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2년 3개월 대표직을 맡아온 소회와 함께 최근 압승한 지방선거, '대권 가는길' 등 징검다리로 이례적으로 많은 얘기를 들려줬다. 박 대표는 퇴임에 앞서 지난8일 한나라당 출입기자들과 만나 대선 후보 선출시기를 비롯,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전대) 방식·시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왜 이 시점에 그런 논의를 하는지"라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규정한 혁신안은 지난해 9개월 동안 진통을 겪으며 만들었는데 7개월만에 시험도 안 해보고 손을 대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권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선 후보 선출시기 조정 필요' 발언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왜 이 시점에 그런 논의를 하는지…"
자신의 논거로는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지방선거를 끝냈으면 민생과 직결된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야지 후보 선출시기 등을 얘기하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반문으로 대신했다. 이어 "여야 모두 대선 후보는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에 좋지 않고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박 대표는 이어 "지난달에 밝힌 ▲당 정체성·노선 유지 ▲개혁·혁신 지속 ▲대선 경선 공정 관리 등의 3가지 원칙은 유효하다"고 분명히 했다. 맘에 둔 후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있지만 얘기를 안 할 것이기에 있으나마나 한 것 아니냐?"고 즉답을 피했다.또 '호남 끌어안기'에 대해서는 "특단의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 진실된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게 최선의 길"이라며 "선거운동 첫날 광주에 갔을 때 유권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호남 발전을 위한 정당하면 '한나라당'이라는 답이 주저없이 나올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퇴임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일단 쉬면서 몸을 추슬러야 한다"며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만큼 밀린 것 정리하면서 체력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캠프 꾸리기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세간의 관심인 '퇴원 직후 대전 유세'에 대한 심경도 들려줬다. "충청 민심도 중요했고 우리 당 후보가 힘겹게 싸우고 있는데 당대표가 당연히 가야죠?"라며 "대전 시민에게 많이 간다고 약속한 것도 맘에 걸렸고 무엇보다 걸어서 나왔는데 움직일 수 있으니 가야죠. 집에 있는다고 마음이 편하겠어요?"라고 설명했다.
앞서 박 대표는 지난 2년 3개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2004년 4·15 총선 때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대표를 맡은 것"이라며 "국민이 121석을 주셨고 꾸준히 당 지지율도 오른데 대해 작은 보람을 느낀다"고 '탄핵역풍'을 극복해낸 경험을 털어놓았다.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국민과 약속 지키는 게 중요한데 기초연금·부동산 대책 등 대안을 내놓았지만 야당이라는 한계로 40%밖에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검증이 필요없다
박 대표의 속내는 무엇인가? 일단 박 대표는 2년이 넘도록 당대표를 하면서 검증 받을 대로 받은 그이다.
그동안 야당 대표로 공격받아오거나 아니면 고인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늘로 인해 쿠데타 세력으로 폄훼 됐지만 그 자신으로서는 공격받을게 없는 상태. 박지만씨 등 가족들이 있지만 여타 정권의 밀착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한나라당 내에서 대권후보 선출시기를 늦춰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전 이회창 전 총재 등이 선출 된 이후 '병풍'을 맞고 설훈, 김대업으로 이어지는 속사포들이 등장해 결국 아닌 것을 가지고 술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표의 경우 야당 대표를 맡아 집권여당과 싸우는 동안에도 이렇다 할 공격포인트를 내주지 않았다. 게다가 고유권한인 인사권과 공천권 등 당권을 고루 나눠주고 계파정치를 철저히 버리면서
당내에서도 어느 정도 입지를 갖춘 상태다. 때문에 대권후보 선출시기를 놓고 벌이는 논쟁은 박 대표에게 와닿지 않은 것이다. 박 대표는 자신의 퇴임후 행보에 대해 "저나 한나라당의 사명이 막중한데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 잘못돼가고 있는 나라를 바로잡고 부강한 선진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많은 지지를 받
을수록 언행에 조심하고 안주·자만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대권후보 선출 때까지 당대표 이상의 지지도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치솟는 인기
퇴임을 1주일 앞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 3주째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프로그램이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조사결과, 박 대표가 지난주에 비해 2.4%P 상승한 30.5%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고건 전 총리가 25.8%, 이명박 시장이 21.5%의 지지를 얻어 뒤를 따랐다. 앞서 지난 달 29∼30일 전국유권자 9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조사 결과에선 28.1%를 기록한 바 있다. 이같은 결과는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이끈 박 대표의 '리더십'이 선호도 상승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3위로 밀려나 있던 '기다림의 달인' 고 전 총리가 이번 선거 직후 '희망연대'를 7월 발족한다는 '행동'을 보인 탓인지, 이 시장을 제치고 2위로 차지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지지율이 50%선을 넘고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10%대로 내려앉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나라당은 지난주보다 1.5%가 더 상승해 조사이래 최고의 수치인 50.9%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18.1%를 기록해 조사이래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 이택수 연구원은 "이번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나고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책임소재를 놓고 균열을 보이면서 양당간 격차가 더 벌어진 것 같다" 고 분석했다. 이 조사는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전국 유권자 932명을 대상으로 전화로 조사했고, 표집 오차는 신뢰 95%수준에서 ±3.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