주가가 떨어진 뒤 이를 되갚아 시세차익을 얻는 방식) 물량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삼성물산의 공매도 거래량은 57만8171주(약 430억7000만원)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8년 이후 가장 많았다. 엘리엇의 지분 보유 공시 이전 공매도 물량은 일평균 1만주 미만이었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가공할 만한 급증세다. 향후 엘리엇이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을 대거 매도하고, 결국 주가가 급락할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이 많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계 헤지펀드의 시세 차익을 노린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2003년 4월 영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지분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에 오른 뒤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간섭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소버린은 주당 평균 9293원에 사들인 주식을 2005년 6월 철수하면서 지분 전량을 팔아 배당금과 환차익을 포함해 1조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거둔 바 있다.

실제로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냈지만 향후 합병 추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 관련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모양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홍보를 맡는 뉴스게이트 커뮤니케이션의 리차드 바튼은 “보도자료에 있는대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고 밝힌 것일뿐”이라며 “향후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고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엘리엇 뉴욕 본사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무산을 위해 다른 투자자와 공조할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 더 이상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지난 4일 발표한 보도자료 외에는 더 이상 추가할 내용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장기 소송전으로?

또 다른 시나리오는 장기 소송을 통해 대규모 수익을 노린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엘리엇이 합병 비율을 문제 삼으며 삼성그룹 계열사에까지 합병 반대 동참을 요청한 것에 미뤄 임시 주총에서 합병을 무산시키기 보다 향후 소송을 통해 시세차익을 누리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엘리엇이 그동안 소송을 통해 대규모 수익을 낸 점을 고려하면 외국계 투자자들의 규합을 통한 표대결보다는 단독 소송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엘리엇의 과거 전적은 화려하다. 엘리엇은 지난 2001년 아르헨티나 디폴트에도 관여했다. 아르헨티나는 1000억 달러의 디폴트 선언 후 국제 채권단과 채무 구조조정을 합의, 채무의 71~75%를 탕감해주는 합의안에 채권단 다수가 참여했으나 엘리엇은 합의에 불응했다. 이어 타 해지펀드 한곳과 함께 미 법원에 소송, 액면가 13억 3000만 달러의 국채를 4800만 달러의 헐값에 사들인 뒤 소송에서는 액면가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미국 법원이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며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단에도 전액 상황을 하게 되면서, 결국 아르헨티나는 기술적 디폴트에 빠졌다.

또한 2003년 엘리엇은 미국 P&G가 독일 웰라를 인수하며 제시한 우선주 가치가 부당하다며 저지에 나서, 독일 2대 펀드인 Deka investment와 손을 잡고 법적 분쟁을 통해 주가를 높이는데도 성공했다.

이후 엘리엇은 2005년에도 미국 유통업체 샵코를 한 사모투자펀드(PEF)에 매각하는 거래에 반대해 자신들의 샵코 지분 가격을 주당 24달러에서 29달러로 올려서 받아냈다.

2006년에는 인력 컨설팅업체 아데코가 독일기업 DIS를 인수해 비상장사로 만들려는 계획에 맞선 끝에 지분 가격을 주당 54.5유로에서 113유로로 끌어올린 바 있다.

◆대응책 강구하는 삼성

삼성은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 등 계열사 사장들을 필두로 한 합병대응팀이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놓고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관계자는 “우선 투자자들과 소통 확대를 통해 이번 합병에 대한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나가고 있다”면서 “최 사장이 지난주 홍콩으로 가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7월 임시 주총에서 출석 의결권의 3분의 2,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제일모직은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52.24%여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삼성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등 우호 지분을 13%가량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삼성물산으로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기금이 최근 삼성물산 주식을 집중 매입해 온 것으로 나타나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5일까지 9거래일 동안 2262억 원어치(331만5668주)를 순매수하면서 삼성물산 지분이 2.12%나 증가했다.

◆삼성이 자초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엘리엇의 공격을 자초한 것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의 재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지난달 26일 합병 계획을 발표하면서 삼성물산 1주를 제일모직 0.35주와 교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삼성 측은 두 기업 모두 상장법인이기 때문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최근 주가를 가중산술평균해 기준가액을 구하고 할인 또는 할증 없이 그대로 합병비율을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 안팎에서는 삼성물산의 저평가 구간에서 합병이 이뤄졌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주식 가치만 따져도 삼성전자 8조원, 삼성에스디에스(SDS) 3.5조원 등 11조~12조원대에 달하는데 9조원 정도로 밖에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8일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발표한 5월 26일은 제일모직 주가는 극도로 과대평가(over-value)되고, 삼성물산 주가는 비상직적으로 과소평가(under-value)된 시점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제일모직의 PBR(주가순자산비율 = 시가총액/순자산)은 3.48배로 삼성물산의 0.58배보다 6배 높았다”며 “이를 근거로 산정한 합병비율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그것만으로 시장과 사회의 승인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커다란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해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의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어떤 계획과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였다. 이것이 결국 엘리엇의 공격을 자초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삼성물산의 장기 주주인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의 박유경 아시아지배구조 담당이사는 “삼성물산의 가치는 높은 데 반해 합병 비율이 너무 낮다”며 “불공정한 합병 가격이 조정되지 않으면 합병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박 이사는 엘리엇과의 동조 가능성에 대해선 “30∼40개 기관투자가와 정보 등을 주고받는 것은 맞지만, 삼성물산 사안을 놓고 이들과 연대해 주주 행동을 같이할 생각은 없으며 엘리엇과도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한편, 삼성물산 측은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지금 상태로서는 합병비율 재산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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