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낸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자마자 공식적 직무 수행에 들어갔다. 메르스 사태 속에서도 52일간이나 장기 공백 상태였던 국무총리 자리가 채워지면서 청와대는 한 시름 놓았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치권은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황교안 총리는 곧 정치권을 향한 대대적인 사정 칼바람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메르스 총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태가 가라앉은 직후 본격적으로 사정 칼을 휘두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총리를 지명했을 때부터 이런 관측은 제기됐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집권 3년차 중반기를 넘어가고 있는데도 무엇 하나 뚜렷하게 해놓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 강력한 사정이 필요했을 수 있다. 게다가 돌발적으로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악재에 민심까지 점점 더 흉흉해지다보니, 사회 안정 유지 차원에서도 사정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의 대선자금 문제까지 파고드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황교안 카드는 최적이었을 것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점도 지켜볼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나날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여당이 지는 태양을 붙잡고 선거를 치르려 하지 않을 수 있다. 가뜩이나 지금도 국회법 개정안 등으로 인해 당청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인데, 선거 국면이 되면 오죽하겠는가. 대통령 탈당설까지 나도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만일 그런 상황이 도래한다면 박 대통령은 올 하반기 또는 총선 공천이 한창일 내년 초쯤에는 틀림없이 레임덕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임기 5년 동안 4년은 각종 악재들에 대처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내고, 남은 임기 1년은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황교안 카드를 통한 사정 정국은 야당에만 집중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야당보다 여당에 더 집중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리고 여당 내 비주류 반대파에게만 향하지도 않을 것이다. 친박이든, 친이든, 또 야당의 누구든 국정동력을 회복하는 일에 걸림돌이 된다면 거칠 것 없이 칼날을 휘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당과 갈등이 발생한다거나, 친박 사정에 불편함이 생긴다면 탈당도 감행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런 관측들은 메르스 사태 이후 정국에 불어올 대대적 사정 바람의 세기가 어느 정도 일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이 황교안 국무총리 발탁의 배경이었으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국무총리는 원 포인트를 위한 자리가 돼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는 자리다. 대통령을 도와 내각을 총괄 지휘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황 총리는 국정의 모든 구석구석을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할 것이다. 즉, 민생과 국가경제에 대해서도 황 총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정만으로는 결코 민심을 달랠 수 없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국가를 안정시킬 수도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보건복지부장관을 통해 이런 원 포인트 인사의 문제를 뼈아프게 겪고 있다. 공무원연금개혁 문제가 큰 화두였을 당시 연금 문제 전문가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앉혔지만, 보건 분야에 무지했던 장관은 결국 국가를 메르스 초비상사태로 몰아넣고 말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자리조차 이러한데, 국무총리라는 자리는 어떻겠는가. 황 총리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아들자마자 메르스 현장부터 달려간 일은 잘한 일이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컨트롤타워가 돼 메르스 종식 선봉에 서겠다고 국민을 안심시킨 일도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황 총리가 어떤 배경에 의해 국무총리에 발탁됐는지 이제 중요치 않다. 이제 그는 총리이고, 총리인 만큼 그가 당장의 급한 불부터 끌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후에 정치권이든, 재계든 우리 사회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할 필요성이 있다면 사정 아닌 그보다 더한 것을 한다 하더라도 지켜봐줄 것이다. 다만, 앞서 지적했듯 그것만이 전부가 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이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어서도 결코 안 될 것이다. 칼날이 더 매섭기 위해서는 칼을 쓰는 목적이 순수해야 한다. 검사 출신인 만큼 황 총리가 이런 진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예스 총리가 아닌, 책임 총리가 될 수 있길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