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이지테크 측의 왕따, 감시, 차별, 표적징계, 해고의 부당성을 유서를 통해 알린 故양우권 포스코사내하청지회 EG테크분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2일째다. 양 씨의 죽음을 두고 사측의 노동탄압과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양 분회장은 지난달 10일 인근 야산 산책로에서 스스로 목을 맸고, 이후 부인이 발견했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양 분회장이 남긴 유서는 박지만 EG회장과 조합원에게 남기는 글 총 두 장 이었다. 특히 박 회장을 두고 “당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사람”이라고 적시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점을 미뤄 포스코와 그 하청업체인 EG테크, 노조 간 갈등의 골이 깊은 상태였음을 시사했다.
‘故 양우권 노동자 포스코·이지테크 인권유린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9일 전남 광양 중마동 청소년문화센터에서 ‘포스코 노동탄압·인권유린 실태 보고대회’를 열었다.
대책위에 따르면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1985년 착공 이후 지역 시민단체, 노동계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오지 못했다. 그간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포스코에 자본을 앞세운 지역여론 호도,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포스코의 갑질로 인한 지역 중소업체의 소외 등을 끊임없이 문제 삼았다.
여기에다 지난달 양씨의 자결을 계기로 포스코의 노동탄압과 인권유린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양 분회장 죽음 12일 후였던 지난달 22일에는 광양제철소 내에서 신호수부재 등 안전관리 소홀로 인해 고소작업을 하던 플랜트건설 노동자가 철골구조물에 압착돼 사망하는 산재사망사고도 발생했다.
대책위는 포스코와 EG테크 모두 양 분회장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사측, 노조 무력화 움직임
이날 대책위는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회사공중분해’와 ‘연봉인상’을 내세워 사내하청 노조를 무력화하려고 한 정황도 폭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광양제철소 외주 담당자가 원청인 포스코 대신 사내하청업 ‘성광’의 지회장과 前 지회장에 접근한 뒤 “기업별노조 전환이나 노사산업평화선언(무분규·임금위임‧무파업)을 해주면 3년 안에 연봉 1000만 원을 더 인상해줄 것”이라고 회유했다.
또한 대책위는 이 외주담당자가 “만약 따르지 않으면 하청업체를 공중 분해한 뒤 비조합원의 경우 6개월 임시직으로 받고, 이후 다른 하청업체로 넘기면서 조합원들은 전원 고용 승계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대책위는 광양제철소가 포스코 임원 출신을 사내하청업체인 ‘성광’ 전무와 ‘덕산’ 대표로 갈 수 있게 조치하는 등 사내하청의 노사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수를 쓴 전황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2011년 입수한 ‘광양제철소 하청업체의 노조 무력화 계획 문건’도 공개했다. 여기에는 비노조원 중심의 노사협의회 구성 등의 내용이 실렸다.
이와 관련해 광양제철소는 ‘포스코가 상식적으로 하청업체 노조를 회유하거나 협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공개된 양씨의 일기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지그룹 계열사 EG테크에 근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양 분회장의 자필 일기가 모두 공개됐다.
양 분회장의 장남인 효성씨가 공개한 일기장에는 사측이 왕따, 감시, 차별, 표적징계, 부당해고에 앞장섰던 정황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고 이 일들이 결국 양 분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주범임을 시사하고 있다.
올해 1월8일을 기점으로 양 분회장은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았다.
다음은 그가 작성한 일기 중 일부분이다.
[2014.5.19.]
회사에서 ‘내가 들어오면 아는 체도 하지 말고 대화도 나누지 말라’고 하였다고 해서 누가 그런 지시를 내리더냐고 질문하니 그것은 말해줄 수 없다고 하였다. 또 내 책상도 한쪽 구석에 벽 쪽을 향해서 놔두었다고도 했다. 복직하기도 전에 이런 이야기가 들리니 참 뭐라 말이 안 나오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2014.6.11.]
