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가 터진 이후 가뜩이나 침울해 있던 한국경제가 또 다시 복병을 만나면서 출렁거리고 있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메르스 전염병 문제 때문이다.
국민 삶의 질이 향상되고, 그동안 한국의 의료기술 또한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차츰 잊혀 가고 있었다. 전염병이라 해봐야 가벼운 눈병이나 아이들 수족구 정도로 생각되는 정도였지, 이렇게 인간 생존까지 위협하는 전염병이 확산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들이 이런 전염병 공포를 모르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껏은 우리 정부도 잘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정부에 대한 신뢰가 이번 메르스 사태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초기 대응은 물론이고, 컨트롤타워가 어디인지도 모를 정도로 우왕좌왕하는 등 정부의 이번 메르스 사태 대응은 낙제점 그 이하다. 그러다보니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또 다시 바닥을 치게 됐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암세포가 전이되듯 빠른 속도로 국민들의 일상생활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하게 됐다.
메르스 전염병이 병원을 거점으로 확산되고 있는 탓에, 대형 병원은 물론이고 아무리 아파도 동네 병원조차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장이나 마트 등 각종 소비시장에도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겨버리고 말았고, 이로 인해 지역 소상공인들은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됐다. 관광 산업은 말할 것도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 중 80%가량 차지하는 요우커들이 메르스 공포로 인해 여행 계획을 취소하거나 발길을 일본 등 타국으로 돌리고 있는 문제도 심각하다. 업계는 이번 사태로 인해 요우커들의 관광이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해외 관광객들이 감소하면서 백화점은 물론이고, 극장, 놀이동산 등도 울상이다. 항공사들과 여행사들이 받고 있는 타격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크다. 모건 스텐리에 따르면, 한 달 안에 메르스가 제어된다는 가정하에 소매 판매는 10% 하락, 식음료점 판매는 15% 하락, 관광산업은 2개월간 20%의 하락이 예상된다고 한다. 2~3분기 한국 경제 성장이 0.5% 하락되고, GDP도 0.15%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 달 안에 제어된다는 가정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메르스가 잡히지 못하고 이런 추세로 계속 확산된다면,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암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메르스 타격이 이렇게 내수시장에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인 코리아 이미지가 ‘위험’으로 나빠지게 되면서 안 그래도 어려움에 처해 있던 수출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일본의 지속적인 양적완화와 엔저 현상으로 인해 우리 수출기업들의 타격이 심각한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처음 가볍게 생각했던 전염병이 국가를 온통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당국은 어떻게든 소비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금리를 사상 최저치로 인하하는 등 백방의 조치를 취해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결코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공포의 근원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리고 메르스 확산을 잡는다 하더라도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한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메르스를 차단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언론 또한 과도한 공포심리를 자극하는 보도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SNS나 인터넷 등을 통해 퍼지는 유언비어들 또한 엄단에 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은 온 국민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정부가 비판 받아 마땅하고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메르스 사태를 진정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최우선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조금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당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모든 국력을 동원해 메르스를 차단하고, 국민은 정부를 믿고 차분히 따라야 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위기를 극복해낸 저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지금이 바로 그렇게 다시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