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차례의 매각 시도가 무산되면서 청산 위기에 몰렸었던 팬택이 마지막 구명줄을 잡았다. 국내 중견IT업체인 옵티스 컨소시엄이 인수 의향을 밝히고 나섰기 때문이다. 팬택은 매각이 세 차례 모두 무산된 이후, 지난 5월 26일 스스로 법정관리 폐지를 신청하며 파산 선고를 앞두고 있었지만 옵티스 컨소시엄의 등장으로 ‘정상화’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파산부(재판장 윤준 파산수석부장판사)는 팬택과 옵티스 컨소시엄이 M&A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것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이후 본계약이 성사되면 컨소시엄은 팬택과 함께 회생계획안을 마련해 채권단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팬택은 옵티스를 새 주인으로 ‘부활’하게 된다.
재계에서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엔 이른 시점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까지 다양한 조건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옵티스 대표 vs 최대주주 정면충돌
그러나 팬택과 옵티스 컨소시엄이 희망찬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벌써부터 삐걱이고 있다. 옵티스의 최대주주인 사모투자펀드 스카이레이크와 이주형 옵티스 컨소시엄 대표가 팬택의 인수를 두고 정면충돌했기 때문이다.
사모투자펀드 스카이레이크는 일명 ‘진대제 펀드’로 알려진 곳이다. 스카이레이크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설립했다. 2008년 게임업체인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해 200%가 넘는 투자수익률을 기록했고 모바일 게임 회사 모비클이나 JCE 등을 인수하기도 했다. 한미반도체나 픽셀플러스 등 반도체 팹리스 업체에 투자해 매출 확대를 이끌었다.
스카이레이크는 옵티스의 지분 22.46%를 보유하고 있다. 2대 주주는 이주형 대표(17.65%)다.
그러나 최근 옵티스 임시 이사회에서 스카이레이크는 팬택 인수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옵티스 임시 이사회에서 스카이레이크 측 이사 2명은 팬택 인수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총 5명으로 구성된 옵티스 이사진 가운데 이주형 대표를 비롯한 옵티스 측 이사 3명이 찬성, 스카이레이크의 의사와 무관하게 팬택 인수 안건은 가결됐다.
스카이레이크가 반대 의사를 표명한 이유는 옵티스-팬택의 사업적 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점, 또한 옵티스의 재무 여력이 팬택을 인수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옵티스는 지난해 매출 5999억원, 영업이익 151억원, 순이익 31억원을 거둔 광학기기 제조 전문 중견기업이다.
스카이레이크는 이미 과거에 자체적으로 팬택 인수 타당성을 검토했지만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옵티스의 팬택 인수 추진은 나와 무관한 일이다”라며 선을 긋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스카이레이크 측 인사들이 팬택 인수에 반대표를 던진 점과 진 전 장관이 선을 긋고 나선 점을 들어 이들이 팬택 인수를 적극 반대할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다.
스카이레이크가 BW(신주인수권부사채)와 CB(전환사채)형태로 100억 원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해당 BW와 CB는 상환청구 시점이 도래한 상태다. 옵티스의 실적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까닭에 상환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BW와 CB 상환이 청구될 경우 컨소시엄 자금 납입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최대주주 반대해도 인수 강행”
그러나 옵티스의 인수 의지는 강경하다. 이주형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진대제 전 장관이 협조하지 않더라도 인수를 강행할 예정”이라며 “벤처 신화를 쓴 팬택의 명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스카이레이크가 팬택 인수를 거부하고 나설 것까지 감안해 다른 투자금을 확보하고 있다"며 "(옵티스가 팬택 인수에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이미 통신중계기 업체를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팬택 인수에 동참하기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과반수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며 팬택 인수를 두고 이사회 표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옵티스의 강력한 인수 의지는 이어진 인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24일 옵티스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회장으로 영입했으며, 7월 중 합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변 회장은 "인생 대부분을 공직에 몸담으며 국가 업무를 봐왔는데 앞으로는 기업 업무, 특히 우량기업의 해외사업에 종사해보고 싶다"며 "훌륭한 기술기업인 팬택을 되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 옵티스와 오랜 논의 끝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옵티스가 스카이레이크의 지원 없이 팬택 인수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옵티스가 팬택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인수 자금을 문제 없이 마련할 수 있을지를 두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옵티스가 팬택의 기업가치를 얼마나 쳐주는지가 결국 M&A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옵티스 컨소시엄이 팬택의 기업 가치를 얼마나 쳐주는지가 M&A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화’ 까지 멀고 먼 길
옵티스가 제시한 팬택의 정상화 방안은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은 상당한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제조사 입장에서 인도네시아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문제는 이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곳이 옵티스 한 군데가 아니라는 점이다.
변 회장은 “기존 사업모델과 같다면 과연 승산이 있겠느냐”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업 방식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변 회장은 “휴대폰 사업은 그대로 가져갈 것”이라며 인수 이후에도 주력업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또 “(제가 추진해왔던) 인도네시아의 IPTV 사업이 이제 본 궤도에 들어갔다”며 “현지 IPTV 사업과 팬택의 휴대폰 기술력을 연계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ICT 사업을 벌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형 대표에 따르면, 옵티스는 인도네시아를 해외시장 교두보로 삼을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는 2018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ICT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어 시기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인도네시아 시장은 ▲이동전화 사용자 75%가 2세대(2G) 이동통신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전국적으로 4G 서비스를 시작하는 점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인 점 ▲스마트폰 보급률이 25%에 머물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성장 잠재력이 큰 곳으로 꼽힌다.
옵티스는 인도네시아 국영통신사인 텔콤인도네시아와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인도네시아의 4세대(4G)시대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인도네시아는 2018년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중국처럼 ICT를 기반으로 경제를 부흥하려 한다. 내수 기반 스마트폰이 필요하며 내년에 4G LTE로 바뀌는 모멘텀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옵티스가 국내에서는 연구개발에만 매진하고, 단말 제조는 인도네시아 현지에 공장을 세우거나 외주를 통해 생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군침이 흐르는 땅’인 인도네시아를 노리고 있는 곳이 비단 옵티스 한 곳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삼성전자는 인도네시아에서 급증하는 수요를 충당하는 한편, 자국에서 휴대전화를 생산하도록 개정된 인도네시아의 규정에 따르기 위해 지난 1월 인도네시아 휴대폰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이 공장은 월 90만 대 수준의 휴대폰을 찍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가폰’ 시장의 강자인 샤오미 역시 인도네시아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샤오미는 지난해 시장에 진출한 지 2달 만에 스마트폰 10만대를 팔아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현지에서 매장 판매 방식을 실험하는 등,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휴고 바라 샤오미 부사장은 "아직 다른 시장에 비해 인허가 과정과 유통 등이 느린 편이지만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며 인도네시아의 시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업계관계자는 "인도네시아시장은 인도와 함께 성장 가능성이 높아 최근에는 현지업체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면서 "본격적인 경쟁이 막이 오른만큼 더욱 치열한 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사포커스 / 성수빈 기자]