아무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2014.6.13.]
오늘도 들어가면서 인사를 했는데 아무도 받아주질 않았다. 내가 죽어야 되나, 아니면 죽여야 되나. 박지만, 그 애비에 그 아들.
[2014.6.23.]
2011년 1월부터 현재까지 3년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며 약물 치료로 버티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불면증으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낮엔 스트레스,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사람이 바보가 되어 가고 있다.
[2014.6.25.]
참으로 뻔뻔하다. 자기네들이 2번의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에서 패소했으면 거기에 승복하고 나를 현장으로의 원직복직을 이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현장 밖의 사무실에 격리시켜놓으면서 아무런 업무도 주지 않고 왕따 시키는 게 과연 옳은 처사인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될 사항인데 참으로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현직 대통령의 동생이 회장인 기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 친인척들은 법위에 군림해도 된단 말인가. 과연 이게 민주주의 국가인가.
[2014.6.26.]
현재시각 오후 2시33분. CCTV 감시 아래서 회사에서 학습하라고 준 서적 ‘노사혁신 프로젝트’를 출근시간부터 지금까지 보고 있다. CCTV로 감시받고 있다는 게 정말 미치겠다. 또 어떤 트집을 잡아서 징계하겠지 생각하니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2014.7.11.]
오늘도 외로운 전투가 시작되었다. 감시카메라, 감시카메라, 감시카메라. 머리가 너무 아프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죽이고 싶다. 아니 내가 죽고 싶다.
[2014.8.7.]
노무팀장이 왔다. 그래서 내가 현장으로 보내 달라, 여기 있으니까 스트레스 받아 미치겠다고 했더니. 귀머거리 3년, 봉사3년 벙어리 3년 9년 동안 여기 있다가 자기하고 같이 정년퇴직하자고 하였다.
[2014.9.3.]
진짜 해서는 안 될 생각이 든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2015.1.8.]
며칠 만에 펜을 들어본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될 줄 모르겠다. 매일 똑같은 생활 똑같은 환경. 사람이 자꾸 이상해져 가는 것 이외는 달라진 게 없다.
◆ 장남 양효성 “죄지은 자는 EG테크” 울분
지난 4일 양 분회장의 장남 효성씨는 ‘3일 발생한 금속노조 집회 대규모 연행사태에 대한 유족입장’이라는 자료를 통해 “죄를 지은 자는 EG테크입니다. 아버지의 동료 분들을 선처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앞서 3일 금속노조 조합원 2500여명은 포스코센터 앞에서 ‘살인기업 포스코·EG테크 규탄! 노동탄압·비정규직 철폐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논현동 EG그룹 본사 앞까지 행진했다. 이어 박지만 회장의 사과를 받기위해 사무실을 항의 방문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된 뒤 4개 구치소에 수감됐다.

◆ 대책위 “포스코-이지테크에 의한 타살”
지난달 10일 양 분회장은 오전 7시30분께 자택 인근 야산 산책로에서 목을 맸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된 후 숨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건 바로 다음 날 대책위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1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이지테크는 故양우권 열사에 사죄하고 책임 인정하라”고 농성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양 분회장의 죽음은) 무노조 정책과 노조말살 기업 포스코,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 회장의 이지테크에 의한 타살”이라며 “포스코와 이지테크는 열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와 대책위의 주장과 함께 실제 양 분회장의 일기장을 살펴보더라도 사측은 그동안 양 분회장에게 감봉, 3개월 이상 무기한 대기발령, 2차례 해고, 2차례 정직, 감시카메라로 1년간 감시, 책상 앞 대기명령, 집단 따돌림 지시 등 노동탄압을 주도했다.
이에 당시 대책위는 “(양 분회장은) 사측의 탄압으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와 수면 장애, 심리적 불안을 겪으며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왔다”며 “이 모든 노조탄압의 배후에 원하청을 막론하고 무노조, 노조말살 정책을 추진하는 포스코가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